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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에 강제 억류된 신숙자 모녀

인권 깜빠니아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9-19 17:43


안녕하십니까? 자유조선방송의 송현정입니다. 오늘 인권깜빠니아 주제는 ‘북조선에 강제억류된 신숙자 모녀’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함경북도 요덕 수용소에 갇혀 있는 ‘신숙자 모녀’ 구출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숙자의 고향 통영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으며, 유엔사무총장에게도 신숙자 모녀를 구출해 달라는 탄원서가 제출됐습니다. 그런데 남조선 출신 신숙자가 어떻게 해서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게 된 것일까요?



신숙자는 1960년대 후반에 간호사로 도이췰란드로 파견돼 그곳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남조선 출신 오길남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이후 혜원과 규원이라는 두 딸을 두었는데, 단란했던 가정이 1985년 남편이 북조선 공작원의 꾐에 빠지면서 파괴됐습니다.



당시 신숙자는 교통사고 때문에 직장을 쉬고 있었고, 오길남도 직장이 없어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북조선 공작원이 접근했습니다. 오길남은 북조선에 가면 교수직과 안해에게 최상의 진료를 보장하겠다는 북조선 공작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 집니다. 게다가 친분이 있던 통영 출신 음악가 윤이상이 북조선 경제를 위해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적극 권하자, 윤이상을 믿고 오길남은 1985년에 가족 모두를 데리고 북조선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숙자는 김정일 정권을 믿을 수 없다며 극구 말렸지만 남편의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오길남의 가족은 북조선에 들어가자마자 외부와 차단된 채 3개월간 세뇌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 오길남은 칠보산련락소 대남방송 요원으로 배치됐습니다. ‘구국의 소리’라는 방송에서 오길남은 ‘민영훈 교수’라는 가짜 이름으로 매일 13분씩 방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 오길남은 중앙당의 호출을 받게 되는데, 유럽으로 가 남조선 류학생 2명을 포섭해 입북시키라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오길남은 1986년 11월에 단마르크로 갔다가 코펜하겐 공항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오길남은 떠나기 전에 안해에게 류학생을 포섭해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신숙자는 오길남의 뺨을 때리며 호소했습니다. ‘나와 딸들이 짐승처럼 박해를 받을망정 파렴치한 범죄자의 딸이 돼서는 안 된다, 나가서 석 달 안에 우리를 빼줄 수 있으면 빼주고 안되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잊으라’며 남편을 떠나보냈습니다. 이후 오길남은 탈출에 성공해 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후 신숙자 모녀의 소식은 요덕수용소를 탈출한 강철환, 안혁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는데요, 1987년 말에 수용소에 갇혔고, 수용소 내 12번 마을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신숙자는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집에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숙자 모녀는 북조선 공작원의 속임수에 의해 북조선으로 들어간 만큼 랍치를 당한 것입니다. 북조선 당국은 그것도 모자라 아무 죄도 없는 신숙자 모녀를 정치범수용소에 수감시켰습니다. 이것은 반인도주의적 범죄 행위입니다. 북조선 당국은 지금이라도 강제억류 중인 신숙자 모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남조선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와 자유조선방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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