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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윁남의 농업조직 개혁

북한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9-24 18:24


사회 : 이번 순서는 ‘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 뿐이다’ 시간입니다. 수령 독재를 반대하는 량심적인 간부들, 그리고 조선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학생들과 함께, 개혁개방의 구체적인 방도를 살펴봅니다. 우리는 지금 중국에 이어서 윁남의 개혁개방 경험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순서입니다. 농업개혁 가운데, 특히 농업조직 개혁에 대해 알아봅니다. 윤성호 방송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윤 : 네, 안녕하십니까?



사회 : 오늘은 윁남의 농업개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윤 : 그렇습니다. 중국도 그렇습니다만, 윁남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 농업개혁은 가장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할 핵심 과제였습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인구의 다수가 농민이었기 때문에 농업개혁을 성공한다면, 다른 분야의 개혁개방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다행이 중국과 윁남의 농업개혁이 성공했으니,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겠군요.



윤 : 그렇습니다. 농업개혁에 성공해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다른 분야의 개혁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우선, 개혁을 실시하자마자 곧바로 농업생산량이 크게 증대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회주의와 협동농장으로 수십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먹는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었습니다. 가난의 상징이던 농민들도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 또 농업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결과 농촌인력이 남아돌게 되고, 이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이 윁남의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 기업소들에서 일하게 되면서 윁남의 공업과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사회 : 조선은 개혁개방 당시 중국이나 윁남보다 훨씬 더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조선에서도 농업개혁은 역시 핵심 과제라 할 수 있겠군요.



윤 : 그렇습니다. 다만 조선의 농민비률은 개혁개방 당시, 중국, 윁남보다는 낮은 편입니다. 또, 기후조건이나 지형도 농업에 불리한 편이죠. 이런 리유 때문에 농업개혁의 중요성과 잠재력이 중국이나 윁남에 다소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농업개혁에 성공한다면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사회 : 중국이나 윁남이 농업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윤 : 중국과 윁남의 농업개혁은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핵심 내용은 대체로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농업생산능력이나 생산량을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첫째, 농민의 생산 의욕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농업조직의 형태(집단농장인가 개인농 또는 가족농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농산물의 상대가격(공산품 대비 상대가격)입니다.



일반적으로 농민들은 집단농장보다는 가족이나 개인토지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농산물의 가격이 높아야 생산을 많이 할수록 돈을 벌 수 있고, 일할 맛이 나기 마련이죠. 이건 중국이나 윁남의 개혁개방에서 이미 실천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사회 : 사실, 조선에서도 오래전부터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농업개혁은 어쩌면 그와 같은 현상을 합법화하는 조치가 아니겠습니까?



윤 :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농민들의 생산의욕과 능력을 높이는 두 번째 요인은 농업생산을 위한 투입물, 즉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을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농업 이외의 부문, 즉 제조업, 상업,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죠



사회 : 그렇군요. 윁남의 농업개혁도 농민들의 생산의욕과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에서 진행되었겠군요?



윤 : 윁남의 농업개혁은 농민의 생산 의욕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를 개혁했습니다.

첫째는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가족농 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둘째는 농산물의 (국가)수매가격을 높이고, 농산물을 장마당에서 자유로운 가격에 거래하는 이른바 농산물 거래 자유화 조치를 실시했습니다. 이 조치가 실시되면서, 농민들은 식량 부족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높은 값에 농산물을 팔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좀 더 많은 생필품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부자가 된 것이죠.



사회 : 그렇군요. 먼저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가족농 제도를 실시한 농업조직 개혁부터 살펴보죠.



윤 : 개혁 이전 윁남의 농업은 다른 사회주의국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집단농장에 의해 경영되고 있었습니다. 북부윁남에서는 1950년대 말에 농업 집단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남부윁남에서는 통일 이후인 1970년대 말에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는데요. 농업 집단화 정책이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완전하게 실시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부윁남은 여전히 가족농이 기본 생산단위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죠.



사회 : 사회주의적 집단농업은 대체로 생산성이 낮은 문제점이 있습니다만, 윁남의 경우 남부윁남에서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니, 문제가 더 심각했겠군요.



윤 : 그렇습니다. 중국과 윁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집단농장이 생산성이 낮았던 것은 대략 네가지 리유가 있었는데요.

첫째, 보통 공업부문에서는 집단화를 실시할 경우 생산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농업생산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일부 특수 작물 재배나 환경조건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족농이 기본 생산・경영단위가 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 둘째, 집단농장 구성원들의 노동능력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 ‘노동에 따른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 셋째, 농업생산과 농촌생활을 농업실정에 어두운 중앙 및 지방정부 간부들이 지배하면서 자의적으로 현실 불가능한 목표를 지시하고, 무조건 명령만 내리는 관료제 때문에 생산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넷째,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토지나 산의 나무를 마구잡이로 벤다거나, 거름을 제대로 하지 못해 토질이 나빠지는 문제가 나타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회 : 사실, 조선에서도 늘 비료가 부족해 땅심이 나빠지고, 산에 나무가 없어, 큰물 피해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 사실 이죠.



윤 : 윁남에서도 그와 같은 문제점 때문에 농업생산이 오랫동안 정체해 있었습니다. 토지생산성 및 노동생산성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구요.

또 윁남 통일 이후 남부윁남에서는 정부가 농업 집단화를 시도하고 농산물의 생산・유통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농업생산이 갑자기 감소하여 식량위기가 더 악화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사회 : 그와 같은 상황에서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가족농 제도를 실시한다는 것인데요. 집단화를 추진하던 국가가 국가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나서 개혁을 실시한 것인가요?



윤 : 사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윁남도 그렇습니다만, 농업조직 개혁은 상당 부분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시작한 자생적 개혁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정부가 보기에 집단농장보다 개인토지나 가족농에서 더 많은 농산물이 생산되다 보니, 중앙정부도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이를 승인하는 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진 것이죠.

- 중국에서는 1979년부터 각 지방에서 농민들 및 지방간부들이 중앙의 방침을 어기고 자생적으로 개혁을 개시했습니다. 이 실험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난 후인 1982년 초에야 중앙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 윁남의 경우에는 남부윁남의 농업집단화가 저항에 부딪히자, 정부가 1981년에 농업 집단화 정책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가족농 중심의 영농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가족농제도를 실시한 남부윁남의 생산성이 북부윁남보다 더 높아지자, 결국, 가족농제도를 북부윁남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사회 : 윁남의 경우, 초기의 농업조직 개혁은 ‘청부제’ 또는 계약제 형식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부제 또는 계약제란 어떤 것입니까?



윤 : ‘청부제’란 농지의 법적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개별농가 또는 분조에게 농지를 빌려주고, 미리 계약된 수매물량을 시장가격보다 낮은 수매가격으로 국가에 납부하는 제도입니다.

전근대적인 소작제도와 유사한데요. 수매량과 수매가격이 미리 정해져 있는 정액 소작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가가 수매하기로 한 분량 이상의 수확량은 개별 농가가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이 열심히 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됩니다.



사회 : 가족농 제도가 빠르게 정착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윤 : 가족농 제도의 정착 여부는 개별 농가가 얼마나 많은 토지 사용권을 갖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마디로 토지에 대한 자주적 권리를 많이 보장해줘야 토지생산량도 높아진다는 것이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있기 때문에 농민들의 토지사용권한을 강화하려면 역시 토지를 빌려주는 기간을 길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 중국의 경우 초기의 청부제에서는 토지 임대기간이 분명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85년에 공식적으로 15년으로 결정하고, 이어서 1993년에 여기에 30년을 추가했습니다. 45년이 된 것이죠.

- 윁남의 경우에는 1988년에 토지 임대기간을 10~15년으로 연장했구요. 이어 1993년에 다시 50년으로 연장했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서 개별 농가에 부여한 토지사용권을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팔수도 있게 됩니다. 사실상 토지 소유권과 비슷하게 된 것이죠.



사회 : 법적으로는 국가 소유지만, 사실상의 토지 사유화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윤 : 그렇습니다. 개별 농가의 토지사용권이 확립됨으로써, 농민들은 토지에 대한 투자(관개시설, 토질 관리 등)를 더욱 강화해 통해 토지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오늘은 윁남의 농업조직 개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시간에는 농산물 가격과 농업 자유화 조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윤성호 방송원 오늘 말씀감사합니다.



윤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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