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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과 북조선과 중국의 갈등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36과 ‘북조선과 중국의 갈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61년 케네디 미국대통령이 윁남 전쟁에 미국의 개입을 결정하자, 사회주의 나라들 역시 이에 대한 맞대응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흐루쇼브가 쓰딸린에 대한 우상화를 비판하고 서방진영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해 나서면서 중국이 이에 강력히 항의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국과 쏘련간의 대립은 윁남 전쟁에 대한 대응에서도 이어집니다. 이 시기 북조선은 중국과 함께 쏘련의 수정주의를 강력히 비판하였으며, 국제 공산주의운동과 반미, 그리고 쁠럭불가담국가들과의 외교 등 모든 부분에서 중국공산당의 로선과 정책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윁남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서 북조선과 중국과의 갈등도 시작됩니다. 쏘련공산당은 1964년부터 전면전으로 확대된 윁남 전쟁에 쏘련과 중국, 윁남의 지도자들이 모여 공동 대응할 것을 제의합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쏘련의 수정주의적 자세를 문제 삼아 이를 거부하며 북부 윁남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실망한 북조선이 ‘미제를 반대하는 전쟁에서의 공동행동과 통일전선은 수정주의를 반대하는 투쟁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중국을 비난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런데다가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북조선은 중국과의 대립을 본격화합니다. 문화대혁명시기 홍위병들이 중국공산당의 당권파를 공격하고 당중앙위원회를 전복하자 북조선은 이를 강력히 비판합니다. 1967년 1월 홍위병이 붙인 벽보에 최용건이 김일성을 체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이에 조선중앙통신은 ‘중국 홍위병이 신문과 벽보 및 삐라를 통하여 퍼뜨리는 선전은 전혀 근거가 없는 날조’라고 반박합니다. 2월에 홍위병 선전물들이 다시 김일성이 모택동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고 비판하자 북조선은 ‘벽보의 내용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홍위병들이 수정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며 다시 중국을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풍조가 북조선에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중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쓰딸린을 우상화하며 숭배하던 것에 대한 비판이 북조선에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쏘련을 비판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였습니다. 당시 북조선의 모든 정책은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 유지에 유리한가, 불리한가가 기준이였습니다. 이렇게 북조선과 중국 간의 갈등이 지속되다가 1968년 1월 23일, 미국의 해군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가 북조선에 랍치되면서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합니다. 푸에블로호가 랍치되자 중국은 저들의 방위선이라고 생각한 북조선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량국 간의 관계가 점차 복원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69년 6월 쏘련의 모스크바에서 열린 공산당대회에 북조선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중국의 립장을 대변하자 드디어 이들 중국과 북조선과의 관계개선의 명분이 생기게 됩니다. 결국 북조선과 중국은 196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20돐 기념행사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최용건이 참석함으로써 4년간의 갈등을 끝내고 원래의 우호적인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북조선과 중국의 관계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점점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중국은 철천지 원쑤라고 하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며 개혁개방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것은 사회주의 시절에 무너진 경제를 살리고 인민들을 굶주림에서 해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에 쏘련이 무너지면서 동, 서간의 랭전이 끝나고 세계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중국이 언제까지나 북조선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게 되였습니다. 특히 북조선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남조선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조중 간에는 다시 긴장이 조성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옛날과 같은 혈맹의 론리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것이 현 시대의 추세인 것입니다. 물론 북조선으로서는 아직도 중국은 유일한 형제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예전 같은 형제의 나라가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김정일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36과 ‘북조선과 중국의 갈등’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37과 ‘박정희의 경제개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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