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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화 김정일의 첫아들 정남

등나무집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8




나는 잠결에 수상쩍은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었다. 길게 한번 짧게 한번.OUT벌떡 일어나 창턱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집은 4층에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덩치가 큰 시커먼 승용차가 바로 내 창 밑에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어둠속에서 장에 손을 넣어 춘추모직원피스를 찾아서 바늘뜸이 툭툭 따질 만큼 급히 입었다. IN집 문을 살며시 여닫고 단추를 채우며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 앞에 나섰을 때 누군가 운전대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우리 아파트 맞은편에는 독신자 합숙이 있었는데 거기 아래층 합숙식당은 24시간 김이 나고 불이 켜 있었고 많은 창문들이 전깃불을 내뿜고 있었다. 밤교대 노동자들 때문에 그 아파트는 항상 밝았다.



달려 내려오기는 했으나 막상다가가려니 주저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또 내가 추측하듯 그 사람일지라도 쪼르르 달려가는 것이 경망하다고 생각되었다. 차창이 내려지는 듯 하더니 둥글고 훤한 얼굴이 곧장 내게로 향해졌다. 그제야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거리를 두고 섰다. 그는 사진에서 보아온 김정일 비서였다. 내가 인사를 하자 그가 “동무 내가 누군 줄 어떻게 알았소?”하고 묻는다.



“...그렇게 생각되었습니다.”나는 망설이며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섞인 미소가 흘렀다.



그는 “이리와 앉으시오”하며 자기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김정일 : 이리와 앉으시오



자기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차체 뒤로 돌지 않고 앞으로 돌아서 그의 옆자리에 들어앉았다. 그 사람은 자기 앞에서 어려워 숨으려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김정일 : 이제 금방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



“이제 금방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하고 그는 툭 반말을 했다. 이목구비가 조화된 그의 온 얼굴에는 기쁨이 반지르르 흐르고 있었다. 혜림이 병원에 들어갈 때 그와 약속이 있었단다. 병원에 들어올 수 없었던 그가 병실 밖에서 헤드라이트를 번쩍여 신호하면 안에서 전깃불을 껐다 켜는 방법으로 딸인가 아들인가를 알려주기로 했단다. 매일 밤 정일은 병실 밖에서 불을 번쩍였다. 드디어 혜림이 아들이라는 신호를 보내자 왕자는 그 새벽에 온 병원이 떠나가게 경적을 빵빵빵-빵빵빵 수없이 울리며 차를 돌려 쏜살같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달려 나온 왕자는 그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곧장 나에게 왔었다는 것을 나는 후에야 알았다. 세상 사람들은 호방한 왕자가 유부녀를 임신시켜 할 수 없이 아이가 생겼고 일시적 동거녀 혜림이 그 아이를 키웠다고 속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외롭던 김정일 비서는 누이 같은 혜림과 살면서 비로소 내 집, 내 가정을 가지게 되었고 그 아들의 태어남을 그런 맥락에서 ‘내 것의 탄생’, 우선 성공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우량아이던 정남은 소담하고 잘생긴 아들이었다. 정일이 그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이루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다.



해설: 김정일의 맏아들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일남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일남 : 나는 정남이가 여섯 살 때 처음 관저에 가봤다. 관저안에서만 지내야했던 정남이는 본적도 없는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떼썼다고 한다.



김정일은 아들 정남이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것 같다. 내가 관저에 들어가기 전에 찍어놓았던 비디오에는 정남이가 서너살 때 쉬하고 싶다고 하니 내의바람의 김정일이 우윳병을 들고 아들의 오줌을 직접 받아내는 내용도 있었다. 대여섯살때까지 정남이는 아버지가 식사할 때 넓은 식탁에 올라앉았다. 김정일은 혼자 식사할 때 정남이를 밥상위에 올려놓고 얘기하면서 식사했다. 서너살 때 식탁위의 정남이는 ‘빠빠 맛있니?’하는 등의 애교있는 말투로 김정일의 혼을 빼놨다고 한다.



김정일: 자장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우리 애기, 검두개야 짓지 마라.....

IN젊은 왕자는 잠투정하는 아들을 업어 재웠다. 때로는 울음이 그칠 때까지 업고 들추며 엄마들이 우는 아이 달래듯 아기와 중얼거리며 얼렀다. 이런 그를 보는 혜림의 마음은 그가 측은했고FO 엄마 없이 보금자리 없이 자란 그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세도 밑에서도 고독하게 헤매던 그의 청춘을 이해해 주었다.



혜림은 언제나 그를 불쌍한 아우처럼 바라보았다. 그 후에도 지속되는 정일의 일탈을 혜림은 이런 감정에서 속상해하면서도 보살펴 주었다.



높은 울타리 안에서 지도자와 우리 세 모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지속되었다. 이런 우리는 그를 걸고 세도를 탐내지도 물질을 탐내지도 않았다. 우리에게서 호의호식이 무슨 가치가 있었으랴! 우리의 본심을 지도자는 꿰뚫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끝까지 우리를 대우해주었고 돌봐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이가 두 달이 되자 곧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 아이를 도맡아 길렀다. 승용차 질의 옆 뒤창은 짙은 청색천으로 가려져서 밖에서도 들여다보이지 않고 안에서도 내다보이지 않는 차였다. 어머니가 아이를 그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다니실 때 이 불쌍하게 태어난 손자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어두우셨다.



해설: 그때까지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정남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당시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를 비롯해서 계모 김성애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김정일은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를 데려와 살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 정치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런 이유로 성혜림과 정남은 바깥출입은 물론 병원조차 가기 어려웠다.



정남이는 생후4개월부터 대장염을 앓기 시작했다. 유모를 채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젖, 엄마의 젖을 섞어 먹이다가 소화불량이 왔다.



정남이가 태어나자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으나 봉화진료소에서 소아과에 별도의 문을 내고 정남전용의 소아과 병동을 만들어놓았다. 봉화진료소는 수반과 그 가족 및 최고위 간부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병원이다. IN하지만 지도자는 병원 소아과에 아이를 보내는 것을 꺼려 승인하지 않았다. 그때 나의 어머니와 동생이 꼴깍꼴깍 게우는 아이를 안고 속상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앓는 아기를 병원에 보낼 수 없다면 도대체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어쨌든 4달만에 아기가 병원에 입원할 때는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뼈자루같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아기 이마에 주사침을 꽂고 링거약을 맞히던 그 많은 밤과 낮. 할머니는 점점 더 어려움이 더해가는 생활의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원작: 성혜랑

극본: 최수연, 리유정

연출: 박은수, 남유진

낭독: 최연수, 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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