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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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불평불만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1-28 15:46

한국에 와서 둘째아이를 출산했다. 헌데 아들이라 그런지, 배안에 있을 때부터 발길질이 심하더니 좀 크자 잠시도 가만있질 않았다. 누나 학용품을 죄다 망가뜨리질 않나, 고뿌의 물을 엎질러 버리질 않나, 암튼 그 애 손길이 닿는 곳의 물건은 모조리 치워야 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했다. 방안에서도 요리 저리 뛰어다녔고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발을 탕탕 구르기도 했다.

아기들은 그러면서 큰다. 부모립장에서는 죄다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문제는 아기가 뛰어다닐 때마다 아래 집 천장이 울린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전화가 왔는데 당연히 우리는 미안해하면서 아이를 주의시켰다. 하지만 어린 아이라 잠시만일 뿐 다시 또 반복되곤 하였다. 꼼짝달싹 못하게 계속 붙들어매둘수는 없고,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속상함에는 아랑곳없이 아랫집은 매번 항의를 하는 것이였다. 좀 너무하다 싶었다. 물론 리유야 어떻든 간에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었다면 백프로 우리 잘못이고 미안해할 립장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 아닌가? 조금만 리해해주면 안되나? 아랫집이 원망스러웠다. 보통사람보다 좀 예민한 분들인지, 아니면 리해심이 부족한 건지, 암튼 아이가 어지간히 자라서야 잠잠해졌다.

지금도 아랫집을 생각하면 속이 불편해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내가 북한에서의 사고방식 때문에 그분들을 리해 못하는 것은 아닌가? 왜냐하면 그 동안 한국 사람들이 이런 저런 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네, 하고 여겨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리 아파트 가까이에서 건축공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먼지가 날리고 소음이 난다며 아파트 부녀회장이 각 세대들에게 호소해 시위를 벌렸다, 나로서는 좀 충격이었다. 사는데 조금 불편하다고 시위를 하는 것은 북한이라면 상상도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소고기가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냥 끓여먹으면 될 걸 가지고 숱한 사람들이 시위를 하다니, 정말 리해가 안됐다.

지금도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질 않는다. 자기 구역에 화장터가 들어서는 걸 반대한다든지, 쓰레기 매립장을 건설하지 말라던 지, 리유가 가지가지다. 얼마 전에는 택시를 대중교통화 한다는 바람에 벌이가 줄어든다고 버스운전수들이 몽땅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몇 달 전부터는 정부 의료민영화방침에 따른 포괄수가제 실시에 맞서 의사들이 계속 시위를 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란 구체적인 질병과 수술치료에 관계없이 진단명에 따라 진료비를 포괄적으로 정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치료비가 줄어드는 대신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의사들의 수입도 적어진다는 것이다.

모두 북한식 사고방식으로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다. 북한에는 그 보다 더 한 문제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도 시위는커녕 생활상 자그마한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조차 조심스럽다. 자칫하면 수령님의 령도로 꽃피는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반발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참는 것에 익숙돼 있다.

이제는 한국에 정착한지 꽤 오래 됐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사고방식이란 완전히 없어지기 힘들다. 아무리 이제는 한국사회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해도 가끔씩은 나도 모르게 북한식 사고방식으로 한국사회나 누구를 평가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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