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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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부 만경대혁명학원 이야기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해설 : 공화국 인민들은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고만 알고 있지 그 특혜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 리일남이 체험한 만경대혁명학원 생활을 통해 구체적인 실태를 살펴보자.



만경대혁명학원의 식사는 조선인민군 대좌급 대우다. 굉장한 대우다. 하루에 달걀이 한 알씩 나오고 이틀에 한 번씩 고기가 나온다. 거의가 돼지고기인데, 한 주일에 한 번 정도는 소고기가 나온다. 과일은 매일 나오는데, 사과, 배 혹은 그때그때의 계절 과일이 나온다. 남조선에서 이런 정도가 보통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조선에서는 대단한 대우다.



특이한 제도가 생일을 맞는 학생에게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자기 생일이 다가오면 미리 신청하는데, 생일을 맞은 학생들은 식당 안에 따로 마련돼 있는 생일방에 가서 식사한다. 이때 특별히 준비된 음식으로 점심이나 저녁 한 끼가 제공된다. 이런 풍습은 학교의 창설 때부터 있어온 일인데, 이 학교의 개교 내력을 알면 리해가 된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원래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간리에 있었다. 이 학교는 1945년 해방 직후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세워졌다. 자기와 같이 빨찌산을 하다가 희생된 대원이나 애국자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라는 지시였다. 당시 로씨야의 쑤오로브혁명학원, 즉 레닌과 같이 활동한 혁명가들의 유자녀를 위한 학교를 본뜬 것인데, 만경대혁명학원의 교복인 군복도 그 학원의 제복을 본떴다고 한다.



만경대혁명학원의 전신인 ‘간리 혁명자 유자녀학원’은 1945년 10월 12일 문을 열었다. 1기생이 오극렬, 연형묵 등이다.



6.25전쟁 때는 이 학생들로 친위중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학생들이 전장에서 희생될까봐 군대로 안 보내고 직접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김일성은 만경대혁명학원에 애착이 강했다. 생일방 제도는 이 학원에 대한 김일성의 특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제도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일성 : 이 학생들이 집에 있으면 엄마들이 떡도 해주고 떡국도 해줬을텐데, 정부의 명령으로 단체 생활을 하니까 우리가 학생들의 아버지, 어머니 역할을 해줘야합니다. 생일을 맞은 학생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주도록 하시오.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6.25가 끝나고 학원이 복구된 후부터 생일상을 차려줬다. 김일성은 6.25 전쟁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아와 학원생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너희 아버지는 빨찌산 할 때 무슨 음식을 좋아했단다.” 혹은 “너희 아버지는 총을 잘 쐈지.” 하면서 학생들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었다고 하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점점 뜸해졌지만 학원창립일과 설날에는 학교에 와서 학생들과 같이 식사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올 때마다 학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각종 ‘교시’를 남겼다.



해설 : 김일성은 자신의 빨찌산 동지들과 가족들은 매우 자상하게 보살폈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했다. 남로당파, 쏘련파, 연안파, 갑산파 등 함께 투쟁을 했던 동지들과 그의 가족들을 죽이거나 관리소로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김일성은 핏줄과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 봉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런 봉건성은 장남에게 권력을 세습하는 것에서 대표적 으로 나타났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처음엔 7년제였는데, 내가 입학할 때부터 6년제로 바뀌었다. 중학교 과정은 평양의 다른 중학교와 같은데, 군사훈련이 다른 학교보다 많다. 유격전술, 현대전술도 배우고, 마지막 학년에는 로켓, 비행기 등 현대장비와 무기도 배운다.



군사훈련은 꽤 힘들었다. 사격도 하고, 방공호에도 들어가 보고, 방독면을 쓰고 하는 화학경보훈련도 했다. 또 하나의 특색은 총기 지급이 다른 학교에 비해 1년 정도 빠르다는 점이다. 남조선에서 AK소총이라고 부르는 아카보총을 3학년 때 지급받는데, 진짜 총을 받았다. 총에는 각각 고유번호가 있었고, 각 중대마다 있는 무기고에 보관했다가 훈련 때면 들고 나온다.



만경대혁명학원을 최우수로 졸업하면 김일성의 친필 수표가 있는 로씨아제 떼떼(TT)권총을 하사받는다. 학생들은 군관학교를 거쳐 소위가 된다. 만경대 출신이라면 조선을 움직이는 최고 고위층으로 인정된다. 어딜 가나 만경대 출신이란 명칭이 따라다닌다. 그러니까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하는 순간 그는 조선의 고위층으로 입문하는 것이다. 모든 조선 학생에게 만경대혁명학원은 꿈의 학교다.



해설 : 만경대혁명학원은 특권층만이 잘 사는 북조선의 현실을 보여주는 곳이다. 예컨대 각 도마다 있는 초등학원과 중등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은 먹을 것이 넘쳐서 뜨물통에 버릴 정도다. 또한 일반 학생들은 성분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 하지만,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라는 리유 하나로 출세가 보장된다. 특권과 계급차별을 없앨 것을 외쳤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경대혁명학원의 존재는 모순 그 자체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주말에도 밖에 나가지 못한다. 대신 주말에는 면회가 허용된다. 그리고 년말이 되면 평양에 집이 있는 애들만 12월 31일 집에 갔다가 1월 2일에 들어오는 특박제도가 있다. 물론 김일성이 학원에 올 때는 특박이 없다. 내가 다닐 때는 김일성이 학원 창립일에만 왔다.



방학은 1년에 한 차례 있다. 8월에 한 달간의 여름휴가가 방학으로 차례진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은 자신들의 식량을 량권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쌀로 가져갈 사람은 배낭에 쌀을 담아 간다. 부식비는 돈으로 줬다. 지방에 있는 애들은 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량권으로 가져가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도 했는데, 대좌급 량권은 엄청난 것이었다.



내게 1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어머니는 대개 리수헌 당시 호위총국 소속 상좌와 같이 왔는데, 어머니가 못 오실 때는 리 상좌가 혼자 오는 경우도 많았다. 면회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원장실에서 가졌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리 상좌는 혜림 이모와 이모부 김정일이 보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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