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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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남조선에 도착한 김정일의 처조카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김정일의 처조카 리일남이 1982년 10월 남조선으로 망명했다. 리일남은 김정일의 첫 번째 녀자인 성혜림의 조카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함께 자란 인물이다. 리일남은 14년동안 자신의 신분을 로출시키지 않다가 1996년 김정일 일가의 진상을 고발한 수기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리일남은 1997년 2월 김정일이 보낸 공작조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승객여러분. 이 비행기는 곧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좌석벨 트를 매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Ladies and gentlemen. We'll be arriving in Kimpo International Airport. please fasten your seat belts. Thank you.



드디어 서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리일남이 남조선에 온 것이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처조카로 거칠 것 없이 살아오다가 마침내 금지된 땅을 넘은 것이다. 1982년 10월 1일 오후였다.



이미 1시간 전부터 비행기는 남조선 상공을 날아왔지만 막상 비행기 승무원의 방송을 들으니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비행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남조선 땅은 북조선의 자연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산세가 조금 부드럽다고나 할까, 북인지 남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경치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긴장되였다. 내가 새롭게 삶을 시작해야 하는 곳, 이곳은 과연 나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나 또한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서울에 오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사흘 전 스위스 제네바의 남조선 대표부에 들어갈 때부터 시시때때로 가슴을 짓눌렀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불쑥불쑥 머리를 헤집었다.



북조선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친척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남조선을 택한 것은 자유 때문이였다. 남조선에 자유와 풍요가 기다린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제네바를 출발해서 프랑스와 도이췰란드를 거쳐 필리핀을 우회하는 장거리 려행 끝에 서울에 도착하고 있다. 유럽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불안감이 덜 했는데 필리핀 마닐라에서 남조선의 태극기 모양이 선명하게 박힌 비행기를 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대표부 직원 : 리선생, 몸이 안 좋습니까?



리일남 : 아닙니다. 비행기를 오래타서 좀 어지러운 모양입니다.



대표부 직원 : 서너 시간만 더 가면 되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내 얼굴을 걱정스럽게 살펴보던 남조선 대표부 직원은 더 묻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고, 비행기에 긴 침묵을 함께 실었다.



비행기는 내 마음과 관계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덜컹하더니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행기가 조용히 멈추고 시끄럽던 엔진소리도 잦아졌다. 드디어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또다시 입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눈을 감았다.



14년전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남조선에서의 새로운 삶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작되였다. 이제는 22년을 산 북조선보다 시간은 짧지만 더 많은 삶의 축적을 가지게 되였다.



나는 김정일의 처조카라는 사실을 극비로 한 채 남조선의 한 공민으로서 남들과 똑같이 살아왔다. 학교도 다녔고, 직장생활도 했으며, 사업이라는 것도 해 보았다. 자본주의를 배우는데 비싼 수업료를 물기도 했다.



정착과정에서의 시행착오로 내 개인은 물론 여러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일도 있다. 내가 모르는 실수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곳 남조선에서 평범하고 자유로운 공민으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년 초 어머니와 이모 일행의 망명 보도가 세상을 뒤집어 놓으면서 내 존재가 14년 만에 드러났다.



해설 : 1996년 2월 리일남의 어머니 성혜랑과 이모 성혜림이 모스크바를 탈출하여 서방으로 망명했다는 보도가 터졌나왔다. 특히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성혜림의 서방망명 보도’는 남조선을 비롯하여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리일남은 14년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김정일의 가족으로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수기로 공개했다. 나중에 확인되지만 성혜림은 아들 김정남 때문에 망명을 하지 않았고 성혜랑만이 망명했다. 한편 김정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 리일남은 “김정일이 나를 가만둘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웠다”며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예감하고 있었다.



나는 신원이 공개됨으로써 홀가분하기도 했고, 다시 한 번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제 또 다른 의미에서, 새 생활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북조선에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남조선에서는 어떤 궤적을 그렸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은 개인의 작은 력사이기도 하지만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호상증오와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온 한 청년이, 두 체제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나를 말해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나의 경험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면이 있다. 나는 북조선에서 몇 안 되는 최고 권력층의 생활을 스스로 누리고 또 지켜봤다. 짐작만 하고 소문으로만 전해오는 북조선 최고 권력층의 생활을 증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럴 정도로 내가 밝힌 정보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극소수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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