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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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부 후기를 대신하여, 다섯 번째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30 18:17


1997년 2월, 황장엽 전 중앙당 국제비서가 김덕홍 전 려광무역사장과 함께 북경 주재 남조선 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황장엽 비서의 망명은 김일성 사망에 필적할 정도로 총련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주체사상의 실질적 창시자로서 북조선 체제를 대표하는 황장엽 비서의 탈출은 총련 조직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북조선 국적을 남조선 국적으로 바꾸는 재일동포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물론 이 전에도 그 수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황비서의 망명이 있었던 그 해는 전년도에 비해 20%나 증가했다고 한다.



한 씨에 대해 총련의 황장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나도 가족 모두를 희생해 남조선으로 망명한 황비서의 용단이 한광희씨로 하여금 그런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이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혹시, 황장엽 비서를 만났던 적이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몇 번이나 만났어요.”

“어떤 분이었습니까?”



“조용하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머리가 아주 비상한 분이에요. 일본에 류학한 적도 있어서 일본말도 잘했어요. 로동당 고위간부 가운데 ‘이런 체제로는 북조선 꼭 망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한 사람은 오직 황비서 뿐이었어요.”



한 씨는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가 망명을 할지도 모른다고 은밀히 말해준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한 씨는 자신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한광희씨는 총련의 부정부패에 대해 언론에 폭로했는데요. 혹시 황비서의 망명 때문이었습니까?”



한 씨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으셨을 것이 아닙니까?”



이번에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 했다.



“그 무렵의 심경변화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말로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우시다면, 짤막하게 글로 써주셔도…….”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한 씨는 회견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싶은 듯 했다. 다만, 회견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기 자신이 노벨상 타고 싶어서 그 분의 목숨 건 행동을 외면한 남조선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요.”



허종만과 대판 싸우고 난 뒤에도 한 씨는 비교적 오랫동안 총련중앙재정국 부국장 직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책임부의장과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는 것은 북조선 당국의 신임이 그 만큼 두터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1997년까지였다. 그 해 9월 한 씨는 총련 지바 현 본부 부위원장으로 이동되었다. 사실상의 좌천이었다. ‘허종만을 권총으로 죽이고야 말겠다’는 그의 욕설이 책임부의장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바 현 본부로 좌천되어 가게 되었을 때, 한 씨는 그렇게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후 1998년 8월 그는 또다시 지바 현 상공회부회장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1999년에는 총련 조직에서 완전히 나오게 되었다.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총련 도치기현본부 시모츠카 분회에 배속돼서부터 총련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온 한광희. 열 손가락 안에 들만큼 커다란 공로를 쌓아온 한 총련일꾼의 말로는 고작 그런 것이었다.



한 씨가 처음 텔레비 방송에 출연한 후 나는 내가 아는 한 재일조선인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한 씨의 용기에 고무되어 앞으로 제2, 제3의 한광희씨가 나오지 않을까요?”



“아니, 나오지 않을겁니다. 제2의 한광희는 절대로 안 나와요. 그 조직은 종교단체와 같으니까요. 그 곳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머리가 철저히 세뇌됐기 때문에 조직에 반역을 한다고 하면 그 즉시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말거예요. 한광희씨와 같은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오기가 힘들죠.”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설사 용기가 있다 해도 총련이라는 조직의 실태를 한광희씨만큼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젠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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