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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25 - 정치범수용소 내 생활환경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7-08-28 17:46


<시즌2>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눈물의 기록, 정의의 기록'
증언25 - 정치범수용소 내 생활환경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북한 18호 관리소에 대한 증언 들어볼 텐데요. 지난 시간에는 공개처형에 관한 얘기 들어봤고요. 오늘 이 시간에는 수감자들에 대한 일상생활, 강제노동이라든가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입고, 잠은 어떻게 자는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진행 : 오늘 이 시간에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박주용님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궁금한 게 나중에는 해제민이 되셨습니다만, 18호 관리소 생활은 이전의 정치범생활과 비슷하셨지요?

네, 똑같아요.
 
1. 그곳에서 어떻게 배급을 받았나요?

계급마다 달라요. 여기는 원목이라고 하는데 동발 끄는 직업이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는 원목, 북한에서는 동발, 살아있는 나무를 말해요. 원목을 괴가면서 탄을 캐기 때문에 꼭 필요한 거죠. 그거를 해주는 림산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언니가 원래는 갱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아빠가 갱 쪽이니까 학교를 졸업해 갱 쪽으로 가는 것인데, 언니가 한령갱 쪽에 배치받았어요. 그곳은 갱 안에 항상 물이 있거든요. 그 물에 빠져서 일을 해야 했어요. 언니가 거기서 일을 하다 발가죽까지 다 벗겨지고 하니, 죽어도 더 이상은 일을 못 하겠다며 직장을 바꿨어요. (림산으로 옮긴) 언니는 옥수수 900그램을 받았어요. 알맹이만이 아닌 옥수수 통강냉이 상태에서요. 그리고 거기서는 옥수수 깡탱이도 아깝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가루로 해서 먹어요.
 
_ 그걸 가루로 만들어서 먹을 수가 있나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맛있었어요. 그것도 없었거든요. 지금도 그 음식은 행복하고 그립기도 해요.
 
_ 그러니까 고된 사람들은 통옥수수 900그램을 받는거군요?

(배급 받는데에) 급이 있어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600에서 700그램,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700그램, 저희는 위험이 없으니 600그램이었어요. 그리고 남자는 900그램, 여자는 800그램. 같은 일을 해도 차이가 있었어요. 그게 저희 법이었어요.
 
_하루 분량인가요?

하루 분량인데 거기서 20~30% 삭감이 돼요. 하루에 배급받는 양을 합산해서 한 달에 두 번 배급받기 때문에 한 번에 15kg이나 16kg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기존의 배급량에서 삭감 받고 또 배급해주는 사람이 저울로 농간을 하기 때문에 삭감되고, 결국 집에 오면 1~2kg 빠져서 10~11kg 받는 거죠.
 
_ 배급은 계속해서 이뤄졌나요?

제가 일할 땐 1, 2년은 제대로 생활비도 탔고 배급도 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영양제도 안 주고 점점 보름치에서 이틀 치씩 잘리더라고요. 그러다 한 달에 일주일 치만 주기도 하고 쌀표는 나오는데 배급은 안나오곤 했어요.
 
_ 배급이 아예 없었나 보네요. 90년 후반대인가요? 그러니까 고난의 행군 때 배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각자 알아서 살아야 했군요?

농장세대 같은 경우에는 나만 훔치는 게 아니라 서로 훔치고 가져가서 눈 감아주곤 해요.
 
_ 국가의 농장 수확물을 개인이 가져오는 거군요?

그렇죠. 국가에도 주지만 조금씩 자기가 일한 것을 알아서 가지고 오는 거죠. 하지만 저희 같은 탄광 세대는 아예 그런 게 없잖아요. 그래서 탄광에서 사는 가족이 영양실조로 많이 죽어나갔죠
 
2.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그때 주용씨 가족은 생계를 어떻게 이어갔나요?

저희는 그때 엄마가 한국 말로 하면 디자인을 할 줄 알았어요. 북한이 한때 유행한 게 어린애들 바지 옆에 토끼 모양도 붙여주던 거였어요. 북한에선 애들이 옷을 사서 입고 그런 게 아니고 아빠 옷이 구멍 나면 그걸로 애들 옷 만들어주고 했으니까, 엄마한테 그런 일이 많이 들어왔던거죠. 일이 들어오면 엄마랑 같이 수 놓고 바느질하곤 했어요. 또 당시 배급은 안주면서 조기대 훈련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누구나 다 조기대 복장이 있어야 했어요. 그 바람에 조기대 옷을 많이 수선해서 생활비를 만들고 또 밤에 약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해갔죠
 
3.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여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신 거죠?

1997년도에 세 명을 잃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홉 살에 가족 넷을 잃었습니다. 우리 식구 외에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까요. 아버지가 3월 27일에 돌아가셨고, 제 아래 동생이 4월 1일,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4월 15일에 돌아가셨고, 막냇동생이 8월 28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_대체로 굶주림과 질병 때문에 돌아가신 건가요? 동생들은 그때 나이가 어떻게 됐나요?

막냇동생이 네 살, 제 아래 동생이 여섯 살이요.
 
4.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며칠 후에 동생이 죽었는데요.

동네에 사진사가 있었는데 그 집 아이가 제 동생이랑 친구였어요. 아버지가 사진사였던 동생 친구집은 그래도 좀 사는 집이었어요. 어느날 동생이 그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옥수숫가루 범벅을 해서 밥을 먹더래요. (동생이) 그게 너무 먹고 싶었다는 거에요.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 안된때라 끼니 생각도 못해 제대로 밥도 못 먹고 했는데, 그때 동생이 “언니 나는 죽기 전에 밀가루범벅 실컷 한번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 날(밤) 동생이 죽었어요. 하루 약초를 캐면 옥수수 1kg 정도는 살 수 있어서 다음날 날 밝으면 약초 캐다 동생 먹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항상 동생은 제 옆에서 자곤 했어요. 그 날은 평소와 다르게 살도 차고 숨소리도 안 들리고 이상하더라고요. 불을 켜고 동생을 보니까 자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어요. 엄마를 깨워서 동생 얘기를 하니 엄마는 동생이 그냥 자고 있는 거라고 말하셨어요. 그래도 저는 계속 이상해서 동생을 흔들고 깨웠어요. 동생이 끝까지 일어나지 않는 걸 보고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동생만 생각하면 아직도 옥수수범벅이 생각나요.
 
_막냇동생은 4개월 후에 죽게 됐는데요, 역시 마찬가지로 영양실조였나요?

걔는 영양실조는 아닌 것 같아요. 저희가 병명을 몰라서 이것저것 약을 쓰다가 죽게 된 것 같아요.
 
5.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동생들을 잃었는데 주용씨는 어떻게 버틸 수가 있었나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일제를 치러서 산에 묻고 왔는데 동생이 죽었으니 엄마는 정신줄을 놓고 사셨어요. 그냥 눈만 뜨고 계신 상태였어요. 일 나가도 손을 다쳐서 들어오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아는 할머니께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사람은 산사람’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산에 가서 쓰지 않은 풀이란 풀은 다 뜯어 가지고 왔어요. 그 풀을 삶아서 소금 무쳐서 먹곤 했어요.
 
6. 나이가 들면 직장배치를 받아 노동을 하거나 학생들 사이에서도 노동하는 경우, 해제민 포함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일을 하나요?

규정은 8~12시간이에요. 8시간씩 3교대로 진행되는게 원칙인데 실제로 몇 시간을 일할지는 교대 부갱장 마음이에요. (예를들어) 한 교대가 석탄 열 톤을 캐야 된다하면 그만큼을 캐야 하는데 매장량이 없다 보니까 (지정량을 다 채우기 전에) 다음 교대가 들어왔어요. 현장을 넘겨줘야 해서 갱밖으로 나오면 열톤을 밖에서 채워야 하는 거에요.
 
_그 남은 열 톤을 어떻게 채우죠?

밖에는 석탄을 싣고 가는 기차가 있는 데 가면서 흘리는 석탄들을 줍고 또 석탄 돌멩이가 오래 삭으면 석탄이 돼요. 그걸 줍는 거죠. 결국 무조건 열 톤을 채워야 되기 때문에 13시간, 14시간이 될 수 있는 거예요.
 
_젊은 여자들도 있음에도 고된 탄광일을 하는군요?

젊은 여자라고 제외되는게 없고 학교 졸업하면 여자든 남자든, 엄마나 아버지가 탄광이면 무조건 탄광으로 가야 해요.
 
7. 갱 안에 갱도 들어가서 버팀목을 세우고 채탄과 드릴, 정질, 망치질까지 다 여자들이 하기에는 보통 육체노동이 아닐 텐데요? 다치거나 부상당한 사람은 없습니까?

엄청 많죠. 갱 안에서 물통이 터지면 사람이 죽거든요. 그게 소리가 이상해요. 물통이 터질 것 같으면 소리가 달라요. 일하다 보면 느껴져서 저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나오곤 했어요. 그럼 어김없이 물통이 터지곤 했어요. 갱 중간에 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못 나올 때도 있어요. 제 친구의 경우는 일 시작하자마자 사고로 죽었어요. 사고는 충분히 일어나는 거죠. 한두 명이 아니라 무리 사고가 나서 다 같이 죽는게 많아요.
 
8. 탄광 일도 하고 수용소 생활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어떤 거였을까요?

배급은 안주면서 일을 무조건 하라고 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_일요일에는 쉬나요? 아니면 일주일 내내 하는 건가요?

쉬는 게 없죠.
 
9. 관리소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건 언제였나요?

탈출해야겠다고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갑자기 생각이 난 거에요.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막내 이모가 와서, “형부 동생이 청진이라는데 살고 있는데 너무 잘살더라”라고 했던 게 어느 순간 확 생각나는 거예요. 계속 잊고 살았는데, 뭐 삼촌이 있다는 것도 잊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생각난 거에요. 그때 그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번 나갔다 왔다는 거에 감시가 붙었어요.
 
_한번 나가서 삼촌을 만나고 왔다는 거에 감시가 붙은 건가요?

네,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고하라는 감시가 붙었어요. 그 사회 밖에 한번이라도 나갔다 오면 주변 사람들을 시켜 저를 차단을 시키는 거죠. 결국 가난과 감시가 생겨서 탈출을 갑작스레 실시한 거에요.
 
10. 주용씨는 지금 탈출해서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어머니와 언니는 아직도 관리소에 남아있는 건가요?

아마 18호 수용소가 변화 없이 운용된다면 그곳에 계시겠죠.
 
진행 : 하루빨리 가족이 함께 모여서 서로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인권침해 실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박주용님이었습니다. 증언 감사합니다.  


관리소 내 영양 부족과 강제 노동은 심각하게 열악한 상황에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인권침해 문제가
있는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
전화연결돼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박주용씨의 증언을 통해, 18호 관리소의 영양실조와 열악한 생활 환경에 관해 어떤 인권법적 측면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우선 이번 증언에서처럼 배급이 아예 끊기거나 설사 배급을 하더라도 매우 불규칙적으로
제공하고, 또 이로 인해서 상당수 수감인원이 영양실조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됐다면, 이는 북한도
당사국인 사회권규약 제11조에 규정된 식량권과 제12조의 건강권의 명백한 침해로 볼 수가 있습니다.

식량권 및 건강권이 속한 사회권은 단순히 국가가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자유권
분야, 예를 들면 자의적으로 죽이지 않고 고문하지 않아야 하는 소극적 의무의 자유권 분야와 달리,
식량권, 건강권 등의 사회권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식량이나 식량획득수단을 국가가 제공하고
건강한 환경을 보장할 그러한 행위를 취할 의무가 국가에게 부과됩니다.

또한 식량권 침해는 이번 사례와 같이 자연스레 생명권의 침해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자유권의
대표 분야인 생명권이 박주용씨 사례에서도 명백히 침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자유권규약
제6조에 규정된 생명권 침해는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대상범죄인 인도에 반한 죄의 살해나 절멸에
해당할 수 있는 국제범죄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제노동은 자유권규약 제8조의 위반이고 고문이나 기타 비인도적인 가혹행위는 자유권
규약 제7조의 위반인데, 이 둘은 모두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하는 노예화나 고문 및 기타 비인도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네, 북한 18호 관리소에 24년간 수감했던 박주용씨의 증언을 통해 관리소 내 인권침해 법적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조정현 교수님 감사합니다.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침해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은 인권침해를 기록해 향후 가해자 처벌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북한 당국과
책임자들은 인권 침해 행위를 지금이라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눈물의 기록, 정의의 기록>, 지금까지 이광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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