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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왜곡한 김정일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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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31 13:53

안녕하십니까. 기획론평 시간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김정일 독재집단의 이른바 혁명력사의 실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조선의 혁명투쟁력사를 자기 개인과 가족들의 투쟁력사로 바꾸었습니다. 이를 위해 력사적 사실조차도 서슴없이 왜곡하였습니다. 1940년 말, 김일성은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쏘련으로 넘어가 쏘련군대 군관으로 지내게 됐습니다. 이때 낳은 자식이 바로 김정일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그대로 말한다고 해서 굳이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은 저들의 혁명전통을 미화하기 위해 “백두산 밀영에서 김정일을 낳았다”고 거짓으로 꾸며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차마 웃지 못 할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김일성은 빨찌산 참가자들을 불러 “김정일이 탄생한 백두산 밀영 자리를 찾아내라”는 과업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찾는 시늉만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김일성은 자기가 직접 찾겠다며 돌아다니다가 경치가 좋은 곳을 “여기가 밀영지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당 력사연구소에서는 거대한 화강석 바위를 구해다가, 엄청나게 큰 글자로 ‘정일봉’이라고 새기고 그것을 산봉우리에 올려다 붙이는 큰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는 것도 만들어 놓고, 이 집에서 김일성과 김정숙이 살면서 빨찌산 투쟁을 지도하였으며, 여기서 김정일도 낳았다고 선전하였습니다. 하지만 1940년 말에 쏘련에 들어간 김일성은 1945년 9월에서야 북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어떻게 1942년에 백두산 밀영에서 김정일을 낳을 수 있었겠습니까?



구호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구호나무가 언급된 것은 빨찌산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 회상기에서 나무껍질을 벗기고 ‘조선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쓴 일이 있다고 하면서부터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그런 나무가 발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미화되면서 대대적인 구호나무 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도처에서 구호나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먹으로 쓴 글씨가 수십 년 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대로 보존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전체 빨찌산 참가자들의 수자보다도 더 많은 구호나무가 발견되면서 인민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김일성의 혁명전통을 과장하고 력사를 왜곡하는 데서 김정일은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많은 소설과 영화를 만들어 왜곡된 력사를 사실인 것처럼 선전했습니다. 또한 거짓이 드러날까봐 림춘추를 비롯한 항일 빨찌산 참가자들이 쓴 회상기를 모두 회수해버렸습니다. 빨찌산 참가자들이 아무리 김일성을 우상화하여 회상기를 쓴다하여도 실수하여 때때로 진실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김정일은 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가 아니라 소설가들이 만들어 낸 가짜 력사를 마치도 사실인 것처럼 꾸며냈습니다. 그리고는 당조직과 학교를 통해 만들어진 가짜 력사를 인민들에게 강제로 주입시켰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독재집단이 아무리 력사를 왜곡한다고 해도 력사적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기획론평의 리광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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