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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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녀자의 반란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7-23 18:58


그는 착했다. 아니 녀자라서 억울했다. 어릴 때 남동생과 다투면 욕은 항상 그가 먹었다. 남동생이 잘못했어도 누나가 그 만한 것도 리해를 못하냐며 부모는 남동생 역성만을 들었다. 그로서는 무척 억울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동생이니까, 자기가 누나고 맏이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단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례하면 이런 경우였다. 남동생이 아프기라도 하면 부모는 이마를 짚어본다, 약을 먹인다 하며 큰 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했다. 하지만 딸인 그가 아플 때에는 달랐다. 자식에 대한 부모마음은 똑같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남동생보다는 덜하게 느껴졌다. 어디 갔다 늦게 귀가할 때도 마찬가지, 아들인가, 딸인가에 따라 어머니 태도는 갈렸다. 남동생에게는 우리 아들 배고프지 하며 얼른 밥상을 차려주지만 딸인 그에게는 네가 챙겨먹을 수 있지, 라고 하는 것이 례사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딸과 단둘이 있을 때는 반찬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있는 걸로, 원래 그릇에 담겨진 채로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버지나 남동생이 있을 때에는 달랐다. 반찬 하나라도 더 만들려 했고 있던 반찬이라도 깨끗한 그릇에 다시 담아 올렸다. 그 때마다 그는 녀자들은 스스로 자기를 천대한다고 부당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건데, 하며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가 커서 결혼을 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그는 본 가집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 똑 같이 따라했다. 남편을, 아들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살았다. 쌀이 모자라도, 집안이 어질러져도 녀자 탓, 자기가 살림을 깐지게 못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닥쳐왔다. 그 역시 다른 녀자들처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장사에 나섰다.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면 또 저녁끼니를 준비해야 했다. 설거지, 빨래하는 것도 그의 일, 남편은 고지식한데다 그 잘난 체면 때문에 선뜻 장사에 못 나섰다. 집안일도 남자라는 자존심에 애써 피했다. 그냥 집 지키는 멍멍이, 쓸모없는 낮 전등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화가 났다. 그래도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다른 녀자들에 비하면 나은 축인데, 그는 이를 악물었다. 버텼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계속될수록 그의 가슴속엔 반발심이 쌓여갔다. 이럴 바에야 혼자 사는 게 낫지, 그런데 당에서는 특별한 사유 없인 리혼승낙을 안 해준다. 그는 포기했다. 대신 언제부터 생각해온 탈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드디어 그는 가족과 함께 북조선을 탈출했다. 남조선으로 왔다. 다시 희망을 품었다. 북에서는 아무리 버둥대도 힘들었지만 남조선에서는 본인 노력만큼 잘 살 수 있었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만은 여전히 힘들었다. 남편 때문이었다. 사실 남조선에 오면 나아질 줄 알았다. 북조선에서야 공장 다녀봤자 생산도 안 되고 월급도 안 나왔지만 남조선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자주 회사를 옮겼다. 성격에 안 맞고, 체면이 깎이고, 리유가 가지가지였다. 수입이 없을 때가 많았다. 녀자들은 남자만 못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나, 자연히 북에서처럼 그가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집일은 그의 몫,



"여보 나 회사 일도 할 래 집일도 할래, 너무 힘들어요. 당신도 좀 같이 해요. 여기서는 남자들도 집일 잘 한다는데, 설거지도 다 하고,"



하지만 남편은 언제 나와 똑같다. 그것을 남편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 어쩌다 집일을 해도 어디까지나 도와준 거지 원래 자기가 할 일은 아니라는 태도다. 당연히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어느 날, 그는 신문기사를 본다. 요즘 황혼이혼, 로인 부부들의 리혼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 대부분 할머니들이 먼저 제기한다고 한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에게 억눌려온 녀자들의 반란, 그래 리혼하자. 내 인생을 찾자. 그는 결심했다.



"여보 우리 리혼해요. 더는 이렇게 못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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