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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진단서

남조선 생활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8-19 17:44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출근하기 싫은지 모르겠다. 휴가 갔다 온 후 피곤이 안 풀린 탓인지, 요즘은 또 무더운 날씨까지 계속되니 더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아픈 척 병원가서 연기 한번 하고 진단서 떼 봐? 한동안 없어졌던 발작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쩍하면 진단서 뗄 궁리나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 됐다.

의사를 속이고 진단서를 떼서 직장에 제출하고는 며칠씩 종종 출근 하지 않았었다. 아픈 시늉을 하며 몸을 웅크리고 체온계 눈금을 몰래 장난질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직장에 다니던 단짝 친구가 알려준 방법이었는데 효과가 꽤 괜찮았다.

친구의 등에 떠밀려 처음 병원 가서 쇼를 하던 일을 생각하면 참 웃기기도 하고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만상 다 찌그리며 독감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하자 의사는 대뜸 체온계부터 주었다. 난 오른쪽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끼고 왼쪽 손을 오른 쪽 겨드랑이에 가져갔다. 그리고 친구가 알려준대로 엄지를 검지끝에서 튕겨내여 체온계 끝을 딱밤 때리듯이 톡톡 때려주었다. 한 열 번 정도 때렸더니 글쎄 눈금이 39도를 쑥 넘어간게 아닌가, 첨이라 너무 긴장된 나머지 힘 조절을 잘못했던 것이다. 일이 틀어졌다고 두 눈 꼭 감고 속을 앓고 있는데, 체온계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열이 심하게 나는구만,” 하더니 그냥 바로 진단서를 떼주었다.

열이 심하면 다른 검사를 세세히 할 줄 알았는데, 일은 다행스럽게도 넘어갔다. 그날 뗀 3일 진단서 덕분에 하루 장사로 고달프신 어머님 일손 잘 도와드렸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젠 감도 다 떨어졌으니, 서툰 솜씨로 자칫 하다간 오늘 하루 땡땡이 칠려 하다가 더 큰 일을 당할 것 같다.

여긴 의료기기나 의술은 물론, 환자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니 어느 순간에 어떻게 망신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환자의 이마를 짚어보지도 않고 체온계만 들여다보는 북한과 똑같이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칠라,

그러고보니 참, 여기와서 별로 진단서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왜지? 여기 사람들이 그렇다고 무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북한에 비하면 거의 100%출근율을 보장한다.

하긴, 일년에 보름 휴가와 연차 혜택이 있어서 사정이 있다거나 할 땐 능히 시간 받을 수 있으니 낯 뜨겁게 꾀병부릴 일이 있을까 싶다. 또 아프면 돈을 내고 병을 고쳐야 하니, 가짜 진단서놀음 같은 건 더더욱 없을 것이다. 물론 범죄에 악용되는 예외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건 극히 소수의 일이다.

아, 오늘 하루 힘들겠지만 그래도 기운내서~ 이랴! 출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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