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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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부 김정일에게 봉사하는 미녀들, 두 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지도자 동지를 위해 근무하는 녀성들은 여러 갈래가 있다. 쉽게 임무로 나누면, 우선 집무실의 타자수와 차를 나르는 등의 일을 하는 접대원이 있다. 관저에는 안마사와 간호원이 있다. 그리고 김정일의 측근자 연회에 동원되는 공연조와 중주조가 있다.



이들의 선발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서 시작된다. 충원 대상은 각 도의 예술전문학교와 평양의 예술전문학교 학생들이다. 이 학교들은 중고등학교 과정이다. 예술전문학교 졸업반이면 나이 18세 정도인데, 남조선으로 치면 고등학교 졸업반쯤 된다.



녀자들을 해마다 뽑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서기실에 지시를 내린다. 그 지시는 평양시와 도당 간부부로 내려간다. 공식적으로 지도자 동지 집무실 요원을 뽑으라고 지시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1호 대상자를 뽑으라고 한다. 숫자 암호를 붙이면 관계자 이외의 사람은 알기가 어렵다.



해설 : 김정일은 처녀들을 뽑기 위해 중앙당에 5과라는 것을 두었다. 이 부서가 평양시와 도당 간부부로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5과 대상자’라는 말이 생겼다. 한마디로 김정일은 당조직을 동원해 전국의 처녀들을 공식적으로 수탈하고 있는데, 인민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콩고 주재 1등 서기관이였던 고영환의 수기를 살펴보자.



고영환 : 일단 대상자가 정해지면 아가씨의 부모를 만나 “당신의 딸은 당의 크나큰 신임에 의해 평양으로 올라가 중요한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통보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들은 딸이 하늘의 별이라도 따낸 것처럼 기뻐하면서 친척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주위에서는 그 집을 크게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 딸이 김정일과 그 측근들의 술맛과 기분을 돋구는 일에 동원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하리라.



1호 대상자면 예쁘고 용모 단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건강해야 한다. 각 도에서는 그런 걸 쉽게 하기 위해 예쁘고 용모 단정하고 건강한 애들을 미리 선발해, 예술적 소질이 있든 없든 모두 예술 전문학교로 뽑아 놓는다. 이미 모아 놓았으니 지시가 내려오면 이들 학생 중에서 골라 위로 올린다. 그 숫자가 2백~3백 명 정도 된다.



그 학생들 중에서 1백 명 정도를 먼저 추린다. 1차로 고른 녀학생들을 평양으로 불러 올려서 남산병원에서 정밀 신체검사를 한다. 김정일 주위에서 일할 녀성들이니까 조그마한 질병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남산병원에서는 산부인과 검사도 한다. 숫처녀라야 뽑힐 수 있다. 신체검사에서 반수가 탈락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250명 중 신체적으로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50명 정도가 선발된다. 그 이후에 임무가 부여된다. 너는 타자수, 너는 간호원, 너는 접대원, 너는 안마사, 이런 식이다.



이렇게 뽑힌 녀자들은 맡은 임무대로 교육을 받는다. 안마사로 뽑힌 녀자는 안마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홍콩이나 대만에 가서 3~6개월간 연수를 받는다.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다. 간호원으로 배정된 녀자들은 1년 과정의 간호학교로 간다. 주사 놓는 법, 투약하는 법 등 간호원으로서의 직무교육을 받는다. 접대원으로 뽑힌 녀자는 식탁 차리기, 음식 시중하는 법 등을 배운다. 제일 중요한 게 김정일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도자 동지’가 좋아하는 담배는 어떤 것이고,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하는가 등을 배운다.



중주조나 공연조(무용조)는 평양음악무용종합대학에서도 선발하지만, 나이가 스무 살이 넘어가기 때문에 더 어린 아이를 뽑을 때는 평양예술종합학교에서 음악이나 무용에 소질있는 애들 중 신체 건강하고 용모 단정한 아이를 뽑는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기쁨조’가 선발되고, 직무교육을 받지만 그 녀성들 모두가 김정일의 근처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제일 괜찮은 아이는 김정일의 집무실이나 관저로 가고 그 다음에 주석궁이나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김정일의 특각에 관리요원으로 배치된다. 간호원도 특각마다 한 사람씩 배치된다. 간호원, 접대원, 안마사, 요리사 이들이 특각에서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언제 들를지 모르는 김정일을 위해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지도자 집무실에 들어가면 타자수들이 타자를 치고 있는데, 들어가면 한마디로 눈이 부시다. 타자수들은 화장도 별로 하지 않지만, 나는 남조선에 와서 아직까지 그렇게 예쁜 녀자들이 단체로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김정일에게도 고정 짝이 없었다고 한다. 두세 명 정도가 김정일의 짝으로 옆 자리에 앉았는데, 75년부터는 한 명이 고정적으로 앉기 시작했다. 고영희가 바로 그 녀자인데, 일본 공연 때 주목을 받았던 만수대예술단의 무용수다.



해설 : 1988년부터 13년동안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고영희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증언도 리일남과 일치한다.



후지모토 :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는 정말 미인이다. 고영희는 김정일 저택에 살면서 김정일이 각지로 이동할 때마다 반드시 함께 다니는 사실상의 본부인이다. 고영희는 재일 조선인 귀국자로서, 만수대 예술단의 무용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고영희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데,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북조선으로 왔다고 한다. 나는 고영희가 53년생으로 알고 있는데, 75년부터 김정일의 짝으로 됐으면 22세 때다. 김정일은 76년부터 고영희를 들어 앉혔다고 한다. 77년부터는 아예 연회에도 참석을 시키지 않았는데, 당시 어디에다 살림을 차렸는지는 모른다. 나중에 창광산 관저를 고영희에게 주었는데, 그때 고영희가 임신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고영희는 81년에 아들 정철을 낳는다. 당시 쉬쉬하던 분위기였는데 최준덕이 내게 “고영희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모는 고영희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몰랐다. 알게 되면 더욱 충격을 받을까 해서 누구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철과 관련해 할 얘기가 있다. 어느 날 김정일이 외할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 : 할머니! 우리 정남이 이름을 새로 하나 더 지어 보는 건 어때요?



할머니 : 정남이 이름을요? 아니 그건 왜 갑자기.....



김정일 : 네. 이제 정남이도 동생이 하나 있어야 하겠는데,, 그저 이름을 미리 지어놓으면 동생이 생기지 않을까해서요.



할머니 네. 알겠습니다.



외할머니가 이것저것 따져보고 사전도 찾아보고 해서 이름을 지었는데, 정철이라는 이름이었다.



고영희의 별명이 방치코인데,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고, 우리 가족들만 쓰는 말이다. 고영희의 코가 망치 닮았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다. 그 별명은 어머니가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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