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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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연이광백

증언20 - 보위부구류장 심문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7-05-01 15:25


안녕하십니까? 이광백입니다. 북한에서 반(反)인도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북한 지도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에 인권사무소를 설치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만들어 북한 지도부에게 인권침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제사회와 한국이 왜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도 박명심 씨와 함께 합니다. 지난 시간 북한에 있을 때 박명심 씨의 어머니가 한국드라마 녹화물을 유통하다 체포됐고, 박명심씨는 어머니랑 만나기로 했던 곳에서 잠복하고 있던 보위부원들에 의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보위부 구류장에 한 달간 수감되셨다고 하셨는데, 구류장에 들어가게 되면 처음에 어떤 조치부터 취해지는 건가요?

보위원들이 저를 잡자마자 수갑을 채운 뒤 양쪽에서 끌고 잡아갔어요. 보위부에 들어가서는 저의 짐을 모조리 빼앗았고, 옷을 다 벗은 채 몸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짐 검사는 남자 보위원이 맡았는데,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부터 신발 밑창에 든 건 없는지 샅샅이 뒤지더군요. 몸 수색은 여자 보위원이 했는데요. 그 사람들은 몸 수색을 담당하더라도 이 죄인이 무슨 죄로 이 곳에 들어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그냥 와서는 옷을 다 벗으라고 지시하더라고요.

옷을 왜 벗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알몸인 채로 검사를 해야만 한다고 하더군요. 중국에 다녀온 여자들은 음부에 돈을 넣는다든지 항문에 물건을 넣어온다든지 하는 수법을 쓰기 때문에 그것을 다 검사해야 한 대요. 그래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을 수십 번 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도 수치스러웠습니다. 남자 보위원들도 철문 사이로 다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검사가 끝나고 나서는 제 옷에 있는 지퍼부터 바지 고무줄, 신발끈을 모조리 떼어 가져갔습니다. 그게 자살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였어요. 신발이야 구류장에선 원래 못 신고 다니게 돼 있었지만요.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 구류장 내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박명심 씨가 경험한 구류장은 어땠나요?

일단 머리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건물 구조가 굉장히 복잡했는데요, 머리를 들지 못하고 땅만 보고 다니게 하니까 사실 건물 구조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감방에 가까워지면 네 발로 기어가도록 했습니다. 제가 회령 보위부 구류장에 있을 때 남녀 감방이 4개가 있었는데요. 저는 하필 4호실이라 복도 맨 끝에까지 가야 했습니다. 4호실에 가려면 나머지 세 감방을 지나쳐야 했는데, 문 마다 달려 있는 창살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끔 네 발로 기어가게 했습니다.

감방 문은 강아지 한 마리 들어갔다 나왔다 할 만한 작은 철문으로 돼 있는데요. 그 곳을 기어서 들어갔더니 한 평 조금 더 되는 공간이 있더군요. 문에 달린 창살은 앉은 키 보다 높아서 죄인들은 앉은 채로는 밖을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사실 죄인들은 복도 문을 등지고 벽을 보고 앉아 있어야 하기도 했고요. 벽에는 손바닥 두 개 정도 되는 작은 창문이 꼭대기에 달려 있었는데요.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공기도 통하지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한 평 정도 되는 공간에 20~30명 정도가 앉아 있었는데요. 모두가 양반 자세로 앉아서 하루 종일 벽을 보고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말도 못한 채 있다보면, 3, 4시간 만에 많이 어지럽더라고요.

- 밥은 어떻게 주던가요?

밥 시간이 되면 감방 사람들이 마주 앉아 배식을 받아먹는데요. 저는 그 음식이 짐승도 안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익히지 않은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물에 풀어 줬는데, 여름이다 보니 곰팡이가 둥둥 떠다니더라고요. 저는 그것을 보는 순간 입에도 대지 못했고, 그 때부터 한 5일간 계속 굶었던 것 같아요. 장마철이라 비는 자주오고 습기는 많고, 바닥은 판자로 돼 울퉁불퉁하고…이곳에서 한 4, 5일 있으면 무릎이 아프다 못해 관절 마비가 옵니다.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죠.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 뭘 먹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견딜 수 있었나요? 쓰러지는 사람들은 없나요?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쓰러지면 그 감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쓰러지지 않게끔 죄인들끼리 서로 압박을 줍니다. 저 역시 음식을 안 먹으니 5일째 됐을 때부터 슬슬 쇼크가 오더라고요. 저는 그 때 이왕 이렇게 된 것 살아나가겠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체념을 하고 있었더니, 점차 몸과 정신에도 마비가 오더군요.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르렀고, 열흘 만에 쓰러졌습니다.

- 쓰러지게 되면 어떤 조치를 받게 되나요? 치료는 받는 건가요?

보위부에선 조사 과정 중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려 합니다. 조사 중에 죽으면 보위부가 책임을 져야 하거든요. 저 역시 쓰러졌다가 3일 만에 깨어났는데요. 오히려 보위원들은 제가 자살하려던 것인 줄 알고 제가 깰 때까지 구타를 했더라고요. 죄인에게 무슨 약이 있나요, 치료 대신 이렇게 구타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뜨니 온 몸이 피투성이어서 왜 때렸느냐고 물었더니 정신 차리게 하려고 때렸다고 답하더군요. 그 몸 상태로 끌려 나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처음에는 펜과 종이를 주면서 이곳에 왜 잡혀 왔는지 이유를 쓰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잡혀온 이유를 모르는 데 뭘 쓸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자, 보위원이 ‘아버지 이름 뭐야’ ‘엄마 이름 뭐야’ 하면서 한 마디씩 던지더군요. 그러면서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죠. 말을 안 하고 있으면 나라를 팔아먹은 년의 딸이라는 둥 온갖 폭언이 날아왔습니다.

- 19살 어린 나이에 조사를 받은 건데, 구타도 심하게 당하셨던 건가요?

때리고 밟는 건 기본이고요. 각목으로도 때렸고, 보위원들이 차고 다니는 가죽 벨트로도 때렸습니다. 머리를 잡고 벽에다가 치는 것 역시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여자이고 나이도 어렸으니 그 정도에서 끝난 것 같은데요, 성인들은 더 심하게 구타를 당합니다. 옆방에서 나던 소리를 잊을 수 없어요.

-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신적으로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 어머니의 죄를 자백하라는 강요였을 것 같은데요. 보위원이 자백을 강요하며 협박했던 건가요?

네, 제가 종이에 자백을 쓰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길게 안 쓰고 정도껏 썼더니,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나봐요. 몇 번을 추궁한 뒤에 감방에 들여보내더니, 2, 3일 만에 다시 불러서 조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도 자백을 안 하니, 한 번은 보위원이 저희 어머니 필체를 보여주더라고요. 원래는 대면을 시켜야하는데, 그것까지는 하지 않고 필체로 자백을 받아내려 한 것이죠. 엄마가 조사 과정에서 쓰셨던 자백 내용을 보위원이 제게 보여주더니, 저에게도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고, 혹은 집안 전부를 간첩죄로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갑과 권총, 벨트, 각목 등을 보여주면서 곱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도 했고요.

- 결국 박명심 씨는 강요된 고백을 하고 구류장에서 나오게 됐고, 어머니는 나중에 수용소로 가게 되신 건데요. 이럴 경우 부부 간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동으로 이혼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요.

- 박명심 씨가 구류장에서 풀려난 뒤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오히려 감방 안에 있을 때보다 참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원래 온성 사람이지만 회령에 잡혀 있는 것이었잖아요? 그렇다보니 고향에선 그저 저에 대한 추측만 난무했더군요. 온성으로 돌아가서도 보위부에서 계속 저를 불러다가 한 달간 재조사를 했어요. 집에 있을 때도 도 보위부, 군 보위부, 시 보위부에서 매일 찾아왔고요. 이미 조사를 다 마치지 않았느냐고 해도, 아직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면서 계속 찾아와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이 때 사실 기존에 자백했던 것과 한 글자라도 다른 말을 하게 되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지난 조사에서 했던 말들을 머릿속에 넣어놓았다가 다시 똑같이 털어놓아야했어요. 그런 삶을 한 달, 두 달 살다보니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러다가는 저도 엄마처럼 잡혀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모르게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 부모님이 현재 어떻게 지내시는지 연락 닿은 게 있는지요?

연락은 안 되고요. 어머니는 요덕 수용소에 잡혀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수성에 있는 교화소로 가셨고요.

- 이 방송이 수용소에 들리지는 않겠지만,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

일단 어머니, 아버지, 나를 이 세상 빛을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던 게 너무나 후회됩니다. 제발 북한에서 살아계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오늘 저의 이야기를 부모님은 듣지 못하시겠지만, 북한 주민 분들이라도 들으셨기를 바랍니다. 주민 여러분, 하루 빨리 자유를 찾아오세요.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은 정치범수용소에 가 계시지만, 북한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부모님을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북한인권 유린 문제를 증언하는 데 있어서도 제가 도움이 되는 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북한의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 형법 제242조, 형사소송법 제6조, 제37조, 제167조, 제222조 등입니다. 특히 형사소송법 제37조는 강압과 유도의 방법으로 받은 피의자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보위부는 원하는 진술을 얻기 위해 심한 폭행과 가혹행위, 심지어 협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유권 규약 당사국이기도 한 북한은, 구금 시설 내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를 즉각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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