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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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부 후기를 대신하여, 세 번째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23 19:26


한광희씨가 폭로한 내용이 텔레비죤에서 방송된 직후부터 그에게 미행이 따라붙었다. 지하철 역 홈에서 누군가에 의해 선로 아래로 떨어질 번한 적도 있었다.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어요. 그날 친구와 둘이서 우에노에서 식사와 함께 가볍게 맥주를 한잔 했지요. 그리구선 JR 야마테선 오카치마치 역에서 우에노 행 전차를 타려고 혼잡한 홈에 서있었을 때였어요. 막 전차가 들어오고 있는데, 동시에 뒤에서 갑자기 3명의 남자들이 내 등을 떠밀더군요. 순간 있는 힘껏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어요.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들이 산산이 도망가고 있었어요. 이놈들! 하며 뒤쫓아 가봤지만 따라 잡을 수는 없었어요."



당시 한광희씨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말만이 아니라 걸음걸이도 상당히 불편하였다. 당연히 그 자들은 총련에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한 씨를 해치려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때는 아직 조은에 대한 공적자금투입이 계류 중에 있었다. 만약 한 씨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그 즉시 대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조직의 존망이 걸린 그런 중대한 시기에 총련이 섣불리 경고망동 할리는 없을 것이고 다만 "이제 또 한 번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 "는 식의 경고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 씨의 목숨을 건 폭탄증언으로 13개의 조은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자금 투입은 일단 보류되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파산된 조은신용조합에 대해서는 금융처리관재인이 파견돼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때가 2000년 12월이었다.



그 후에도 자주 만나보는 과정에 나는 한 씨가 알고 있는 것이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총련이 진행해온 갖가지 비밀활동이나 북조선 사정에 대해 그는 놀랄 만큼 환히 꿰뚫고 있었다. 북조선 정세에 대한 한 씨의 예측, 례를 들면 미싸일 문제라든가, 북조선 괴선박문제, 조일교섭에 관한 문제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한 씨야말로 조일관계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중요한 력사의 증인이라고 굳게 확신하였다.



"한광희씨, 책을 내면 어떨까요? 당신이 얘기한 것을 내가 정리하겠습니다."



바로 이렇게 돼서 이 책이 써지게 되었다. 책을 쓰기 위한 인터뷰는 우에노 근처 다방에서 진행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빈번히 장소를 옮겨야 했다. 우리의 만남을 언제 눈치 챘는지 누군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한 씨는 알고 있었다. 한번은 그가 다방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오실 때 누군가 뒤를 밟지 않던가요? 저-기, 저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 좀 보세요."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가 장소를 바꾸면 어느새 알아버리고 또 따라붙곤 하였다. 아마 한 씨의 자택 전화가 도청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식으로 매일 뒤를 밟히면서 약 1년 동안에 걸쳐 겨우 이 책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그 사이 조은신용조합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었다. 2001년 2월에 들어서 조은동경, 조은 긴키 등에서 련이어 부정이 발각되었다. 신용조합 리사장들도 줄줄이 체포되었다. 같은 달 28일, "총련의 금고지기"라 불리는 강영관 재정국장도 업무상 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강영관은 조은동경 리사장과 공모하여 위장계좌를 통해 조은에서 총련으로 약 8억 엔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돌려왔다. 다음날 29일에는 일본경시청이 총련중앙본부에 대해 강제수사를 실시하였다. 그것은 일본수사력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아사히 텔레비죤방송 "선데이 프로젝트"가 다시 긴급특집을 준비하였다.



"조은파산의 진상-총련 최고 간부의 의혹!“



방송국에서 나에게 부탁이 들어왔다. 한 씨가 또 한 번 텔레비죤에 출연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것도 이번에는 얼굴과 목소리를 모두 그대로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결국 한 씨가 다시 또 텔레비죤 카메라 앞에 나섰다.



"강영관의 명령으로 조은 동경이 총련으로 자금을 빼돌렸다? 물론 그가 혼자서 그것을 결정했을 리가 없지요. 모두 책임부의장인 허종만이 지시한 겁니다."



그 때에는 책임부의장의 체포도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허종만이 미국으로 달아나려고 대사관으로 비자를 신청하러 갔다"는 망명 설까지 흘러나왔다.



이상이 내가 직접 알게 된 범위 내에서의 한광희씨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이다. 아직 그와 책임부의장과의 대립이 첨예화되던 때부터 내가 그를 만나기까지의 기간이 남아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신보의 기사를 참고로 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내가 한 씨로부터 단편적으로 들었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들을 종합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총련을 크게 뒤흔든 사건이라고 한다면 우선 1994년 4월 15일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북조선류학을 갔다 온 간사이대학 조교수 리영화씨가 결성한 "구하자! 북조선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라는 반북조선 시민단체의 집회를 총련이 집단폭력으로 방해한 사건이다. 총련은 건장한 청년들을 앞세워 그 집회를 습격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경찰의 개입을 허용해 총련의 오사카본부와 교토본부에 강제수사를 부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다수의 부상자를 낸 그 사건을 계기로 총련에 크게 실망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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