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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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권력장악 비화, 김동규, 류장식 몰락 사건 2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당내에서는 아직도 김정일 세습체 제에 불만을 갖고 있는 세력이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6년, 김정일 세습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던 당내 간부들이 최후의 반격을 시도했다. <추적 사건과 진실, 김동규, 류장식 몰락 사건>



청취자 여러분, 김일성은 몇 번의 숙청 끝에 반대세력을 모조리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김일성을 반대할 만한 세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된 후 권력이양을 하는 과정에 당내에서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지난 시간에 밝혔듯이 그 대표주자가 바로 부주석 김동규였습니다. 김동규는 1976년 6월 초에 열린 정치위원회 회의에서 김정일의 간부인사와 계급정책, 후계체제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김동규 : 김정일 동지는 빨찌산 가족들만 우대하면서 이들과 어울려 제멋대로 행동하고, 당 규률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또한 로간부들에게 로쇠딱지를 붙여 직위를 해제하는가하면, 자신의 세력을 뒷받침하는 청년간부들을 대거 진출시키고습니다.



사실 김동규나 류장식이 제기한 문제는 권력내부의 ‘자리싸움’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김정일이 너무 성급하게 자기 사람으로 상층부를 채우려고 했던 데에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목된 초기에는 로, 중, 청을 배합하였고, 또한 항일투사들과 그들의 유자녀, 기타 계급 등 비교적 골고루 간부를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계급성이 좋은 사람들을 골고루 배치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특히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고 하면서, 권력의 상층부에 자기 사람들을 급속하게 채워 놓았습니다. 김동규와 류장식은 이 문제를 걸고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오진우가 김동규의 발언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어서 최현과 김일이 나서서 오진우를 지원하였습니다. 론란이 계속되자 김일성이 입을 열었습니다.



김일성 : 김정일 동지가, 로간부들에게 로쇠라는 딱지를 붙인 사실과 당내 청년 간부화를 급속하게 한 것은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그때 그때 지적해야지 그동안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일이 추진된 다음에 떠드는 것입니까.



이쯤 되면 입을 다물어야 했지만 김동규는 결정적인 발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김동규 : 보다 중요한 문제는 지금 김정일 체제 돌입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것입니. 김정일 치켜세우기는 인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합니다.



가장 민감한 사안인 김정일 후계체제 문제를 걸고넘어지자 격론이 벌어지면서 이곳저곳에서 론란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때 중앙당 대남사업담당 비서였던 류장식도 김동규의 ‘로간부 홀대 발언’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회의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습니다. 김동규로 인한 당내 파동은 쉽사리 가라않지 않았고 얼마 후 다시 정치위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김동규의 비판문제가 상정되였으나 김동규는 “어찌됐든 김정일의 간부 인사정책은 당의 단결력을 해친다.”고 하면서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완강히 버티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김정일은 김동규와 류장식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관한 10대원칙에 걸어 그를 국가정치보위부에서 취급하게 만들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간 류장식 등은 어느 초대소에 감금돼 몇 달간 비판서를 쓰면서 사상검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김정일 후계체제에 반기를 든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류장식이 갇혀 있었던 초대소 직원에 따르면 그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위원 : 야 류장식, 손 내밀어!



류장식 : 뭐야, 이거!



보위원 : 이 새끼, 아직도 네가 중앙당 비서인줄 알아. 이제 넌 개보다도 못한 신세야.



류장식을 끌고 나온 보위원은 발길질을 하며 류장식을 차에 실었습니다. 비판서를 쓰는 동안 깍듯하게 중앙당 비서의 대우를 받았던 류장식은 하루아침에 정치범이 되여 짐짝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김동규와 류장식 등은 1977년 말 10대원칙에 해독을 끼쳤다는 리유로 가족, 친척들까지 모조리 함경남도 부전골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숙청의 바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여독청산이라면서 곳곳에서 피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군대와 사법, 검찰 분야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여독청산이라는 명목하에 수용소로, 광산과 탄광, 농촌으로 쫓겨 갔으며 근 30만 명에 달하는 당원들이 출당, 철직되였습니다. 그리고 이 빈 자리를 보충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원이 당원으로 충원됐습니다. 그 당시 “당 문을 열어놓는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을 입당시켰던 일을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항일혁명투사였던 김동규, 한덕수의 총애를 받아 추천되였다는 중앙당 비서 류장식은 아버지 김일성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권력의 야욕에 불타던 김정일에 의해서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이것이 김동규, 류장식 사건의 진실이며, 우리가 소문으로 알고 있는 것은 김정일과 그 세력들이 류언비어를 통해 흘려보낸 그야말로 허튼 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동규와 류장식, 그리고 그 이전에 교통사고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남일과 같은 적수들을 하나하나씩 제껴버린 김정일은, 1978년부터는 당 간부사업에서 중앙당의 부장급이나 정치위원까지도 마음대로 추천할 수 있게 되였고, 당내에서 온갖 전횡을 다 부려도 누구도 감히 막을 수없는 존재로 부각되게 됩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김동규, 류장식 몰락 사건> 마지막 시간이였습니다.





<참고자료>

- 김정일 리포트(손광주,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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