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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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14 - 가해국가 : 탈북여성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당국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7-01-24 09:05


안녕하십니까? 이광백입니다. 북한에서 반(反)인도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북한 지도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에 인권사무소를 설치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만들어 북한 지도부에게 인권침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제사회와 한국이 왜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15년간 살았던 고지은 씨를 만나,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 여성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증언을 들어봅니다.

- 고지은씨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고지은씨가 인신매매라는 방법을 택해서 다시 탈북해  중국에 나온 이야기까지 들어봤습니다. 인신매매로 첫 소개 받았다던 분과 계속 사신 건가요?

한족 사람과 살기가 어려워서 잠시 이별했었어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헤어지니 마음에 상처가 남더군요. 그래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여성과 살고 있더군요. 남편은 저더러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고, 시아버지도 참 안 됐다는 위로만 건넸어요. 저는 결국 발길을 돌려 나오면서, 내 걱정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줬습니다. 이후 계속 걷는데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탈북해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으로 가 한동안 지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동네에서 제게 새 남편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어요. 탈북 여성들이 와서 고생하니 남편을 만들어주자는 것이었죠. 마을에서 언니동생 하며 지냈던 친구가 자기 동생을 소개시켜주더군요. 제가 하도 여기저기 팔려가니 안쓰러웠나 봐요. 그래서 차라리 한 동네에서 서로 알고 지내는 남성과 살라며 소개를 시켜줬고, 덕분에 저는 그 분과는 인신매매 관계가 아닌 소개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 새로 만난 남편의 생활 형편은 어땠나요?

말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빚을 크게 지어서 집도 다 빼앗긴 상태였고, 남편은 농사를 짓던 사람인데 땅마저 빼앗겼더군요. 그래서 늘 외지로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물론 결혼 전에는 이 사실을 몰랐죠. 그런데 함께 살아보니까 허구한 날 빚쟁이들이 찾아오는 게 아니겠어요? 시아버지가 빚을 못 갚고 돌아가시니 그 빚을 계속 아들이 갚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 그렇게 사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가난이었죠. 세숫비누 살 돈도 없었거든요. 당시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교회에 남들이 쓰던 세숫비누 두 장이 있더라고요. 그 중 한 장을 가져가서 쓰면 어떨까 하다가, 벌 받을 것 같아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 정도로 가난했던 게 생각나네요.

- 남편이 다정다감하게 챙겨주기는 했나요?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남편과 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새로 만난 남편이니 내 삶도 좀 나아질까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 북한에서 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나서 사람들 시선은 어떻던가요?

동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북한에 있으면 다 굶어 죽는다는데 잘 왔다고 해주고요. 다만 인격적으로 대할 때는 좀 깔보는 인식도 있더군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며 무시하는 것이죠.

- 앞서 그 동네에 같은 탈북 여성들이 살았다고 하셨는데, 서로 의지가 많이 되셨나요?

그럼요. 서로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생일이면 같이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외로우니 북한에서 살 때 있었던 이야기하며 놀기도 했죠.

- 탈북여성이 중국 시골에 팔려갈 경우 도주를 우려해 같은 동네에 탈북 여성들끼리라도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는데요. 그런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런 건 당연히 있습니다. 저도 겪었고, 우리 탈북민들이 다 겪는 일이죠. 탈북 여성들끼리 친해지면 서로 모여 탈출할까봐 절대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했어요. 만약 한 여성 탈북민 집에 놀러가 이야기라도 할 참이면, (남편들이) 바로 우리들을 찾아와 개 패듯 때리는 겁니다. 당시엔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어요. 제집 식구니까 챙기는 건 줄 알았던 것이죠. 특히 공안(公安)이 워낙 무섭다고 하니까, 공안 감시에서 지켜주려고 저렇게 경고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한 탈북 여성은 남편이 술만 먹으면 그렇게 때렸대요. 장작 같은 걸로 사정없이 때리는데, 남이 들어와 말릴까봐 문도 걸어 잠그고 불을 끄고 때렸답니다. 장작 몽둥이면 나뭇가지 때문에 뾰족뾰족 하잖아요? 그걸로 살이 사정없이 찢기기도 했대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소리를 막 지르니까, 뒷집 촌장이 구하러 오긴 했나 봐요. 문이 잠겨 있으니 창문을 발로 차서 뜯고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이 자매는 결국 매 맞는 걸 참지 못해 끝내 도망갔습니다.

다른 한 집에도 탈북 여성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남편이 늘 아내가 달아날까봐 때렸대요. 아니, 아내를 믿어주고 부부로서 품어주면 왜 달아나겠어요? 인간적으로 자기네가 못되게 구니 달아나는 건데, 그걸 모르고 괴롭히더군요. 그래서 이 여성이 장마당에 나갈 때도 아들을 데리고 가지 못하게 했어요. 혹시 도망갈까 봐 아들을 인질처럼 잡아놓는 것이죠. 한 번은 이 여성이 너무 사는 게 고달파 도망을 쳤는데, 금세 잡더니 죽기 전까지 때리더군요. 그러더니 공안에 데려가려 했어요. 탈북 여성들이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도망치다 잡혀서 공안으로 끌려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집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해도 공안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아야 합니다. 아무튼 그 여성도 남편에게 겨우 도망쳤기에 제가 잠시 몸을 숨겨 줬는데, 남편이 제 집 근처까지 수색을 해와 너무 무섭더라고요. 결국 그 여성은 나까지 잡힐까봐 제 발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게 너무나 가슴 아프더군요.

- 그랬군요. 고지은 씨 아이는 있으신가요?

네, 딸 하나 낳았습니다.

- 아이를 학교나 병원에 보낼 수는 있었나요?

탈북 여성의 아이는 그나마 중국에서 호적에 올릴 수는 있습니다. 공안에 아는 사람을 찾아 돈을 쥐어주고 호적에 올리도록 한 것이죠. 그래서 학교도 보내고 병원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 다른 탈북민 중에는 자녀의 호적을 못 얻는 경우도 있나요?

네, 17살이 되도록 자녀가 국적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국적이 없어도 학교는 다닐 수 있어요. 물론 여기로 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만 다닐 수 있고, 대학은 절대 못 가죠. 어차피 신분은 밝혀지게 돼 있어요. 다행히 북한 사람 아이라고 하면 국적이 없어도 기초 공부는 시켜주죠.

- 중국에서 자녀를 낳고 몇 년간 사셨나요?

15년 살았습니다. 아이는 지금 16살이에요.

- 한국 오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저는 사실 탈북한 날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는 선(브로커)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애를 낳고 키우다보니 한국에 갈 엄두가 안 나더군요. 한국으로 가고는 싶은데, 애를 업고 오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또 남편도 한국행을 반대했고요.

그러다가 제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하게 됐어요. 중국 병원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하려니 신분증을 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신분증이 없어서 진료도 받지 못했어요. 보험도 없었고요. 그 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국적을 얻기 위해선 대한민국에 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중국은 보호받을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안 이상 무조건 한국에 가야겠더라고요.

- 그렇게 2016년까지 중국에 계시다가 한국에 오셨는데요.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에는 탈북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가 많았는데 최근에도 그런가요?

네, 탈북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는 앞으로도 없어지긴 어려울 겁니다. 요새는 한국으로 바로 들어오는 여성이 많아서 마치 인신매매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작년에 들어온 탈북민 분에게 들은 얘긴데,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던 한 북한 여대생이 있었는데 중국에 가서 공부도 시키고 돈도 벌게 하라고 누가 꼬드겼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매매꾼에게 넘기려던 속셈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깜빡 속아 중국에 넘어가면 바로 인신매매로 팔려가게 되는 실정입니다.

- 말씀하신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고통 받는 탈북 여성들이 많습니다. 이 분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국 당국이 탈북 여성들에게 국적은 못 주더라도 보호는 해줬으면 좋겠어요. 목숨을 걸고 넘어온 사람들인데, 다시 잡아 북송한다는 건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이에요. 중국 사회가 아직도 비참한 인권 유린에 동조하고 있다는 건 너무나 기막히고 부정한 일입니다.


중국 내에서 불법 체류하는 많은 탈북 여성들은 숨어 살기 위해 중국 남성과의 동거를 선택합니다. 특히 강제 동거를 하는 경우 비인간적 결혼생활과 빈곤, 끊임없는 감시를 견뎌야 합니다. 또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은 불법으로 호구(戶口)를 취득하지 못하면 중국에서 적절한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중국 당국은 탈북 여성들의 신분을 보장해 그들이 중국에서 난민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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