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은 어떻게 경제강국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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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강 포항종합제철소의 건설

남조선은 어떻게 경제강국이 되었나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1-18 16:57

 


종합제철소는 철광석과 코크스를 고로(高爐)에서 녹여 무쇠(선철 銑鐵)을 만들고, 이 선철에서 탄소를 제거하여 강철을 만든 다음, 높은 압력을 가해 여러 용도의철판을 생산하는 곳이다. 교량과 건물의 골조, 기계, 철도레일, 자동차 강판, 배 철판,산업의 쌀...
1960년대 초 남조선에는 종합제철소가 없었다.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철근을 뽑아내던 연간 2~3만톤 규모의 간이 제강공장인 인천중공업(1953년 설립, 오늘의현대제철 인천공장) 등이 있었다.


반면, 북조선은 이미 겸이포, 청진 두 곳 제철소에서 연간 200만톤의 철강을 생산하여, 남조선을 월등히 앞섰다.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종합제철소 설립을 계획했고, 군사정부는 제1차 5개년계획에서도 울산공업단지의 일부분으로서 연산 30만톤 규모로 제철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에 따라 부정축재자의 기간산업 공장 헌납의 일환으로서 1962년 4월 이정림, 이동준 등이 한국종합제철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두 가지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자금조달의 어려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철강재에 대한 수요 부족이었다. 외국 원조기관 등이 수요부족을 이유로 자금 제공을 꺼렸기 때문에, 수요 부족이 진짜 난제였다. 1961~1962년 무렵 국내 철강수요는 연 20만톤을 넘지 못했다. 이는 철강재를 사용할 산업, 즉 조선업이나 자동차, 가전업 등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성 있는 제철소 규모는 연산 100만톤이었기에, 종합제철소를 건설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따라서 필요량을 수입해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종합제철소를 지으면 안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가 제철소 건설 의사를 밝히고 미국과 서독에 협조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명하였다. 1962년 5월 미국 피츠버그지역의 민간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밴플리트 사절단이 내한했을 때 남조선 정부 관계자가 제철소 사업 건을 논의한 바 있는데, 이를 전해들은 미 국제개발처 관계자들은 철판 수요도 별로 없는데 종합제철소를 왜 짓느냐, 브라질, 터키 등의 제철소 사업도 다 실패했다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광부와 간호사 파견 및 차관 도입으로 협력관계를 높여가던 서독 쪽도 1962년에 노크하였으나, 독일 철강공업자단체가 파견한 조사단은 인천제철소를 확장하는 게 낫다고 회답하였다. 이에 박정희는 1963년 1차5개년계획을 축소 수정할 때 종합제철소 건설계획을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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