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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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세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1-20 16:36


내레이션: 김일성이 죽자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심화조 사건을 일으켰다. 1997년 말부터 3년간 진행된 이 사건으로 2만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숙청당했다. 권력의 전환기에는 늘 피바람이 몰아치게 마련이다. 김정일의 통치 방식을 계승한 김정은도 앞으로 심화조 같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 김정일의 권력 장악 비화를 통해 김정은의 선택을 전망한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지난이야기> 중앙당 농업담당비서 서관히는 경제범 혐의를 받고 평양 보통강 구역 안전부에 수감된다. 그런데 김정일의 지시로 안기부 간첩으로 몰려 공개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서관히의 첩자로 고용됐다는 한 여자가 서관히의 죄를 날조해 고발하는데....



녀1: (격렬하게) 서관희는 자기 죄를 부정하는데 그는 남조선 안기부의 지시를 받은 간첩이 확실합니다. 저는 돈에 눈이 멀어 조국과 민족을 배반하고 서관히의 지시로 첩자로 활동했습니다.

효과: (OL) 사람들 고함

판사: (마이크) 지금부터 피고 서관히에 대한 판결을 다음과 같이 확정한다. 서관히는 남조선 괴뢰들의 사주를 받아,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허물기 위해 주체농법을 체계적으로 망하게 하는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다. 반당 반혁명분자 서관히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형법 제59조 국가전복 음모죄, 제62조 조국반역죄에 의거하여 사형에 처한다. 이와 함께 서관히의 첩자도 사형에 처한다.

녀1: (재갈이 물리며 끌려 나간다) 왜 이러십니까? 시키는 대로 하면 풀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놔, 이놈들아. 나는 죄가 없어! (입이 막히며) 서관히랑 아무런 관계도 없어!



판사가 사형판결을 내리자 안전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 녀성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대중 앞에서 원통함을 호소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효과: 군중 소리



서관히와 그 여자는 사격수들의 총탄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격노한 군중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다. 군중들은 미국과 남조선이 북조선 주민을 전멸시키기 위해 체계적으로 농사를 망치게 한 결과 자기의 가족과 친인척이 그동안 굶어죽었다며 숨이 막힐 정도로 통분해했다. “남조선 괴뢰놈들을 찢어 죽이라”는 고함이 가득 찼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빚은 참혹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서관히가 혼자 고스란히 떠안고 간 것이다.



또한 그의 죽음은 북조선 전 주민에게 남조선에 대한 증오감정을 극대화하는 사상적 효과도 가져왔다. 간부들이라면 무조건 당의 충신일 것이라 믿고 존경하던 주민들이 그 사건 이후 소위 혁명적 경각성과 정치적 안목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된 토대에서 김정일은 사회안전성에 ‘심화조’라는 것을 만들고 당·군·내각 안의 고위직 김일성 측근 인물들을 사정없이 제거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심화조란 무엇일까? 북조선 주민 서미경의 설명이다.



서미경: ‘심화조’라는 명칭은 주민등록 요해를 심화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공화국 주민들에겐 각각 세 개의 두꺼운 경력카드가 있습니다. 인사사업을 위한 당위원회 보관용 간부문건으로 불리는 주민등록 료해 문건, 또 하나는 국가보위부에서 그 사람의 정치적 동향이며 발언까지 일일이 기록한 사상검토 차원의 주민등록 료해 문건, 끝으로 사회안전성에서 사돈의 12촌까지 기록한 족보집 같은 주민등록 료해 문건이 있습니다.



이 세 문건은 북조선 주민들의 일생 감시하고 구속한다. 집을 이사하거나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 문건들은 본인의 그림자처럼 해당기관을 통해 따라다니므로, 문건의 평가에 따라 출세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민등록 문건만 봐도 이 사람이 10여 년 전에 며칠부터 며칠까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손금 보듯 알 수 있으며 생각까지 읽을 만큼 구체적이다.



사회안전성 수사발표에 의하면 서관히의 경우 6·25전쟁 시기의 경력에 한 달간 공백이 있었으며 그것을 추적한 결과 문제의 한 달 동안 남조선의 임무와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장성택을 수뇌로 하는 사회안전성은 자신들의 이러한 수사 론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른바 ‘룡성 사건’을 추가적으로 감행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젼 아나운서: 계급적 원쑤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최고사령부’를 타격하기 위해 6·25전쟁부터 현재까지 잠복해 있던 간첩들을 사회안전성이 적발했다. (FO) 이 놈들은 신분을 감춘 채 평양시 룡성구역에 오랫동안 잠복해 있었다.



룡성 간첩사건이란 서관히 사건의 제2막에 해당한다. 6·25전쟁 당시 남조선 특수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최고사령부 타격대가 평양 룡성에 침투했다는 그곳 주민의 옛이야기가 토대였다. 평양시 룡성구역 안전원들은 서관히의 수사방법대로 그곳 주민들의 경력을 료해한 결과 경력을 기만한 흔적과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그때 침투했다가 지금까지 잠복해있던 간첩이라는 이야기였다.



사회안전성이 이런 사건들을 연발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일의 특혜와 당 조직부 제1행정부부장 장성택의 권력야심이 사회안전성에 고스란히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지시아래 장성택은 서관히 사건을 일으킨 뒤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을 불렀다.



장성택: 채 국장 이번에 아주 수고 했어.

채문덕: 아닙니다. 다 부부장 동지께서 지도를 해주신 덕분입니다.

장성택: 지난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장군님께서 사회안전성에 거는 기대가 아주 커. 이번 기회에 사회안전성이 큰일을 터뜨려 봐.

채문덕: 부부장 동지 걱정마십시오. 저희 사회안전성은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여 장군님를 결사옹위하는데 앞장 서겠습니다!





사실 사회안전성은 그전까지만 해도 권력만능으로 악명을 떨치던 국가안전보위부, 그리고 선군(先軍)정치 이후 보위부를 능가하는 권력으로 새롭게 등장한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의 절대주의에 짓눌려 사법권이 거의 무의미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서관히 사건을 계기로 장성택의 영향력 아래 최고의 권위기관으로 부상할 계기를 맞은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서관히 처형 후 두 달도 안 되어, ‘룡성 간첩사건’을 다시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안전성은 사건의 실감을 더하기 위해 ‘그 간첩들이 오늘날까지도 그때의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무기를 숨기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조선중앙 텔레비죤 카메라 앞에서 땅에서 파헤친 무기까지 공개했다.



추적, 사건과 진실 “6. 25전쟁의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세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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