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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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부 김정일의 이붓동생 김현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1979년 2월 정남이가 모스크바에 갔다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김정일이 정남이에게 ‘친하게 지낼 만한 아이가 있는데 같이 놀겠느냐’고 물었다. 조금 있으니 아이 한 명이 관저에 왔다. 예쁘고 잘 생긴 아이였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장현이라고 대답했다. 고모부 장성택의 조카인데 김경희, 장성택의 집에 와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현은 근 1주일간을 우리 관저에서 먹고 자고 놀았다. 식사할 때도 김정일과 같이 식사했다. 고모부의 사촌이면 김정일과는 별 상관도 없는데, 관저에 데려오고 밥도 같이 먹는 것은 상당한 관심 표명이었다. 장현은 김일성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79년 여름 장현이 모스끄바에 공부하러 들어왔다. 아줌마 둘이 수행하고 있었다. 장현의 이모와 밥 해주는 아줌마였다. 모스크바 브누코보 소재 외교단 아빠트에서 방 3개에 거실이 있는 한 집을 잡고, 동네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 수속을 최준덕이 했는데, 이후 그 아이의 관리도 최준덕이 했다.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준덕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일남 : 부부장 동지, 현이가 장성택이 아들은 아닌 것 같은데……, 생긴 것도 수령님을 많이 닮았고....



최준덕 : 쉬? 일남 동무 몰랐어? 수령님 아들이야.



일남 : 그래요! 아니 그럼 엄마는?



최준덕 : 이모라고 따라온 녀자가 엄마야.



그 녀자는 매우 젊었다. 최준덕에 의하면, 그 녀자는 김일성 담당 간호원이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애를 낳았다는 것이다. 김성애의 눈치도 보여 숨겨져 키우다가 김정일에게 알아서 키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평양 근교 철봉리에 있는 작은 초대소를 줘서 생모를 이모로 변신시켜 키웠다고 한다. 엄마라고 하면 아버지가 누구인지 설명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이모가 키우는 것으로 한 것이다. 김일성은 가끔 조용히 아들을 보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최준덕은 그 애를 모스끄바로 데려와서 집을 잡아주고 학교에 입학시켜줬을 뿐만 아니라, 가끔 평양에서 오는 주식과 부식물을 비롯해 김정일이 보내주는 생활비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나도 그 녀자를 한번 보았다. 최준덕이 김정일이 전해주라는 돈을 그 여자에게 전해줄 때 따라간 것이다. 나는 차 안에 있었고, 최준덕이 그 녀자를 경비실에서 만나 전해주는 것을 봤는데 예쁘장하게 생겼다. 나는 상황이 은근히 재미있어서 최준덕에게 롱담을 걸었다.



최준덕 : 일남 동지 많이 기다렸지. 인차 가자구.



일남 : 부부장 동지, 현이가 지도자 동지의 이붓동생인데, 우리 관저에 와서 인사할 때는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이라고 한단 말이야.... 제대로 하자면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야.



최준덕 : 그러고 보니 일남 동지 말이 맞네.



그러니까 김일성도 아들에게 책잡힐 일을 한 것이다. 당시는 김일성도 아직 정남이의 존재를 모를 때였다. 김정일에게 자기의 숨겨진 아들을 맡긴 김일성으로서 김정일의 사생활을 안다고 해도 책망할 상황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71년생인 장현은 엄밀히 말하면 김현이다. 그런데 김정일이 장성택에게 떠맡겨 장성택의 호적에 올려 장현이 된 것이다. 측근에게도 장성택 조카라고 소개했다.



해설 : 김정일과는 달리 김일성의 녀자 문제는 공개된 자료가 많지 않다. 한 가지 자료를 소개하면, 1992년에 외국 정보기관에서 김일성이 그의 애첩인 김송죽과 나눈 국제전화를 도청한 적이 있다. 이 도청자료에는 스웨리예에 관광을 온 김송죽이 김일성에게 “나 없는 동안 다른 녀자한테 한눈팔지 말라”며 애교를 떨자, “안 그런다”고 다짐하는 김일성의 걸쭉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김일성의 숨겨진 자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친 김에 김일성과 얽힌 외국 녀성 이야기도 해야겠다. 서부 독일의 유명한 여류작가 중에 루이저 린저가 있다. 남조선에도 독자를 많이 가진 사람이라던데, 언제부터인가 글을 잘못 써서 남조선에는 가지 못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루이저 린저의 책을 간부용으로 평양에서 출판하도록 했는데, 인민들에게는 배포하지 않았다. 북조선에 대해 친근감은 가지고 있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간부에게는 보라고 했고, 언젠가 관저에 가지고 와서 그 바람에 나도 본 적이 있다.



루이저 린저와 김일성은 인간적으로 서로 좋아했던 것 같다. 김정일이 밥 먹으면서 “야, 두 로인네가 떨어질 줄 모르네…….”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김일성이 외국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오래 얘기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루이저 린저와 김일성이 만날 때는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되는데……, 통역을 사이에 둔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없는지 해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길게 만나는 것은 서로 눈빛이 통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루이저 린저는 뻔질나게 평양에 왔다. 김일성과 만나면 껴안고 포옹하는데, 김일성이 공식적으로 포옹을 한 녀자는 루이저 린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아무튼 두 로인네가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부인 김성애는 행사 때 안 나오니까 알 수 없다. 그리고 소문도 날 수 없다. 책임부관이 김성애에게는 말하지 않고 김정일에게만 보고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루이저 린저가 김일성의 조끼를 떠 가지고 와서 선물로 주고, 김일성은 목걸이를 준 적이 있다. 기록영화에 보면 김일성은 루이저 린저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루이저 린저는 직접 짠 조끼를 입혀주는 모습이 나온다. 인민들에게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김일성은 그 조끼를 입고 루이저 린저의 손목을 잡고 연못가를 산책했다고 한다. 뒤에 통역만 대동하고서였다.



당시 루이저 린저는 김일성의 특별한 배려로 숙소도 국가원수급의 흥부 초대소에 묵었는데, 김일성이 흥부 초대소를 방문, 식사도 같이 했다고 한다. 점심때부터 시작한 얘기가 저녁 먹을 때까지 이어졌는데 이런 경우도 처음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김정일이 관저로 식사하러 왔을 때 김일성 책임부관과 통화할 때 들었다.



부관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전화를 받습니다.



김정일 : 그래, 수령님은 어찌 계시오.



부관 : 루이저 린저 녀사와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김정일 : 뭐, 아직까지 계신단 말이야. (웃으면서) 거, 두 로인네들이 눈 맞은 거 아니야? 꽤 오래있네. 하하하



김정일이 이런 롱담까지 하며 웃을 정도로 김일성과 루이저 린저와 가까웠다. 김일성은 루이저 린저가 훌륭한 조언자이고 인생의 동반자라는 식으로 몇몇 측근 간부들에게 얘기했던 적도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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