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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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애신선생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09 18:44


애신선생은 인민학교시절 나의 담임이었다. 키는 작지만 얼굴이 복스럽고 마음이 상냥한 분이었다. 학교선생으로서 실력도 뛰어났고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명필인데다 노래도 잘했다. 안무솜씨도 좋아 아이들에게 직접 춤을 가르쳐 무대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는 마음이 따뜻한 선생이었다. 다른 선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당연히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켰는데 그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항상 자기가 먼저 빗자루를 들었고 웃으면서 아이들을 이끌었다. 교실에 바느질 통을 비치해놓고 누구 교복단추가 떨어지거나 치마 단이 내려가거나 하면 직접 손질해주었다. 원족갈때도 학생들에게 선생님 것을 따로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하거나 오히려 자기가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도시락 하나를 더 싸오곤 했다. 그야말로 그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으로 다스릴 줄 아는 보기 드문 선생님이었다.



인민하교 졸업 후 집이 이사 가는 바람에 오랫동안 애신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결혼 후에야 우연히 뵙게 됐는데 뜻밖에도 장마당에서였다. 그날 선생님은 떡을 팔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지만 틀림없는 그 선생이었다. 15년 세월에 모색이 퍼그나 변했지만 아담하고 깔끔한 모습은 여전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선생님! 하고 달려가려 했지만 그만두고 말았다. 선생님이 난처해하실 것 같아서였다. 옛날 가르치던 제자에게 장마당에서 떡을 파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으시랴,



그 무렵에는 이미 국가배급이 중단돼 누구나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었다. 애신선생도 례외는 아니었지만 정작 장마당에서 떡을 파는 모습을 보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내 마음속의 애신선생은 언제나 교탁 앞의 당당하고 밝은 모습이었고 아이들이 너도나도 따르는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이었다. 15년 전 애신 선생은 앞으로의 그 모습에 대해 상상이나 하셨을까? 이제는 교단을 완전히 떠나신 건지, 아니면 가끔씩 떡 장사를 하는 건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때 함께 걷던 친정어머니가 툭 하고 나를 쳤다.



“미경아! 저길 좀 봐! 애신선생 맞지?”



그리고는 말릴 사이도 없이 그 쪽으로 향했다. 곧 두 분이 서로 반가워하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뒤따라갔다. 나를 본 애신선생의 얼굴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가득 찼다. 좀 전의 망설임 같은 것은 완전히 잊고 나는 애신선생님 손을 잡고 한참동안 놓지를 못했다.



그날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애신선생이 교단을 떠난 지는 3년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원을 그만두고 장사에 나섰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직접 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가르치던 학생들을 마주칠까 창피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용기를 내본 것이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애신선생의 얼굴은 이외로 편하고 밝아보였다. 오히려 애신선생을 봤을 때 선뜻 다가가기를 주저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졌다.



겉만 교원이면 뭐하랴? 대다수 교원들이 쌀 한말도 못사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학부형에게 손까지 내밀며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수업보다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죄다 학생들에게 부담시켜 받아내는 일이 더 우선인 선생님 자리, 교원이지만 교원으로서의 권위를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느니 차라리 교단을 떠나 떡 장사를 하고 있는 애신선생의 모습이 훨씬 더 좋아보였다.



북한이 40년 만에 교육기간을 1년 늘여 12년제 의무 교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를 위해선 교원확충이 필요한데 교원에 대한 대우가 땅바닥수준인 북한의 현실에서 과연 제대로 될 까? 겉으로만 요란을 떠는 북한당국의 처사에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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