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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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일곱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2-17 18:49


내레이션: 김일성이 죽자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심화조 사건을 일으켰다. 1997년 말부터 3년간 진행된 이 사건으로 2만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숙청당했다. 권력의 전환기에는 늘 피바람이 몰아치게 마련이다. 김정일의 통치 방식을 계승한 김정은도 앞으로 심화조 같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 김정일의 권력 장악 비화를 통해 김정은의 선택을 전망한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지난이야기> 심화조의 전횡과 고문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김정일은 구원자 행세를 하며 심화조를 공격하도록 지시한다. 김정일은 보위부와 보위사령부를 앞세워 사회안전성을 공격하도록 하는데.....



김정일은 전국의 강연회에서 사회안전성 심화조의 죄행을 폭로하는 당 중앙 검열 총화보고서를 랑독하게 했다. 당 중앙 간부강연회에선 국가안전보위부와 무력부 보위사령부가 도청한 자료를 기초로 심화조의 고문행위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도록 했다. 간부들에 한해서만 공개됐던 도청 테이프가 사회로 류출되면서 그것을 들은 많은 이가 경악했고 분노했다. 김정일은 자신이 제 때에 사태를 수습해 억울하게 희생될 뻔한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며 대대적인 선전을 하면서, 사회안전성 심화조 소탕작전을 벌이도록 지시했다.



재판장: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 중앙당 조직지도부 사회안전성 담당책임지도원 리철, 사회안전성 주민등록국 국장, 평양시 룡성구역 안전부 수사과장, 이놈들은 권력야심에 눈이 멀어 우리 당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종파분자이자 반혁명적인 야심가들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형법 제59조 국가전복 음모죄, 제62조 조국반역죄에 의거하여 사형에 처한다.

효과: 공개총살



심화조의 실질적인 배후인 김정일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들의 지시를 받은 사회안전성의 하수인들만이 처벌됐다. 숙청의 피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심화조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각 도·시·군의 사회안전성 간부들도 모두 처벌됐다. 사회안전성 참모장 황진택을 비롯한 몇몇 간부는 15~20년의 교화형을 받았고, 심화조 세포조직을 책임졌던 각 도·시·군 안전부장과 정치부장은 10년형을 받았다. 심화조 사업에 앞장서서 악독한 고문방법으로 예심조사했던 평양시 심화조 녀성 예심원을 비롯한 전국의 고문 전문가 수백 명에게는 무기교화형이 선고됐다. 전국의 안전원 6000명이 무거운 교화형을 받거나 철직, 추방됐다. 한바탕 숙청을 끝낸 김정일은 사회안전성의 이름까지 바꿔버렸다.



김정일: 생각 같아선 사회안전성을 통째로 없애고 싶었지만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참습니다. 그러나 사회안전성의 영상이 심각하게 훼손됐기 때문에 이름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사회안전성은 인민을 탄압하는 조직이 되지 말고 인민의 생명을 보안하는 조직이 되라는 의미에서 사회안전성을 인민보안성으로 바꾸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0년도에 사회안전성은 인민보안성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김정일의 정치적 깜짝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정일은 수많은 사람의 억울한 누명을 자기가 직접 벗겨준다는 의미에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던 심화조 피해자들을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석방시켰다. 그들이 인생을 다시 찾는 격정의 순간을 주민들에게 실화로 보여주어 광폭정치와 인덕정치의 최고의 화신이라고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일은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강연회를 조직하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그 무대에서 정치범수용소 석방선언과 가족상봉 모임을 조직했다. 그러나 모략은 모략일 뿐이었다. 강연회장은 오히려 독재의 고발장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여1 : 지금부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를 전달하겠습니다. (FO) 권력야심에 눈이 먼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 한 사람이 출세를 위해 수많은 당 간부를 제거하고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장군님이 이 사태를 제 때에 발견하시여 수많은 희생자들을......



(OL) 그런데 김정일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영문도 모르고 정치범수용소에서 며칠 동안 트럭에 실려 시내까지 온 초췌한 몰골의 정치범들은 큰 소리로 랑독되는 김정일의 석방명령이 사형판결처럼 들렸는지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며 애원하고 통곡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비인간적인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 분노는 곧 가족상봉모임에서 절정에 달했다.



정치범들과 그 가족들은 각각 다른 정치범수용소에 갈라져 수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둥켜안기 바쁘게 큰 소리로 제 아들과 아내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아직도 갇혀 있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희들이 죽는구나. 제발 나만 잡아가라”고 피를 토하듯 소리 질렀다. 원래 3차까지 예정돼 있었던 정치범석방과 가족상봉 모임은 1차에서 역효과가 명백해지자 중단하고 말았다.



심화조 피해자들은 정치범수용소 생활로 인해 정신장애와 중병을 얻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석방은 또 다른 고통과 울분의 연속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성우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성우: 정치적 문제로 사랑하는 안해와 리혼당한 사람들은 이미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녀자를 눈물로 그리워해야 했고, 어떤 녀자는 아이를 빼앗기던 날의 공포와 아픔을 잊지 못해 남편을 만나자마자 저주하며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가족해체를 당한 그들은 재산과 집까지 잃었습니다. 간부들이 대부분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당하면서 고급 아빠트에는 다른 간부들이 들어왔으므로 원래 살던 이에게 돌려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에서는 일단 심화조 피해자들에게 임시로 집단거처를 마련해주고 쌀과 기름을 공급해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이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이들에게 이같은 지원이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서관히 간첩 사건이 그 출발점이였다. 김정일의 권력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시작된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의 지지와 특권허용을 리용하여 당내에 자신의 권력기반을 닦으려 했던 장성택과, 이 장성택을 등에 업고 사법기관의 수뇌로 부상하려 했던 채문덕의 야심까지 겹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렇듯 몇몇 사람의 야심과 계획에 의해 수만 명이 희생당할 수 있는 체제. 죄가 없이도 강제로 끌려가고 아무런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무참히 고문을 당해야 하는 체제, 맞아 죽어도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반인민적인 체제, 김정일 일가만 살 판치는 조선의 제도와 환경이 심화조 사건을 일으켜 결국 2만 5천여 명이라는 희생자를 낳은 것이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마지막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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