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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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북한의 국기를 만든 건 김일성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4-07-25 17:35


진행: 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장성무입니다. 오늘도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로씨야 사람이죠. 이휘성 동무와 함께 조선의 현대 역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인사)

진행: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습니까?

이: (태극기에 대한 이야기 준비)

진행: 해방 직후 남과 북이 서로 나라를 수립하기 전까지 조선반도의 국기는 태극기였죠?

이: (조선 고종 때인 1883년에 국기로 채택. 일제 강점기때 일본에 의해서 태극기를 폐지. 광복 이후 남북은 갈라졌지만 조선반도에서는 태극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진행: 1945년 8.15해방 직후에 북조선에서도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한 걸 보여주는 사진을 휘성 동무가 직접 확인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이: (1946년 6월 조선노동당의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행사 사진에서 태극기 무대 배경으로 쓰인 걸 확인. 같은 장면을 찍은 사진이 조선에서 발간한 책에도 나와 있는데, 태극기가 지워진 상태였다. 조선 당국이 사진을 왜곡한 것)

진행: 2013년 8월8일자 노동신문에 보면 김일성이 공화국 기발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저도 그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 중에 이른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건국의 그 나날 우리의 국기에 담아야 할 사상적 내용과 그 표현방도까지 가르쳐주시며 공화국 국기를 훌륭히 완성시켜주시던 어버이 수령님의 위대한 모습을.” 그런데 조선 당국의 선전은 거짓이다.)

진행: 근거가 있습니까?

이: (해방 직후 북조선을 통치한 쏘련 제25군에서 통역을 맡았던 고려인 박일의 증언이 있다.

진행: 그럼 쏘련이 남과북이 함께 쓰던 태극기를 버리고 북조선의 국기를 새로 만들려고 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이: (박일에 따르면 1947년 여름에 어느 날 쏘련 제25군 정치부 레베데프 소장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김두봉을 불렀고 오래지 않아 북조선에서도 국가를 세워야 할 테니 국기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김두봉에게 태극기의 내력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고, 조선이 새 국기가 필요한지 김두봉의 의견을 물어봤다.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김두봉은 구체적으로 음양의 상징인 태극 그리고 사괘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며 공산주의 조선의 국기로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진행: 김두봉이 태극기를 그대로 공화국 기발로 사용하자고 한 것에 대해 레베데프 소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이: (쏘련 장군 입장에서 '태극' '음양' '사괘' 등의 개념은 '동아시아 봉건주의 사상'에 불과했다. 레베데프는 김두봉에게 설명을 그만두라고 했고, 태극기의 유래를 함께 듣고 있던 쏘련군 대령은 '이건 전설과 같은 이야기'라고 하고 코웃음을 쳤다. 바로 이날에 태극기가 폐지될 운명이 결정된 것 같다는 게 소련 제25군 통역가였던 박일의 증언이다)

진행: 그럼 오늘날의 공화국 기발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이: (이에 대해서도 박일의 증언이 있다. 쏘련 군정 수뇌들과 김두봉과의 대화 이후 몇 날이 지난 뒤, 모스크바에서 소련 제25군 제7호부에 전화가 왔다. 박일은 전화를 받아 상대방이 쏘련 말로 설명하는 인공기(人共旗, 즉 인민공화국 깃발) 도안을 썼고 조선말로 번역했다. 유감스럽게도, 인공기의 제작자는 누구였는지 알 수 없다.)

진행: 공화국기가 공식적으로 정해진 게 1948년 7월8일이니까 그때까지는 태극기를 국기로 썼겠네요?

이: (네. 태극기는 이후에도 몇 달 동안 사용했다. 1948년 4월 김구가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태극기 아래서 연설했다. 그러나 1948년 여름,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건국 준비가 급속화돼, 결국에는 1948년 7월 8일 북조선인민회의는 태극기를 폐지시키면서 새로운 국기로 인공기를 제정했다. 김두봉은 연단 뒤에 있던 태극기를 끌어내릴 것을 지시했고 대신 인공기를 게양시켰다. 태극기가 폐지된 후 열흘이 지나 김두봉은 '신국기의 제정과 태극기의 폐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고 같은 해 8월 같은 제목으로 책을 발표했다.)

진행: 쭉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쏘련에서 공화국 국기를 정할 때 김일성한테 물어본 건 없네요?

이: (1948년 8월 책으로 나온 신국기 관련한 담화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화국 국기는 쏘련에서 고안한 걸 그대로 제작한 겁니다.)

진행: 네. 오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휘성 동무 수고했습니다.

진행: 네. 오늘은 공화국 국기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장성무였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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