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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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부 리일남의 망명, 세 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나는 남조선으로 가는 것에 동의하면서 황 참사에게 몇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황참사 : 일남 선생, 잘 생각했습니다.



리일남 : 참사 동지, 그런데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꼭 들어주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황참사 : 제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리일남 : 우선 내가 남조선에 도착하면 절대 신분을 밝히지 말아 주십시오. 어디까지나 저는 제네바에서 행방불명된 것으로 처리돼야 합니다.



황참사 :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리일남 : 그리고 남조선 텔레비죤을 보니까 망명한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하던데, 만약 기자 회견을 강요한다면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나한테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황참사 : 일남 선생이 좀 오해하신 것 같은데, 기자회견을 강요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특히 일남 선생같이 신분 공개가 어려운 사람들은 조용히 넘어갑니다. 그러니 그런 문제로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 나는 남조선으로 가면 무조건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황 참사 등은 절대로 나를 공개하거나 기자회견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이제 한숨 놓인다는 눈치였다. 나도 불안하기는 했지만, 텔레비죤과 영화를 통해서 본 남조선도 괜찮은 곳이라는 것에 위안을 느꼈다.



문득 어머니와 이모가 생각났다. 제네바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어머니와 이모를 잊은 적이 없지만, 그때는 더욱 그랬다.



리일남 : 내가 남조선으로 간 것을 알면 어머니와 이모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잘했다고 할까, 미쳤다고 할까? 김정일이 알게 되면 우리집은 끝장일텐데……, 수용소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조금 여유가 생기니 온갖 걱정이 머리를 짓눌렀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짓인가, 후회도 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여기서는 나를 데려가기 위해 좋은 말을 하지만, 막상 서울에 가면 지금처럼 잘 대해줄 것인가? 그러면서도 서울에서 자유스럽게 살면서 미국도 가보는 희망적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해설 : 리일남의 걱정과는 달리 김정일은 리일남의 가족들을 위로하며 평소처럼 대해주었다. 만일 김정일의 가족이 아니였다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14년 뒤 리일남의 존재가 밝혀지고, 리일남이 자신의 생활을 폭로하자 공작원을 보내 살해했다.



황 참사와 일행들은 내가 고민하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걱정할 게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들은 전문가 같았다. 내 신분부터가 궁금할 텐데 넌지시 물어볼 뿐, 강압적이거나 직접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이 사람들의 행동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기야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나를 어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공항 같은 곳에서 가지 않겠다고 반항하거나 소리라도 지르면 만사가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애국지사들을 고문해 죽여버리는 곳으로 배운 남조선 안기부에 대한 인상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제네바를 빠져나온 뒤 남조선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남1 : 일남 선생, 정말 북조선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리일남 : 김정일의 서기가 되기 위한 측근 수업을 받고 있던 사람입니다. 여기 로렉스 시계를 보십시오. ‘김일성 환갑기념’이라고 써 있지 않습니까? 이 시계는 측근수업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남1 : 어떤 사람들이 선발되는 겁니까?



리일남 : 김정일이 젊고 똑똑한 사람을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선발합니다. 그리고 외국에 류학을 보냅니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기야 당시에는 내 신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상황도 아니었다.



서울에 와서도 처음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리유는 간단했다. 이모나 정남이 얘기는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민족 전체로 보면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김정일 때문에 북조선에서 엄청난 호강을 했다. 우리 가족도 호사스럽게 살았다.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에게 루가 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남조선에 와서 자유롭게 사는 국민들을 보면서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조선에 대해 강한 반감도 생겼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가 뭐라 해도 고마운 사람이였다.



나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하게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현재까지도 2천만 북조선 인민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살게 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 삶이란 개념도 없다. 그런 면에서 김정일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을 비난하기 어렵다. 나의 이런 태도는 리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튿날 프랑스 국경을 넘어 벨지끄로 갔고 다음날 서부독일의 프랑크 푸르트로 갔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오래 있지 않았다. 곧 비행기를 갈아탔다. 행선지는 필리핀의 마닐라였다. 일부러 돌아가는 것 같았다. 다시 이튿날 오전, 마닐라 공항으로 갔다. 요란하게 치장한 차들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지프니’라는 대중 교통수단이었다. 그 긴장된 순간에도 참 희한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마닐라 공항에서 새로운 비행기로 갈아탔다. 남조선의 대한항공이었다. 비행기에 오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처조카가 남조선에 가기 위해 ‘원쑤’ 미제의 괴뢰인 남조선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비행기가 서울 상공에 접근했다. 창문 밑으로 보이는 남조선 땅은 공화국과 다를 게 없었다. 내가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새롭게 삶을 시작해야 하는 곳,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긴장됐다.





"지금까지 총 65회에 걸쳐 김정일의 처조카 리일남의 수기를 낭독해 드렸습니다. 리일남이 수기에 쓴 마지막 글을 보내드리면서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라지오 랑독 수기, 김정일 왕족을 고발한다’를 청취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리일남 : 남조선에서는 다소의 수입만 있으면 얼마든지 주인공일 수 있다. 여기서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북조선은 다르다. 김정일, 김정남만이 주인공이고 인민들은 그저 단역일 뿐이다. 지난 번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지금은 망해서 힘들지만 북조선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어요.” 여기서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적당히 여유로운 삶 속에서 나는 작은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무수한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사회,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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