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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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해방 직후 북조선을 통치했던 구쏘련 간부들

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4-08-07 18:48


진행: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장성무입니다. 오늘도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로씨야 사람이죠. 이휘성 동무와 함께 조선의 현대 역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인사)

진행: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습니까?

이: (오늘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조선반도의 북반부를 관리했던 쏘련 간부들에 대한 이야기)

진행: 당시 역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실제로 북조선을 통치했던 쏘련 간부들을 알 필요가 있는데요, 오늘 어떤 사람들을 소개해 주실 겁니까?

이: (이반 미하일로비치 치스챠꼬브 (Иван Михайлович Чистяков) 소련군 상장, 제25군 사령관 (1947년 4월까지), 데렌티이포미치 슈띠꼬브 (Терентий Фомич Штыков) 소련군 상장, 제1극동전역 정치위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언 후 주(駐)북한소련대사, 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제브 (НиколайГеоргиевичЛебедев) 소련군 소장, 제25군 정치위원, 안드레이 알레크세예비피 로마넨코 (АндрейАлексеевичРоманенко) 소련군 소장, 소련민간관리부 부장)

진행: 그럼 한 사람씩 살펴봅시다. 당시 북조선에서 제일 높은 쏘련 간부였던 치스챠꼬브부터 살펴볼까요?

이: (치스챠꼬브는 실제 통치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내린 하나의 결정은 북한 역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치스챠꼬브는 제1극동전역사령관인 키릴 메레츠코프 소련 원수의 부름을 받아 제25군의 사령부를 평양과 함경남도 함흥 중 어디에 세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했다. 치스챠꼬브가 평양을 선택해 평양이 추후에 수도로 세워지게 될 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그가 당시 함흥을 선택했다면, 함흥이 현대까지 북한 수도로 남고 북한은 '대동강문화' 대신 '성천강문화'를 한반도 역사의 기원이라고 선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행: (정리) 두 번째 인물은 우리가 지난주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슈띠꼬브인데요, 이 사람이 실질적인 통치자였다고 볼 수 있겠죠?

이: (슈띠꼬브 (Терентий Фомич Штыков).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북한에서 실권이 가장 많은 인물로 평가된다. 북조선에 온 슈띠꼬브는 정치, 경제, 교육 등의 분야에서 많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북한 헌법도 편집하였고, 북한 첫 내각의 구조에 대한 결정도 내렸다. 당시 김일성, 김두봉, 박헌영 등 북한 간부는 그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진행: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키는데도 슈띠꼬브가 영향을 미쳤다면서요?

이: (1949년부터 한반도의 무력통일에 대한 꿈이 있었던 김일성은 슈띠꼬브에게 계속 남조선을 공격하자고 했다. 슈띠꼬브는 김일성의 계획을 결국 지지하고 스탈린에게 알리게 된 것이다. 이후 스탈린의 허가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남한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슈띠꼬브와 김일성의 기대와 달리 북한군대는 전체 한반도를 점령하지 못해 국제연합군의 반격을 받게 됐고, 이후 슈띠꼬브는 중장으로 강등, 소련으로 소환되었다. 슈띠꼬브는 소환된 이후 북한에 다시 가본 적이 없었다.)

진행: 세 번째 인물은 제25군 정치위원 레베제브입니다. 김일성의 스승이라는 평가가 있죠?

이: (레베제브는 김일성을 가르쳤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회의록에 따르면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이 처음 주민들 앞에 섰을 때, 그를 시민대회에 데리고 온 인물이 바로 레베제브 소장이었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만든 사람도 레베제브였다. 당시 북한 체계를 '인민민주주의'이라고 불렀었는데 레베제브가 나라도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진행: 마지막 인물은 슈띠꼬브의 직속 부하였던 로마넨코 소장인데요, 이 사람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이: 로마넨코 소장은 소련민간관리부의 부장이었다. 1945년 10월 3일 설립된 소련민간관리부는 북한 임시 정부였다.  이름과는 달리 민간관리부의 직원들은 예외없이 군인로 채워져 있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설립 이후에도 소련민간관리부는 북한을 관리했고, 관리부의 국(局)마다 인민위원회에 명령을내렸다. 즉, 당시에 북한을 다스리는 것은 스탈린을 수반으로하는 소련최고사령부→제25군→소련민간관리부→김일성을 수반으로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북한토지개혁 등 중요한 결정은 소련민간관리부에서 결정, 실행되었다.

진행: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보면 방금 소개해 드렸던 쏘련 간부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휘성 동무 이야기 들어보니까 사실과 많이 다르네요?

이: (김일성 회고록에서는 슈띠꼬브, 치스챠꼬브, 레베제브에 대한 내용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을 왜곡하고 있다. 조선에 주둔한 일본제국 군대를 쳐부순 세력이 소련군보다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주장하고, 김일성이 슈띠꼬브, 레베제브와 메레츠코프 등 소련 간부와 동격으로 '조선해방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식이다. 물론, 이것은 실체적인 역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진행: 네. 북조선에선 김일성이 해방부터 건국까지 다 했다고 선전을 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쏘련 간부들의 지도 아래 모든 일이 이뤄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휘성 동무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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