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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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서해해전, 남조선의 도발입니까?

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7-04 18:25


물음; 2002년 황해남도 옹진 앞바다에서 일어났던 서해 해전이 남조선의 도발로 일어난 사건이 맞습니까?



대답; 지금까지 서해에서 해전이 일어난 것은 총 3차례로 2002년에 일어난 것은 제2차 서해해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2차 서해해전은 북조선 당국의 도발로 일어났습니다.



북조선 당국이 제2차 서해해전을 일으킨 리유는 우선 1999년에 있었던 1차 서해해전에서 대참패를 당한 복수 때문입니다. 1999년 6월15일 북측 해군이 서해해상분계선을 침범해 남측 해군에게 먼저 사격을 가했습니다. 이에 남측 해군이 대응 사격을 하면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북측은 먼저 선제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경비정 4척이 크게 파손돼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투로 북측은 20여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남조선은 함선과 고속정이 일부 파손되고 7명이 가벼운 부상만을 입었습니다.



김정일은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이듬해인 2000년 처음으로 열린 북남 수뇌회담에서 6.15공동선언에 도장까지 찍었지만 돌아앉아서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6월29일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북측 해군은 또다시 서해해상분계선을 넘어 경고방송을 하던 남측 고속정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당시 남측은 6.15공동선언이 나온 뒤의 평화분위기에 젖어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해 6월은 남조선이 일본과 함께 세계축구선수권 대회를 열고 있어서 나라 전체가 잔치 분위기나 다름없었습니다. 김정일은 이 틈을 노리고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이날 전투로 남조선 해군 6명이 죽고 18명이 다쳤습니다. 북측 해군도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김정일은 개성과 금강산 등 륙지에서 들어오는 남측의 경제적 지원 통로는 열어두면서도, 상시적으로 남측을 협박하고, 북남 협력 분위기에 젖어 북측 인민들이 환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서해에서 도발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같은 김정일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북과 남의 끌끌한 청년들만 희생당했다는 것이 제2차 서해해전의 진실입니다.



엔딩; 북과 남 인민들이 서로를 알고 리해할 때 통일의 날도 빨리 올 수 있습니다. ‘남조선에 대한 궁금증, 리광명이 풀어드립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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