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김정은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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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김정은의 어린 시절

집중분석, 김정은은 누구인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5-31 18:25


김정일은 쏘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빨찌산 출신 자녀들과 어울리며 자랐다. 또한 남산소학교, 남산고급중학교, 김일성종합대학까지 조선의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밟아 나갔다. 그때만 해도 수령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였기 때문에 김정일도 간부들의 자식들과 섞여서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나중에 김정일은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진행하면서 어린 시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심하는데, 이 과정에 동창생들을 많이 숙청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태여난 1980년대는 오랜 우상화 선전으로 김일성, 김정일은 절세의 위인이 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을 학교에 보낼 경우 수령의 자식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김정일이 심혈을 기울였던 우상화 사업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또한 김정은을 학교에 보낼 경우 수령의 가족들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일은 자식들 전부를 조선에 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일은 측근들에게조차 한동안 김정은을 공개하지 않았다. 1989년부터 13년간 김정일의 전속료리사로 일했던 일본 사람 후지모도 겐지의 증언이다.



“처음이었습니다. 장군의 아들 두 사람은 간부들도 그때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장군이 지금부터 내 아들들을 소개하겠다면서 연회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간부들이 모두 장군님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들들을 본 간부들은 전부 놀랐습니다. 당구대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형인 김정철, 동생인 김정은 그리고 그들 뒤에 부인 고영희가 서 있었습니다. 아홉 살, 일곱 살의 아들들이 군복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모자를 딱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군님이 앞에 앞을 때 두 사람이 동시에 경례를 딱 붙였습니다.”



김정은은 봉건시대 때 궁궐에서만 자란 왕자처럼 평양에 있는 김정일의 관저와 전국 명승지에 있는 호화 초대소에서 주로 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조선 인민들의 실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고난의 행군도 김정은에게는 먼 나라의 일이었다. 당시 김정은이 어리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 외국으로 류학을 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1991년부터 9년간 스위스 베른에 있는 공립학교와 국제학교에서 공부했다. 2012년 4월23일 MBC보도이다.



“스위스 일간지 르마텡 디망셰는 스위스 연방경찰 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김정은이 7살 때인 지난 1991년 11월 북한 외무성 관리 '박남철'의 아들 2명 가운데 1명인 박훈 신분으로 스위스에 입국해 9년간 머문 뒤 2001년 초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정은이 외국에서 류학생활을 하고 있던 그 시기, 조선에서는 김정일의 독재와 무능으로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하지만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가 인민들로부터 수탈한 돈으로 스위스의 고급주택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정은의 학교친구들은 김정은이 개인 료리사와 운전사, 개인교사를 두고 있었고, 또래 아이들이 가지기 어려웠던 록화촬영기와 일본제 오락기구 같은 전자제품이 가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정은의 류학시절 친구 슈토이엔의 증언이다.



성우: “정은이는 고급 물건들을 좋아했어요. 당시 스위스에서 구할 수조차 없었던 음향기기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별장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게 자기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들을 보여주면서 인정받고 싶어 했어요.”



그렇다면 스위스 류학시절 김정은은 어떤 학생이였을까? 스위스 신문 ‘르 마탱’이 2012년 4월1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은 결석도 많이 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김정은은 베른 국제학교에 류학하던 첫해에 75일, 이듬해에는 105일을 결석했다. 성적도 엉망이었다. 자연과학은 낙제했고 수학과 문학, 사회와 도이췰란드어 과목은 낙제를 겨우 면하는 정도였다. 북조선 당국은 김정은이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천재로 선전하고 있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김정은은 영어도 처음에는 상급반에 들어갔으나 이후 한 단계 낮은 반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도 합격점수를 겨우 넘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던 김정은은 당초 다니던 학교에서 전학을 가기도 했다. 이 같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어린 시절 김정은은 그다지 뛰어난 학생은 아니였다. 류학시절 김정은의 딱친구였던 뽀루뚜갈 외교관의 아들 조엘 미카엘로도 김정은이 공부보다는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증언한다.



"보통 10대처럼 운동 좋아하고 가끔 여자에 대해서 얘기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젊고 또 해외 류학을 했기 때문에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며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물들 것을 우려한 김정일 때문에 김정은은 류학생활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못했다. 김정은의 스위스 집에는 왕재산경음악단 녀성 단원들이 거주하면서 평양 관저와 똑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김정은은 주로 이들과 접촉하며 생활했다. 김정은은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출도 거의 하지 못했다. 만약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면 김정일의 심복인 당시 리철 스위스 주재 북조선 대사가 항상 따라다녔다. 김정은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류학을 했지만 생각은 개방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방자하게 자라났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의 전속 료리사였던 후지모도 겐지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농구를 좋아했던 김정은은 종종 농구선수들을 관저로 불러 형 김정철과 편을 나눠 농구를 하곤 했는데, 경기가 끝나면 자기 편 선수들에게 반말로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성우: “농구 시합이 끝나면 형 정철이 하는 말은 딱 세 마디 ‘고생했어’ ‘수고했어’ ‘해산’ 그것뿐이에요. 반면 정은이 쪽은 선수들의 잘못을 지적해요. 모두 스물 두세살.... 나이가 많은 선수들에게 ‘그렇게 하니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야, 알겠냐!’ 하면서 무지하게 큰 소리를 내요.”



어릴 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인민들 우에 군림하며 살았던 김정은. 그런 김정은이 조선 인민들의 처지를 얼마나 리해하고 있으며, 인민들의 리해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치렬한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음악: 엔딩 시그널



나레이션: “집중분석, 김정은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해설의 리유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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