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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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부 비운의 녀자 성혜림, 첫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중성동 관저에는 원래 김정일과 이모 둘이서만 살았는데, 정남이가 태어나면서 관리원이 늘어나고 요리사가 붙는 등 요원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중성동 관저로 들어가게 된다. 외할머니는 꼼꼼하신 분이었다. 나는 만경대혁명학원에 갔기 때문에 이런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정남이가 두세 살 정도 됐을 때, 김일성에게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가 됐는데, 문제가 많았다. 우선 이모가 한 번 결혼해서 딸까지 있는 녀자였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것을 안 동생 김경희가 오빠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모를 찾아왔다.



성혜림 : 동생이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음료수 좀 내올께요.



김경희 : 언니, 음료수는 됐고, 여기 좀 앉아 보세요. 내 언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찾아 왔어요.



성혜림 : 무슨 일 있어요?



김경희 : 아무래도 오빠는 말을 못할 것 같고...... 직방 말하겠어요. 언니는 우리 오빠보다 나이도 많고, 또 한 번 결혼해서 애도 딸린 녀자니까....



성혜림 : 그래서야?



김경희 : 정남이는 내가 키울테니 관저에서 나가세요. 로후는 잘 보장해 주겠으니...



성혜림 : 아니 뭐라구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정남이는 내 자식이에요. 내 자식은 내가 키워요!



김경희가 이모 가슴에 못질을 한 것이다. 김경희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한 말은 아니고 당시 상황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이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김경희의 다녀간 그날 밤 김정일이 업무를 마치고 관저로 돌아왔다.



김정일 : 당신, 왜 그러고 서 있어. 아이구, 우리 정남이 아직 안 자고 있었구나.



성혜림 : 정남이는 내가 키울 거예요. 절대 누구한테 줄 수 없어요!



김정일 : 뚱딴지 같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성혜림 : 오늘 정남이 고모가 왔다 갔어요. 정남이를 내 놓으래요.



김정일 : 경희 걔가 쓸데 없는 소리를 했구만. 신경 쓰지 마. 내가 있는데 누가 감히 정남이를 데려간다는 거야.



성혜림 : 여보, 우리 정남이 데리고 아버님한테 인사드리러 가요. 정말 이렇게는 못살겠어요.



김정일 : 아직은 시기가 안 좋다고 말하지 않았어. 조금만 참으라.



성혜림 :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란 말이에요!



김정일 : 이 녀자가 오늘 따라 왜 이래!



성혜림 :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내가 직접 정남이를 데리고 가서 아버님한테 말씀 드리겠어요.



김정일 : 야, 서라. 거기 안 서! 서라. 안 서면 쏴 죽이갔어!



성혜림 :쏘세요. 정남이를 뺏기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차라리 날 쏴요.



그 직후 이모가 정남이를 업고 관저를 나가서 숨어버렸다고 한다. 당시는 이모의 존재를 쉬쉬할 때이고 아무도 모르던 때라 공개적으로 찾을 수 없어서 김정일이 애를 많이 끓였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김정일은 자신이 어머니 없이 이붓어머니 밑에서 살아온 설움이 있었다. 그 전철을 정남이에게 밟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적했던 이모가 정남이를 업고 다시 중성동 관저로 들어오면서 이 소동은 끝이 났다.



해설 : 이 사건 이후로 성혜림은 “언제 쫓겨 날지도 모른다. 언제 정남이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1973년, 불안증세에 시달 리던 성혜림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 사건이 또 발생했다. 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수기를 살펴보자.



성혜랑 : 이 무렵 정일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장가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혜림은 그에게 결혼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야 아이를 뺏기지 않고 숨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략) 녀자를 맞아들였는지 말았는지 김정일과 혜림과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건만......순직하고 외곬이던 혜림은 끝내 못 견뎠다. 혜림은 불면증, 신경쇠약증, 불안발작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그 애를 모스끄바에 치료차 떠나보내시었다.



1975년 정남이가 5살 때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말하고, 조용히 김일성에게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김일성은 처음에 상당히 화를 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승인한 것 같다. 김일성도 이모를 잘 알고 있었다. 김일성은 60년대에 영화촬영소 현지 지도를 가끔 갔고, 시아누크와 영화촬영소 참관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영화촬영소에 가서 기념촬영을 하게 되면, 김일성과 시아누크는 앞줄 가운데에, 그리고 간부들이 옆에 앉고, 영화배우들은 뒤에 서 있게 된다. 이때 김일성은 항상 이모를 불러 옆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김일성은 이모를 총애했다고 한다.



내가 남조선에 오자 정보 당국에서는 그 사진을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이모와 관계했다는 말을 했다. 남조선의 유명한 집안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도 안 들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이모는 굉장히 유명한 영화배우였고, 60년대 조선 청년들의 우상이었다. 어린 시절에 들은 얘기지만 “성혜림 같은 녀자와 결혼해 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야기가 흘러 다닐 정도였다. 한참 만에 자신 앞에 나타난 녀자가 아들과 비밀리에 결혼했다니, 김일성도 처음에는 당황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더욱이 하나밖에 없는 귀여운 손자가 태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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