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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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해군함선 천안호 침몰사건, 다섯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9-16 17:58


나레이션: 2010년 3월26일, 김정일 정권은 기습적인 어뢰공격으로 남조선 해군함선 천안호를 침몰시켰다. 화폐교환 실패로 갈수록 높아만 가는 인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아무런 경력도 없는 후계자 김정은에게 군사 분야에서의 업적을 쌓아주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이었다. 3대 세습을 위해 남조선 46명의 청년들을 희생시킨 김정일 정권, 그들의 죄악을 파헤친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해군 함선 천안호 침몰 사건.



지난이야기> 김정일 정권은 천안호 사건이 남조선의 날조극이라고 우겼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김정일 정권의 도발행위를 규탄하고, 남조선 당국은 천안호 사건에 대한 대응조치를 준비하는데......



천안호 침몰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리명박 대통령은 어떤 공식적인 립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리명박 대통령은 인내와 절제를 요청하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증과 조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2010년 5월20일 국제합동조사단이 최종결론을 내놓게 되자 리명박 대통령은 나흘 뒤에 천안호 사건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김정일 정권에 대한 대응조치를 발표한다.



리명박(녹취):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만행에 대해 참고, 또 참아왔습니다. 오로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가겠습니다.”



리명박 대통령은 북남간 교역과 교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국제사회와 함께 김정일 정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천안호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리사회에 회부키로 했다. 리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정권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체결한 유엔헌장과 정전협정, 북남기본합의서를 깨뜨렸다면서 천안호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질 것을 촉구했다.



리명박: “나는 북한 당국에 엄중히 촉구합니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앞에 사과하고,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즉각 처벌해야 합니다. 이것은 북한이 우선적으로 취해야할 기본적 책무입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변명이나 억지 주장만 반복한다면, 국제사회 어느 곳에도 북한이 설 곳은 없습니다.”



남조선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전 방위적인 압박을 시작했다. 미국과 함께 강력한 제재조치로 취해 김정일 정권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줄을 차단했고, 외교적으로 고립을 심화시켰다. 2010년 6월 카나다에서 열린 주요 8개 국가 수뇌회의에서 천안호에 대한 공격을 규탄하고, 남조선의 천안호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존중하다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당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자.



사르코지(녹취) : "우리는 천안호 사건과 관련해 북조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만큼 중국도 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또 우리와 같이 한국과 공조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주요 8개 국가 수뇌회의가 끝난 직후인 7월9일 유엔 안전보장리사회는 만장일치로 천안호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그달 말 윁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회의에서도 천안호 사건을 놓고 북과 남은 치렬한 외교전쟁을 벌렸다. 이 회의에는 캄보쟈와 먄마와 같은 북조선에 우호적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참여하고 있었지만 천안호 사건을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리사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성명이 채택됐다. 중국조차도 김정일 정권의 공격행위를 규탄했다. 2010년 10월 5일, 벨지끄에서 아시아, 유럽 수뇌회의가 열리기 전에 리명박 대통령은 온가보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온가보 총리는 이 회담에서 천안호 사건과 관련해 김정일 정권을 여러 차례 규탄했다고 밝혔다.



*2010년 10월 6일 SBS 방송 보도입니다.



SBS보도 : ‘앞서 열린 한중 회담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한국민들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해 약간 오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안보리 의장성명에 찬성했고 애도를 표명했으며 여러 차례 도발한 측을 규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천안호 사건 이후 김정일 정권은 외교적으로 고립됐고, 남조선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추가제재가 실시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리명박 대통령이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북조선과의 교류와 협력을 전면 금지하면서 김정일 정권은 남조선으로부터 벌어들이던 3억 딸라 정도의 수입이 끊겼다. 또한 미국의 추가제재로 그동안 불법 무기거래 등으로 해외에서 벌어들였던 딸라 수입마저 끊겼다. 통치자금이 마르기 시작한 김정일은 천안호 사건이 발생 한 이후에 3번씩이나 중국을 방문해 구걸을 했지만 만족할 만한 지원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김정일이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어서 경제적 의존도는 깊어지기만 했다. 2010년에 중국에 지하자원을 팔아넘긴 것이 8년 전보다 17배 많은 8억6천만 딸라 규모였고, 조중 교역액도 2009년보다 30% 증가한 34억 딸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고립만 심화시킨 천안호 사건을 왜 일으켰나 하는 것이. 전문가들은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첫 번째 리유로 꼽고 있다. 특히 아무런 업적도 없는 후계자 김정은이 남조선에 대한 도발로 군대의 신뢰를 얻기 위해 천안호 사건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리언 파네타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도 천안호 사건은 김정은이 군대의 신뢰를 얻으려는 승계과정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0년 6월28일 련합뉴스 보도입니다.



련합뉴스 : 그는 "김 위원장의 아들은 매우 어리고 검증되지 않은데다, 아버지와 북한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지만 군부에서는 누구도 그가 어떤 스타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군부의 신뢰를 받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2009년 말에 실시한 화폐교환의 실패로 북조선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김정일 정권이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천안호 사건을 일으킨 측면도 있다. 실제로 김정일 은 천안호 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 만에 남조선 연평도에 포사격을 가해 긴장수위를 더욱 높였고, 이후 련이은 검열로 인민들의 숨통을 조였다. 김정일 정권이 국제적인 비난을 자초하면서 북남관계를 극한 대결상태로 몰아간 것은 내부 민심을 통제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반증하고 있다. 이렇듯 김정일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천안호를 침몰시켜 남조선의 무고한 청년들을 살해했고 조선반도를 전쟁위기까지 몰아갔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해군 함선 천안호 침몰 사건,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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