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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 특집방송 - 김정일에 대한 력사적 평가

연중기획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12-19 23:51


사회 : 지금 여러분들은,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자유조선방송 특집 방송을 듣고 계십니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김정일이 죽었습니다. 그동안 김정일의 손에 죽어나간 인민들을 생각하면 그가 응당히 죄 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이젠 력사를 통해 심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일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그가 조선반도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평가해 보겠습니다. 자리에 리유정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리 : 네, 안녕하십니까?



사회 : 먼저 김정일의 생애부터 살펴봤으면 하는데요.



리 : 네,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로씨야 하바롭스크에서 태여났습니다.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처 참사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독한 성격과 권력욕으로 삼촌 김영주와 이붓어머니 김성애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1974년 조선로동당 정치위원회 위원, 즉 지금의 정치국 위원 겸 조직지도부장이 되면서 권력의 전면에 떠올랐습니다. 김일성의 비호 아래 후계체제를 구축한 김정일은 1980년 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인정됐고,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김일성으로부터 모든 권력을 넘겨받았습니다. 이후 수백 만 명의 인민들을 굶겨죽이고, 3대 세습이라는 반동적인 권력놀음을 벌리다가 지난 17일 오전에 심근경색으로 죽었습니다.



사회 : 김정일의 생애를 보면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요, 대표적으로 그의 출생년도와 출생지가 조작이 되지 않았습니까?



리 : 네. 북조선 당국은 김정일의 출생년도를 1942년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사실 김정일은 41년에 태여났습니다. 김일성과 함께 ‘꺾어지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 출생년도를 조작한 것입니다. 또 김정일은 자신이 항일무장투쟁의 계승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백두산 밀영에서 태여났다고 선전했지만, 일제의 토벌을 피해 김일성이 1941년 하바롭스끄로 들어가 쏘련 군인으로 있을 때 태여났습니다. 김정일의 어리시절 이름은 ‘유리 일쎄노비찌 김’이였는데요, 김정일은 1950년대 후반 남산고급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김유라’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나중에 김정일은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출생지역도 조작했습니다.



사회 : 김정일은 1974년부터 ‘당 중앙’이라고 불리며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이때부터 조선을 통치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김정일의 38년 통치에 대해서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 사상, 문화, 생활에 대한 평가부터 해봤으면 하는데요?



리 : 일반 백성과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다릅니다. 지도자는 인민들에게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 기준을 적용했을 때 김정일은 인민들에게 불행만 안겨줬을 뿐입니다. 가장 엄중한 것은 김정일이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적용해 인민들의 영혼마저 수령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김정일이 1974년 후계자로 등장하자마자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해서 10대 원칙을 강력하게 적용했고, 생활총화를 통해 인민들의 생활과 정신까지 지배했습니다.



사회 : 김정일이 이른바 ‘혁명적 수령관’이라는 사상을 앞세워 인민들을 수령의 노예로 전락시킨 것도 엄중한 죄과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리 : 네,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수령은 인민들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준 어버이이기 때문에 인민들이 충성과 효성을 바쳐야 한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또 인민들은 수령을 옹호하고 수령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기 위하여서는 자기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쳐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 정신 같은 말들이 나왔는데요, 이 수령관에 근거해 인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자주성을 잃고, 수령의 완전한 노예로, 수령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사회 : 정말 반인민적이고 비인간적인 사상인데요, 수령이 절대자로 군림하게 되면서 정치생활에서도 인민들은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특히 인민의 리익을 대변한다는 조선로동당마저 김정일의 독재를 실시하는 도구로 전락되지 않았습니까?



리 : 네,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을 대신해 독재를 실시할 전임 당일군들을 대폭 늘려 당을 개인의 당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당내 민주주의는 완전히 말살시켰고, 당을 자신의 유일적 령도를 집행하는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김정일이 사망할 때까지 당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중앙당 전원회의는 1993년 이후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당내 절차가 무시되고 김정일 개인의 지시로 당이 운영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김정일은 당 내에서 선거제도를 완전히 형식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세포비서까지 다 상급당이 임명하도록 하는 체계를 세웠습니다. 당 간부들이 당원들에 의해서 선거되지 않다보니 간부들은 인민들을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급당에 아첨하면서 관료주의를 부리고, 인민들을 탄압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사회 : 정치생활에서 법이 지켜지지 않아 인민들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리 : 네, 근대사회는 법치사회라는 말이 있듯이 법에 의한 통치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조선에서의 법은 선전용이고 인민들은 실지 생활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공화국 헌법을 보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민주주의적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민들은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자유도 없고 동창회 같은 사적인 모임마저도 금지되여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도 없습니다. 사실상 인민들은 무법천지에서 권리를 모두 빼앗긴 채 살고 있는데요,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이 바로 김정일입니다.



사회 :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대우를 해서 청년들의 미래를 완전히 망쳐버린 것도 바로 김정일이지 않습니까?



리 : 네. 바로 그것 때문에 한창 꽃펴나갈 청년들이 자신의 출신성분에 절망하면서 청춘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가족 중에 성분이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대학을 물론 직장, 군대, 결혼까지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받는 곳이 바로 조선입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독재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 봉건시대의 신분제 사회처럼 북조선을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받는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사회 : 과거 봉건시대에 죄를 지은 사람의 3대를 멸족하는 련좌제가 있었는데 조선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련좌제가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리 : 네,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독재체제에 영향을 미칠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력한 련좌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과오를 범하면 본인이 처벌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친척, 친구들까지 처벌대상이 됩니다. 과오를 범한 사람이 높은 직위에 있을 수록 그 영향을 청산하기 위한 처벌대상의 범위가 더 넓어지게 되는데요, 이 련좌제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조선 전역에 있습니다. 이 련좌제는 인민들의 정치생활을 억합하는 강력한 억압도구로 리용이 돼 왔습니다.



사회 : 김정일은 정치생활 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의 경제까지도 김정일 개인의 경제로 만들어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걸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리 : 네, 그렇습니다. 조선의 경제를 크게 세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당경제, 군대경제, 인민경제입니다. 김정일은 당에 39호실과 38호실 같은 개인의 외화벌이 기관을 만들어 인민들과 국가의 재산을 빼돌려 왔습니다. 이 기관들은 전 당적으로 ‘충성의 외화벌이’ 같은 운동을 벌려 김정일의 개인금고를 채우고 있으며, 국가의 주요 기업소들을 장악해 외화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으로 있는 군대의 경제도 사실상 김정일의 소유입니다. 김정일이 이렇게 국가의 경제를 개인의 경제로 전화시키고, 외화를 독점하면서 내각의 총리는 몇 십만 딸라가 없어서 쩔쩔매고 있습니다. 더구나 김정일이 인민경제를 관리하는 내각에도 각종 지시를 내려먹여 경제관리에 심각한 란관을 조성했습니다. 오늘날 조선의 경제가 파탄난 것은 전적으로 김정일의 책임이라고 하겠습니다.



사회 : 김정일은 나라의 모든 재산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인민들이 굶어 죽던 1990년대 중반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조중 국경을 넘은 인민들을 탄압하지 않았습니까?



리 : 1995년부터 98년까지 적어도 350만 명의 인민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라는 구호만 내건 채 인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만을 강요했습니다. 또 식량난으로 자신의 독재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인민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도 막았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굶어 죽어야 했습니다. 굶어 죽으나 총 맞아 죽으나 똑같다는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을 넘었던 인민들은 추격을 나온 보위부에 체포되여 잔인한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회 : 당시 김정일은 인민들을 살릴 돈이 있었는데, 이 돈을 자기 아버지의 시신 궁전에 쏟아 부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인민들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데요?



리 : 네,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1995년 자기 아버지 김일성의 시신을 영원히 보존하고 또 그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금수산기념궁전을 대대적으로 꾸렸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돈이 8억9천만 딸라입니다. 이 돈이면 당시 국제곡물 가격 시세로, 강냉이 600만톤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매년 200만 톤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인민들이 대규모로 굶어 죽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는데 김정일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회 : 고난의 행군 시기 굶어 죽은 인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요, 김정일의 죄악을 반드시 기록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일은 생애를 보면 인민들에 대한 인권탄압의 생애라고 할 정도로 인권유린을 심하게 했는데요, 정치범수용소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리 : 네, 정치범수용소는 과거 나찌의 유대인 수용소에 버금갈 만큼 최악의 인권유린 장소입니다. 김정일은 과거 자신의 후계체제를 반대했던 숱한 사람들을 붙잡았다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에 가뒀습니다. 또 자신의 독재에 방해가 될 많은 인민들을 수감시켰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탈북자들이 이곳에 갇히고 있는데요,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짐승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한 죄만으로도 반인륜범죄자로 사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 : 김정일이 국제적 범죄를 저질러 조선의 위신을 끝없이 추락시킨 것도 평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리 : 네, 김정일은 범죄자이나 하는 행동을 국가 기구를 동원해 벌려 왔습니다. 대남공작을 위해 남조선 인민 500여명과 외국인들을 랍치해 비난을 받고 있고, 마약밀매, 무기밀매, 딸라 위조로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또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기고 비법적으로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 : 최근에 김정일이 저지른 죄는 인민의 권력을 자기 아들에게 물려준 것인데요, 죽기 직전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김정일의 권력욕을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리 : 네. 김정일은 2009년 9월 아들에게 권력을 대물림 하면서 봉건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3대 세습을 공식화 했습니다. 조선의 악화된 경제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의 길밖에 없었으나 김정일은 3대세습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권력의 대물림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수탈을 더욱 강화해 나가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회 : 끝으로 김정일은 북조선 인민들 뿐만 아니라 남조선 인민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혔는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주시죠?



리 : 김정일은 1980년대에 먄마 랑군에서 폭탄 테로를 감행해 전두환 정부의 고위 관료들을 살해했고, 남조선 려객기를 테로해 로동자 100여 명을 살해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천안호와 연평도 포사격 도발로 무고한 남조선 동포들을 살해했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무력도발을 계속해 왔는데요, 그가 남조선 동포들에게 입힌 피해도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사회 : 김정일이 1974년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 조선의 경제는 완전히 파탄이 났고, 인민들은 이중 삼중의 통제 속에서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남조선 동포들도 늘 무력도발의 위협 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조선반도의 불행의 근원이였던 김정일이 죽었습니다. 이제 김정일이 남긴 독재의 잔재를 짓부수고, 개혁개방과 민주화라는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본격적인 투쟁의 길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따라 조선의 력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리유정 기자였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리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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