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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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부 후기를 대신하여, 첫 번째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16 18:08


여기까지 말한 후 한광희씨는 세 번째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두 번째 뇌경색이 일어났을 때 의사가 다음에는 목숨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지만 다행히도 큰일은 없었다.



한 씨가 처음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은 1992년, 1993년 무렵이었다. 그 때는 책임부의장 허종만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조직의 미래에 절망을 느끼고 실의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내가 물었다.



하타루: “당시 심적 부담이 무척 컸었나 봐요?”

한광희: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습관 때문입니다.” 한 씨는 그냥 시치미를 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쭉 수기를 읽어봤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하타루: “심려가 크셨죠?”



몇 번이나 또 물어보았지만 그때마다 한광희씨는 웃으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는 사이에 또 그가 쓰러지면서 련락이 두절되었다.



원래는 병문안 가는 것이 도리고, 그러고도 싶었지만 누가 만류하였다. 자칫 폐가 될 수 있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광희씨에게 병문안 가는 분들은 대체로 총련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병문안 간 것이 총련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후에 무슨 말썽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 한광희씨는 총련으로부터 “민족반역자”로 배척받고 있었고, 나 역시 “악명 높은 저널리스트”, “악질언론인”으로 비난받고 있었다. 때문에 두 사람이 또 무슨 일을 꾸미려 한다는 말이 나기라도 하면 일만 더 복잡해질 것이다. 당분간은 면회를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 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광희씨의 책을 완성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한광희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늦가을, 한광희씨가 총련조직을 완전히 떠난 해였다. 그 때부터 한 씨와 몇 번이나 만나봤기 때문에 이 후의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다.



그 전년도에 북조선이 대포동미싸일을 발사해 온 일본 땅이 들끓었다. 그 직후 나는 총련의 간부그룹과 알게 되었고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책 한권을 쓰기 시작했다. 책은 약 반년 후에 완성되었다. 제목은 “북조선 송금의혹”, 내용은 북조선당국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총련조직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총련간부들의 일종의 반란에 관한 것이다.



내가 만난 총련간부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이 상태에서 총련은 더 이상 안 된다.” “북조선당국에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다가 결국 버림받고 말 것이다.” “재일조선인의 민족단체였던 총련이 언제부터 북조선의 돈줄이나 되고 말았는가?” “본래의 모습으로 총련을 다시 재건하고 싶다”........



이것은 조직의 부패에 극심한 분노를 느끼고 절망의 늪을 헤매고 있던 한 씨의 심경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한광희씨뿐만 아니라 많은 재일조선인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었다.



“총련의 재정기반을 받쳐주는 것은 조은이다. 때문에 그것을 분리해버리면 총련은 붕괴되고 만다.”,”현재 어느 조은이든 파산직전에 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그를 위해서는 조은으로부터 북조선으로 흘러들어간 거액의 송금의혹실태를 까밝혀야 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송금의혹에 관해서는 증거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책을 읽고 한광희씨는 답답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를 잘 알고 있다”며 어느날 사람을 시켜 연락을 해온 것이다.



한 씨를 소개해준 것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H씨라는 재일조선인이었다. 당시 한광희씨는 총련조직에서 완전히 나와 가족과도 별거하고 있었다. 지인들과의 련락도 거의 끊은 상태였다. H씨는 그런 한광희씨와 교제를 유지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재일동포들 중 한명이었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총련중앙재정국 부국장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니까 연락을 해보세요!”



그 무렵 나는 “선데이 프로젝트”라는 일본텔레비젼방송프로에 참여해 다시 한 번 북조선“송금의혹”에 관해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에 착수하자마자 텔레비전방송취재가 지면취재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는 걸 통감하게 되였다. 취재상대가 신분노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총련을 재건하고 싶다”고 말한 간부들에게 텔레비죤 카메라 앞에 서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며 죄다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화면을 모자이크로 처리하고 음성도 변환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설득을 해도 나서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만큼 그 일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다른 새로운 증언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처음으로 한광희씨를 만나게 되었다. 장소는 닛포리 역 앞의 뉴-도-교-라는 다방, 눈앞의 한 씨는 비교적 큰 체격에 피부가 하얗고 눈이 작은 사람이었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에 목소리 톤이 낮았고 차근차근 말을 했 다. 실례이긴 하지만 처음 전화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병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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