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 방송정보매주 화요일 저녁 10시 방송 | 종영방송
- 출연서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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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견학
얼마 전 경기도 평택으로 안보견학을 다녀왔다. 서울서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인 평택에는 한국해군 2함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 곳에는 서해교전과 천안함사건을 비롯해 북남사이 무력충돌과 도발사건, 그 참상이 고스란히 기록돼있는 안보전시관이 있다. 일반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그날 견학은 천안함사건 3주기를 맞아 천안함 용사들을 기리고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군부대입구에 들어서니 길 양옆의 기다란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바다를 넘보는 자 용서치 않으리라.”
“또다시 도발하면 단호히 응징하리라.” 이런 구호들이었다.
강도는 약하지만 그런 전투적이고 위압적인 구호를 본 것은 조선을 떠나 온 후 처음이었다. 여기 한국에서는 군부대에 와서야 그런 구호를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조선에서는 거리와 마을, 학교 등 어디를 가나 그런 구호들이었는데……. 그것도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구호들 말이다. 보기에도 섬뜩한 구호들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무섭게 사람들을 노려보곤 했다. 그 때 그 풍경, 조선의 현실이 생각나면서 허거픈 웃음이 나왔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안보전시관에서 군인강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한 말로 이것도 안보견학인가? 싶었다. 내가 상상하던 안보견학, 조선에서의 전쟁기념관 견학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감정이나 선전 따위가 덧칠해지지 않아서 그 만큼 객관적이었다고 할까, 강사의 해설은 그냥 무미건조하고 담담했다. 표정 역시 무덤덤하기만 했다. 안보해설이 아닌 그냥 일반해설 같았다. 조선에 있을 때 전쟁기념관 해설강사는 목소리부터가 감정적이고 전투적이었다. 그것도 얼굴에 증오심과 적개심까지 가득차서 말이다. 해설시간은 또 얼마나 길고 지루했던가, 다리가 다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여기 한국에서는 해설시간도 그냥 간단히 소개나 할 정도로 짧았다.
“허, 이외네, 이게 무슨 안보견학이야, 이래가지고 안보의식 고취가 되겠나?”
하지만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희생된 천안함 용사들의 유품이며 폭침으로 처참하게 두 동강 난 천안함 잔해를 직접 마주하며부터였다. 나도 모르게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어떤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구호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그 증거물들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도 강하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아무리 감정적이고 전투적인 해설이라 한들 사실보다 진실보다 더 강렬할 수는 없었다.
하루가 끝나가는 고요한 그 밤 서해바다 남측영해에 도적고양이처럼 침범해 동족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들씌운 선군호전광들, 김정은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강하게 솟구쳐 올랐다. 평화와 안보의 소중함, 그를 위해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우리 민족의 고통과 슬픔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시각도 김정은정권은 별의별 호전적인 구호들을 다 만들어 조선인민에게 지겨우리만치 전쟁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온갖 거짓과 조작, 호전적인 해설로 인민들에게 동족을 헐뜯는 대남선전과 적개심고취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민들의 일상과 안보견학은 얼마나 조용하고 객관적인가, 그래서 좀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전투적인 구호나 광적인 적개심 고취라 할지라도 진실을 이길 수 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보다 더 좋은 안보견학은 없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택에서의 안보견학은 매우 강렬하였다.
이것으로써 라디오수필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를 전부 마칩니다. 그 동안 청취해주신 청취자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