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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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5-01-16 16:05


어린 딸을 등에 붙잡아 매고 나는 지긋지긋했던 중국 땅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보위대의 섬뜩한 눈초리를 피해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으로의 탈출. 나는 그렇게 조국도 부모형제도 버리고 대한민국을 찾아온 새터민, 탈북자이다.

새터민 교육시설 하나원에서 한국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같은 조선말인데도 모르는 말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해보면 살게 되고 또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여기저기서 직장알선을 받았고 마침내 고속도로 요금소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일보다 만 3살 된 딸이 걱정이었다. 하루 3교대를 돌면서 일을 해야 했는데, 근무시간이 저녁일 때는 어린 딸을 남겨두고 직장에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어린것을 혼자 남겨둬야만 하는 게 부모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늦게까지 돌봐주는 어린이집은 없었고, 당시 한국말이 서툰 어린 딸을 24시간하는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섭다며 아파트 베란다 창살을 붙잡고 안쓰럽게 울어대는 어린 딸의 울음소리. 엄마가 저 멀리 사라지는가 싶으면 울다 지쳐 잠이 든다. 엄마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피눈물이 나는 일이었다. 이런 내 사정을 눈치 챈 회사와 주변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능하면 낮시간으로 내 업무를 배치됙 해준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생활도 안정이 되어갔다.

목숨을 걸고 찾아온 한국. 그러나 항상 나를 반기며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빨리 한국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섞어가며 업무 지시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한국 사람들의 질타와 싸늘한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소심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탈북자들이 더부살이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도 할 수 있다며 수없이 나를 다그쳤고, 한국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위해 무진 애를 썼다.

멀리서 달려오는 차들의 요금을 실수 없이 계산하려면 수많은 차의 종류도 다 익혀야 했다. 수없이 실수를 했지만 그 많은 차 종류를 익히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공부했다. 또 한 번도 컴퓨터를 만져본 적이 없는 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어차피 업무를 처리하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컴퓨터는 필수였다. 남들 어께너머로 배우기를 수개월, 이젠 문서도, 서류도 척척 해내는 내 모습에 나 자신이 무척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한국에 와서 난 아낌없이 배려해주고 지원해준 따뜻한 사람들 덕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을 알기에 나도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탈북수기 1_우리는 그저 당을 믿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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