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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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부 자본주의 병에 걸린 김정일의 처조카, 첫 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나의 자본주의 나라 여행은 스위스와 오지리, 핀란드, 스웨리예가 전부였다. 나중에 진짜 자본주의 나라를 가기 위해 조선을 탈출했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였다.



혜림 이모는 프랑스도 갔었다. 당시 체스꼬 리원범이 오지리 대사를 겸임하고 있었다. 이모가 오지리에 가면 리원범이 빈에 가서 이모를 영접했다. 리원범이 이모를 직접 안내했다. 이모는 빈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프랑스 관광을 했다. 이모가 프랑스 갈 때 나는 수업 때문에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핀란드에도 가보았는데, 이모가 없을 때 모스끄바의 핀란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서 갔다. 핀란드는 ‘헬싱키 쇼핑’이라는 단체관광을 따라갔다. 쏘련에는 살 게 없으니까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 등 모스끄바에 상주하는 외국인들만이 가는 3박 4일의 물건구매 려행이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인가 두 시간 거리의 여행이었는데,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내게는 오지리나 스위스가 더 환상적이었다. 경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위스는 정남이가 80년에 제네바로 공부하러 가면서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해설 :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은 교육문제 때문에 9살 때인 1980년 3월 스위스 제네바로 류학을 갔다. 이곳 고급주택가에 김정일 소유의 별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한 바 있다. 이때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리일남만이 모스끄바에 남아 있었는데, 리일남은 김정일의 승인을 받지 않고 몰래 스위스에 드나들었다. 어머니 성혜랑의 수기를 잠시 살펴보자.



성혜랑 : 제네바 빼쉬에 거리에 살 때였다. 모스끄바에 있던 일남이가 무척 제네바에 와 보고 싶어했다. 이것은 지도자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잠깐 다녀가는 방법밖에 없는 그 애의 희망이었다. 나는 그 애가 모스끄바에 혼자 남아있는 것이 애처롭고 그 나이에 서방을 보고 싶어하는 것도 리해가 되어 떠나오라는 전화를 했다.



스위스라 해도 나는 제네바 일대 이외에는 가보지 못했다. 레만 호숫가에 있는 정남이 저택에서 놀다왔다. 클로벨몽으로 이사간 이후에도 스위스에는 여러 번 갔다. 정남이 방학 때면 스위스에서 같이 오지리로 놀러간 적도 있고, 제네바에서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로잔느를 지나서 있는 몽트르에도 놀러 갔다. 몽트르도 호숫가인데 그때 정남이와 우리 식구들이 다같이 갔다.



정남이와 같이 공부하고 있던 녀동생 남옥이는 물론, 어머니와 외할머니도 그때 제네바에 계셨다. 어머니는 정남이 이모이자 정남이 교육의 책임자로서, 외할머니는 정남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정남이를 키워온 총책임자의 입장에서 스위스에 함께 계시는 것이었다.



제네바에 놀러 가면 대사관의 리수용 1등서기관이 당시에도 리철이란 이름으로 나와 있었다. 통역 겸 안내인이었는데, 1년 정도 지나자 정남이의 프랑스어 실력이 늘어 정남이가 통역하고 다녔다.



나는 제네바에 가면 역시 정남이와 노는 게 일이었다. 같이 저택의 지하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저택에서 기르던 개하고 같이 정원에서 뛰어 놀기도 했다. 정남이는 머리는 꼭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잘랐는데, 당시 머리를 좀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옷도 아주 편하게 자유자재로 입었다.



정남 : 일남아 내 머리 어때? 잘 깍은 것 같니?



일남 : 좀 더 짧게 깎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정남 : 아니야. 너무 짧게 깎으면 꼭 조선 촌놈 같단 말이야.



일남 : 그럼 우정 머리를 기르는 거야.?



정남 : 응. 머리카락이 이 정도는 있어야 일본 애 아니면 중국 애로 보여. 그렇게 보여야 놀러 다니기에 좋단 말이야. 안 그래?



일남 : 진짜 그렇겠구나. 그런데 정남아! 이제 우리 어디로 놀러 갈까?



정남 : 야, 나만 따라와. 내가 좋은 데로 데려다 줄 테니까.



나는 이미 ‘자본주의 병’에 들어 있었다. 오지리와 스위스에서 자본주의에 매료됐고, 서베를린 김치식당에서 남조선 사람과도 대화를 나눴었다. 또 평양의 관저에서 남조선 텔레비죤과 영화를 많이 본 탓에 남조선이 내게는 아주 친근했다. 남조선 영화나 텔레비죤은 당시 남조선의 내 또래 누구보다 많이 봤을 것으로 자신한다.



당시 남조선 영화에는 짜릿한 장면이 많았다.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야행>은 남녀간 사랑 장면들이 사실적으로 나와 온실 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 많았다.



텔레비죤 련속극은 이모나 어머니, 그리고 동생 남옥이가 즐겨 보았다. 나도 가끔 보았다. 어느 날 남옥이가 “야, 오늘 <목금드라마>하는 날이다”라고 말 하는데, ‘목, 금’은 눈치로 요일을 말하는 것으로 리해했지만, 드라마란 단어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드라마가 뭐냐고 물으니 련속극이라고 알려줬다. 드라마라는 단어를 남조선 텔레비죤에서 쓰니까 관저 식구들도 그 단어를 쓴 것이다.



나는 김정일이 디자인이란 말을 쓰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형틀을 뜬다고 하는 순수 조선말이 있는 데도 디자인한다는 말을 듣고, 김정일도 남조선 텔레비죤을 많이 보니까 그런 말을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남조선드라마 얘기를 하니까 안기부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지도자 관저에서 김정일은 물론 여러 사람이 남조선의 텔레비죤과 영화를 보고 있고, 정남이가 리주일, 허장강, 구봉서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안기부 사람들이 웃는 것이다. 믿으려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루는 안기부 사람들이 남조선 배우들과 희극배우들의 사진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물었다.



요원 : 일남 선생.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습니까?



일남 : 신성일 아닙니까?



요원 : 그럼 이 사람은요?



일남 : 윤정희지요. 거 신성일이랑 같이 찍은 ‘야행’이라는 영화는 정말 자극적이어서 제가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배우들의 이름은 물론 최근의 출연작까지 얘기하자 그들은 깜짝 놀랐다. 지도자 관저에서 남조선 텔레비죤을 본다는 사실은 이때 처음 남조선에 알려진 것 같다.



내가 서울에 온 지 얼마 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우리 첩보에 의하면 김일성, 김정일도 남조선 텔레비죤을 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이 얘기를 듣고 “그런 얘기가 나가면 북조선측에 행방불명된 나의 행선지를 노출시키는 것 아닙니까”라며 안기부에 항의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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