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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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커피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1-20 18:16


어릴 때 북한에서 보던 외국영화나 한국을 무대로 한 영화에서는 커피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대개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얘기를 나누거나 비 뚝뚝 떨어지는 창가에서 누군가를 그리며 홀로 커피를 마시는 서정적인 장면들이었다. 그래서인가, 커피, 하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떠오르고 그런 생활이 있는 외부세계가 부러웠다.

하지만 커피와 관련한 그 상상은 한국에 와서 많이 깨졌다. 한국에서 커피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 보다는 누구나 아무 때든 즐기는 대중음료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분위기 있는 다방들도 있고 그 곳의 커피향이 좋아 다방커피만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일부일 뿐이고 한국에서 커피는 누구나 허물없이 나눠 피우는 담배와도 같은 것이다. 어디에 가든 커피서비스는 기본인거고 공공장소에는 아무 때나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는 커피자동판매기도 있다. 식당이나 회사들에도 항상 커피가 준비돼있어 원하는 대로 마실 수가 있다.

한국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옛날에는 커피가 사치였고 그래서 누구나 못 가는 커피다방은 대체로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커피문화는 점점 활기차고 대중적인 것으로 진화하였다. 암튼 누구나 부담 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잘 살게 된 것은 좋은 데, 반면에 옛날의 조용하고 분위기 있던 커피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듯해서 좀 아쉽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북한에서 살 때 우리 옆집에 찾아오곤 하던 커피 아저씨가 생각난다. 재일귀국자인 그는 같은 귀국자인 우리 옆집에 자주 커피 마시러 오곤 하였다. 커피아저씨란 별명도 그래서 붙여진 것이었다. 당시 우리 옆집은 일본친척방문이 잦았는데, 친척에게 대접하려고 외화상점에서 인스탄트 커피를 사다놓곤 하였다. 그 때 외화바꾼돈으로 25원인가, 북한 돈으로 2500원정도 했다고 한다. 당시 7- 80원 수준의 로동자 월급으로는 사먹을 엄두도 못내는 비싼 것이라 그 집에서도 아끼는 커피였다. 그런데 한번은 집에 놀러온 그 아저씨에게 커피를 대접했더니 그 다음부터 계속 커피를 청하러 오더라는 것이었다. 같은 귀국자끼리 매정하게 굴 수도 없고, 그 집 어머니가 부담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그랬던 까닭이 있었다. 일본에서 살 때 마약을 했던 그 아저씨는 더 있다가는 폐인이 될 것 같아 북한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북한에는 마약이 없으니 귀국을 하면 마약을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헌데 아무래도 마약은 중독성이 오래가는지, 그 아저씨는 귀국해서도 오랫동안 괴로워했던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북한에서는 마약을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그래서 그 아저씨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있는 커피로 위안을 삼고자 계속 그 집에 찾아왔던 것이다.

그 아저씨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기 한국에 오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커피를 마실 수가 있을 터인데, 그런데 한편으론 많이 걱정되기도 한다. 지금 북한은 고위층 간부로부터 소학교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마약에 손을 댈 정도로 마약문제가 심각하다. 마약중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남의 집 커피에까지 집착했던 그 커피아저씨인데, 다시 마약에 손대지는 않았을까? 마약을 끊으려고 일부러 귀국했는데, 차라리 일본에 그냥 있었을 걸, 그 아저씨 많이 후회했을 것이고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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