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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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부 화려한 감옥, 김정일의 관저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김정일의 관저 생활은 문자 그대로 왕조시대의 궁궐 생활과 같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 관저 생활은 어느 의미에서는 갇혀있는 생활이다. 화려한 감옥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런 표현은 관저 밖의 인민들의 눈으로 보면 호강에 겨운 얘기가 될 것이다. 자유보다 당장 입에 넣을 것이 급한 사람들에게는 초대소가 천국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설 : 김정일이 성혜림을 만나 장남 김정남을 낳았을 때는 김일성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그 존재를 숨길 수밖에 없었지만 90년대가 되여서도 ‘절대비밀’을 유지했다. 정남이와 함께 자란 리일남과 그의 녀동생 리남옥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키웠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수기를 보면 리일남의 심정이 리해될 것이다.



성혜랑 : 정남이는 다 큰 신사였고 남옥이는 혼기를 지나고 있는 무르익은 처녀였다. 그러나 얘네들은 할 일이 없었다. 갈 곳도 없었다. 그 애들이 합법적으로 김정일 비서에게 욕 안 먹고 갈 수 있는 데는 병원밖에 없었다. 옥류관 국수도 받아서 집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애’들이 답답해서 차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봐야 볼 것도 없고 볼 것이 있어도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20전후의 팔팔한 청년이었지만, 관저 안에서는 청춘의 고민을 해결할 길이 없었다. 밖에 나가야 녀성동무를 사귈 수 있는데,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 없으니 담장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동무가 거의 없었다.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닌 데다, 특히 다른 사람과 돈독한 우정을 쌓을 시기인 중고등학교 시절을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릴 때 친구들과 련결이 안 됐다. 거기다 만경대혁명학원도 중도에 그만둔 데다, 이후 모스끄바 류학으로 그나마 있었던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기게 됐다. 평양에 돌아와서도 관저 생활을 했으니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거의 외톨이라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해설 : 리일남은 어린 시절을 일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보냈고 또 일찍 류학을 갔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사고가 많았다. 때문에 관저 생활이 몹시 답답했을 것이다. 이런 리일남이 관저 근처의 외성구역 장령 아빠트에서 친구를 찾아냈다. 항일빨찌산 출신이자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낸 강상호의 일곱째 아들 강문국이 바로 그다. 강문국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리일남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친구처럼 지냈다.



나는 문국이 집에 자주 놀러갔다. 낮에는 정남이와 같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문국이 집에 가는 시간은 대개 밤이었다. 물론 지도자나 이모에게는 비밀로 하는 외출이었다.



놀러갈 때면 선물을 들고 갔다. 물자가 귀한 평양에서는 무엇인가 들고 가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관저의 ‘호위제품’이면 천국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장군 배급을 받는 문국이 집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고기나 각종 통조림, 의복까지 갖다주니 내가 가면 그 집에서 그렇게 반가워했다. 그것도 몇 상자씩 들고 가니, 나만 가면 그 애 어머니도 대환영이였다. “아이구 오셨어요.” 하면서 로인네가 반말도 못했다.



문국이의 둘째형인 강문룡이 80년 말경 나에게 녀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문국이가 형 문룡이에게 ‘내가 외롭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를 한 모양이다. 하루는 문국이 집에 가니 웬 젊은 녀성 동무가 한 사람 와 있었다.



문룡 : 일남아 어서 오라.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일남 : 근데, 저 녀자는 누구야?



문룡 : 아휴 문국이가 하도 네 이야기를 해서, 내가 너 소개시켜주려고 데리고 왔지. 피바다 가극단 무용수인데 서로 인사해. 둘이 동갑이니까 말도 편하게 하고, 자자, 그러고 있지만 말고, 일남이가 남자니까 먼저 인사하라.



일남 : 저... 안녕하십니까. 리일남이라고 합니다. 동무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춘심 : 저는 춘심이라고 합니다.



문룡 : 어,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라. 성은 대줘야 될 것 아니야.



춘심 : 리춘심입니다.



문룡 : 일남아 그럼, 난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갈 테니까 놀다가 가.



춘심+일남 : 오빠, 형 어디가려구 그래......



춘심 동무를 문국이 집에서 몇 차례 만났다. 그 뒤에는 보통강변이나 대동강가를 거닐거나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남조선처럼 다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애 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내가 춘심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뻔했다. 무언가를 주는 것이었다. 폼도 잡을 겸 춘심이를 대사관촌 평양상점에 데리고 가서 옷도 해 입히고 이것저것 사줬다. 관저에서 화장품도 가져다 주었다.



몇 번 만나다 보니 좀 대담해져서 우리 집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엉큼한 생각도 있었다. 마침 어머니가 모스끄바에 가시고 없을 때라, 기회는 매우 좋았다. 더욱이 춘심이는 집이 지방이라 예술인 려관에서 살고 있었는데, 밤에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집에서 재워야 했다.



당시 우리 집은 관저 옆의 영내에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초소를 거쳐야 했다. 관저 차량들은 차 유리가 짙은 색깔로 돼 있어 안이 안 보이는 데다, 내 차를 세워 안을 쳐다볼 간 큰 근무자도 없었다. 춘심이를 의자 바닥에 엎드리게 해서 초소를 통과했다.



집에 들어가니 춘심이는 규모와 가구들에 일단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거기다 김정일과 찍은 사진 등 김정일왕족들 관련 사진을 보여주니 완전히 얼이 나갔다. 자연스럽게 ‘입맞춤’까지는 했는데, 워낙 완강해 그 다음 행동은 못하고, 이튿날 아침 출근시켰다.



춘심 동무와의 연애는 길게 갈 수 없었다. 소문이 나면 그녀도 어려워지겠지만 나도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의 직장이 피바다가극단인데, 자주 불러내면 거기도 보고체계가 있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보고가 들어갈지 몰랐다. 정치보위부가 그물처럼 얽혀 있는데,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춘심 동무는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녀자가 우니 그것도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만나지 말자는 얘기는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나쁘고, 나도 곧 외국으로 출장을 가야하니 기다려야 한다고 달랬다. 그리고 나는 그 후 춘심 동무 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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