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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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5-01-09 16:39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방황하며, 쫒기며 살던 생활을 끝내고, 꿈을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흘렸던 눈물도 이젠 조금씩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대신에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삶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하나원 교육을 수료하고 사회의 첫 발자국을 내 디디던 그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우선은 정부에서 배정해준 아파트에 가족들과 함께 첫 보금자리를 틀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직업훈련도 받았다. 생각보다 쉽게 회사에 입사하여 직장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여 첫 월급도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난, 늘 꿈만 같은 날들만 있을 줄 알았다. 당시 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여러 가지 시간제 일을 하다가 버젓한 회사에 입사 하게 된 것은 2003년 3월이었다. 구인구직 광고를 보고 찾아가 면접을 봤고, 입사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가 들어간 회사는 전자회사였는데, 세라믹, 아이씨, 콘데서 같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부품을 보고는 이렇게 정밀한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 해보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게 무엇 있어? 그래 해보자. 해보는 거야!” 

이렇게 결심하고 출근 하였다. 출근하여 보니 입사동기들이 여러 명 있었고 반장으로부터 일할 공구들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LG전자의 하청업체로, 생산된 제품은 완벽하여야 했고 작은 불량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남북으로 갈라져 산 7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7년을 살다 온 나는 말하는 억양이 투박하고 또 한국문화도 잘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언어 문제로 입사 동기들끼리 분쟁도 많았다. 한번은 입사동기들이 나에게 “연희씨 연희씨” 부르기에 나도 동료들을 그렇게 불렀다. “경자씨, 정금씨” 이렇게. 하지만 어느 날 부터인지 동료들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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