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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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부 후기를 대신하여, 네 번째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24 18:21


1994년 7월 8일, 재일조선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인민의 어버이”이며 “위대한 수령”인 북조선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것이다.



한 씨에게 당시 심정을 물어본 적이 있다. 총련과 북조선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있던 그였지만 “조국”과 “수령”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성적으로는 김일성에 대한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났지만 감정은 이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우에노역 지하 레스토랑에서였다. 회견 도중 내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김일성이 죽은 것은 어디서 들었습니까?”



“중앙.. 본부에서·····.”



말하려던 한 씨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더니 금시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뜻밖이었다. 한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 것일까?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주제넘은 것이었다. 이윽고 그가 쑥스러워하면서 침묵을 깼다.



“청년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운 조선말이 김일성장군이었으니까요……. 그 날 정오 무렵 총련중앙본부 관내 방송에서 김일성 서거 뉴스를 처음으로 접했어요.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온 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 했어요.”



“김일성을 직접 만나본적이 있습니까?”



“있지요. 대 여섯 번 정도 만났어요. 한 번인가는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때였죠, 아마.”



평양 중앙당 본부 안에는 “목란관”이라고 하는 호화 연회장이 있다. 김부자 생일이나 당 창건 기념일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으로 당 고위간부들이 모여 축하연회를 하곤 한다. 한 씨가 그곳에 대해 상세히 말해주었다.



“넓이는 일본의 큰 호텔 연회장과 비슷해요. 앞쪽에 무대가 있는데 그 곳에서 국내최고 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지지요. 무대 바로 아래에는 15명 정도가 앉는 큰 원탁이 있어요. 여기 앉는 사람이 그 날의 주빈이지요. 중앙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앉고, 그 다음 군 고위 간부인 오진우, 조명록, 정부간부인 김영남, 이렇게 앉지요.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선생도 가끔 그 자리에 있었어요. 재일동포로서는 한덕수와 허종만이 그 곳에 앉았고, 그 뒤로 당 간부와 재일상공인대표단, 청년동맹대표단이 앉는 원탁이 10개 정도 있었어요. 나 같은 사람들은 제일 뒤쪽에 앉았구요.”



“처음으로 김일성을 본 것은 언제입니까?”



“아마 8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예요.”



“보는 순간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감동했지요. 그야말로 참 영웅이라 생각했어요. 그 무렵엔 나도 확고한 김일성주의자였으니까, 김일성은 온 몸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어요. 아! 위대한 인간이란 바로 이런 분을 말하는 거구나, 했지요.”



한 씨는 감회에 젖은 듯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당시 한 씨를 잘 아는 총련 관계자들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아니, 있기는 했지만 한 씨에 대해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소위 “민족반역자”와 엮이게 되면 불리익을 당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약 한 달 후 한사람이 겨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마 96년, 97년 무렵이었을 거예요. 한광희씨와 우연히 식당에서 만났는데, 그 때 식사를 하면서 자꾸만 흘리더라고요. 아, 왜 그러냐고, 했지요. 뇌경색후유증이라고 하더군요.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했어요. 처음 쓰러진 것은 중앙본부 숙직실에서였는데, 밤에 혼자 텔레비를 보다가 갑자기 어질어질 해지더래요.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하더군요.”



당시 한광희씨는 언동도 매우 란폭했던 것 같다.



“그 무렵 그는 중앙본부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었어요. 재정국은 물론, 중앙본부 다른 국 사람들 누구도 그와 상대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입만 열면 ‘허종만새끼, 권총으로 쏴죽이겠다고 험한 말을 했으니까요. 모두 두려워서 가까이 안했어요. 내가 말해줬죠. ‘당신, 마음 충분히 리해한다, 화가 날만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고 해도 죽였으면 좋겠다고 까지 말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 정 싸우고 싶으면 리론으로 투쟁하라. 그런 말만 자꾸 하니까 당신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지 않느냐?’ 뭐, 그런 얘기를 좀 해주었습니다.”



그에게서 들은 것은 이것뿐이다. 더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누구도 한 씨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던 터라, 그 나마 한 씨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증언이었다. 그 정도로 한 씨는 총련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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