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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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서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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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면서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고 음식물 수거함을 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공동으로 설치된 음식물 쓰레기통이다. 회색 사각 형의 커다란 통에는 이미 각종 음식물 쓰레기들이 가득 차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아직 먹을 만한 것들이 꽤 되었다.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네모 둥글한 우유식빵이며 고기갈비, 두부, 햄, 소시지 같은 것이었다. 감자껍질 같은 것도 있었고 상추나, 콩나물 같은 채소류들도 보였다.
“허참, 이 아까운 걸.”
욕인지, 뭔지 모를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져나갔다. 동시에 가슴 한켠이 알찌근해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떠나온 조선, 나서 자란 고향땅이 생각나서였다. 동이며 고철, 개구리 기름과 바꾼 중국제 밀가루로 지짐이나 증기빵을 해먹던 형제와 이웃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국가배급은 죄다 끊기고 중국제 밀가루가 아니었으면 모두 굶어죽었을 그 시기 밀가루 빵은 애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기전에 모두의 명줄을 지탱해주는 고마운 식량이었다. 겨울철 뜨뜻한 아랫목에 발효시켜놓았다가 소다를 넣고 가마에 찐 다음 김이 문문 나는 채로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먹던 구수한 빵이 아니었던가,
그 빵보다 훨씬 더 잘생기고 맛있는 녀석이 아깝게도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박혀있었다. 그 옆에는 아직 살점이 좀 남아있는 기다란 고기갈비가 하얀 두부 한쪽을 볼품없이 짓이겨놓았다.
“아까워라! 이걸 고향마을로 실어갈 수 있다면 그 나마 나을 텐데,”
다시 한 번 탄식이 흘러나왔다. 먹을 것이 부족하니 조선에서는 음식물쓰레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집에서 키우는 개들한테도 먹일 게 없는 것이다. 개 주인들은 여러 집들을 다니며 쌀뜨물이나 멀건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다 끓여 먹이지만 변변치 않으니 개들은 배가 훌쭉해서 여기저기 어슬렁거린다. 그 개들한테 한국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로 먹이면 꼬리를 흔들면서 좋아 할 텐데,
한국에서도 음식물쓰레기로 동물사료를 만들지만 그래도 많이 남아나 죄다 버린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고향으로 실어가 가정 집 개들에게 사료로 먹이고 그렇게 살찐 개고기로 사람의 영양을 보충하면 그저 그만이 아닌가, 고향에서 단고기라 부르는 개고기는 체력보강에 일등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암튼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자주 드는 생각이다.
조선에서 일제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를 보면 거지들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이 적지 않다. 왜정 때에는 그래도 쓰레기통을 뒤지면 뭔가 먹을 것이 나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고향 조선에는 뒤질 쓰레기조차 없으니 그런 모습도 안 보인다. 왜정 때보다 더 가난하고 한심한 것이다. 고향 장마당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몰매를 맞던 한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땅바닥에 쓰러져 사정없이 발길에 채이면서도 도로 빼앗길까봐 미친 듯이 먹어대던 불쌍한 그 아이, 살아있기는 한지, 정말이지 내 고향 조선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면서 자주 고향땅을 떠올리게 되는 나, 이제는 그것이 습관처럼 돼버렸다. 아니, 그것은 습관이 기전에 가난하고 불쌍한 내 고향의 현실이다. 내 고향 조선이 한국처럼 잘 살게 될 때 나의 그 습관도 비로소 없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