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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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대학입시설명회
한국에서 대학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 내신 성적 위주로 들어가는 수시전형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시험격인 수능점수로 들어가는 정시전형이다. 이는 또 학생부전형과 논술전형, 자연과학-예체능 특기전형 등 10개 내외로 갈리는데, 그것을 세분화하면 전형방법이 수천가지라고 한다. 3200가지라던가?
평소 TV,신문이나 주변얘기로 한국의 대입전형이 아주 복잡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원래 복잡한 것은 질색이고 피하는 성격인데다 그 동안 애들도 아직 어려 주변에서 아무리 대학입시니 뭐니 해도 남의 일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큰애가 고 3학년이 되니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남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큰애가 야무진 편이라 스스로 잘 챙기겠거니 하면서도 주변 엄마들의 극성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고3이 벼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고 중요할 때라 고3 엄마로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거의 깜깜인지라 막막하기도 했다. 그런 찰나에 큰 애가 대학입시설명회가 있다고 해서 같이 가보게 되었다.
대입설명회가 열리는 서울 잠실체육관은 바깥부터 초만원이었다. 한참 줄 서서 입장을 하니 실내좌석도 꽉 차 있었다. 무슨 체육경기나 연예인 공연도 아니고 이렇게나 많이 오다니, 가히 세계최고인 한국의 높은 교육열이었다. 몇 년 전 큰애와 한국의 유명가수그룹 빅뱅 콘서트를 보러 왔을 때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어디 앉을 데가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안내원이 다가왔다. 따라가 보니 요행 행사연단 맨 앞쪽에 자리가 있었다.
참가자가 많아 설명회가 예정보다 늦게 시작됐다. 수능공부는 곧 양이다, 고 3은 휴대폰을 없애라는 등 기본적인 얘기부터 시작해 올해 A와, B형으로 나뉘는 수능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축복이나 재앙이 따를 수 있다는 등 대입전략설명회로 이어졌다. 작년 공부 잘하는 한 아이가 전략을 잘 못 짜 원하는 대학에 못 붙었고, 어떤 아이는 성적은 좀 떨어지지만 자기한테 맞는 전략을 잘 짜 대학에 붙었다는 등 여러 가지 사례들도 장시간 이어졌다. 한 5시간은 들었을까? 나로서는 복잡하고 지루하였다. 대입설명회 들으면 뭔가 윤곽이 잡히고 정리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머리만 더 아파왔다.
내 심정을 눈치 채기라도 한 걸까? 맨 앞에 앉아있어서인가? 강사가 도중에 질문 하나 던지며 나에게 마이크를 대는 거였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거였다. 숱한 사람의 눈길이 내게로 쏠렸다. 당황스러웠다. 말 안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우물쭈물하다가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복잡한데요. 전략이고 뭐고 그냥 대학가는 방법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수시나 정시에 만점 맞으면 되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가? 학생마다 잘하는 과목이 있는가 하면 약한 과목도 있다, 또 교육환경이나 조건도 다르니 상대적으로 불리한 학생들도 있고, 수능당일 건강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대입전략을 잘 짜는 것이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거죠. 라며 강사의 말이 이어졌다.
누가 모르나, 복잡하다는 거지.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네, 이러며 혼자 중얼거렸다. 암튼 대입설명회를 계기로 한국의 대학입시제도와 경쟁이 얼마나 복잡하고 치열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해 한국에서는 입시위주라느니, 학생들의 창의력을 위축시킨다느니 비판이 많다. 하지만 실력보다는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집안성분이 더 중요시되는 조선의 단순하고 불합리한 대학입시제도에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하다. 지금 조선에서는 돈만 고이면 예전보다 대학입학이 쉬워졌다지만 한국이라면 어림도 없는 것이다. 조선에도 누구나 실력으로 경쟁하고 평가받는 그런 사회가 하루빨리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