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민교육, 언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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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언론의 역사 2

북한 시민교육, 언론이란 무엇인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4-07-18 17:45



북한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상신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언론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드리기 위해서 마련한 언론 특강 4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과 같이 언론의 역사에 대해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근대 시대 이전에 의사소통의 수단이 어떻게 발달했고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등장한 신문이 초기에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초기 형태의 신문이 근대 신문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7세기 초 유럽의 상당수 지역에는 우편로와 인쇄소, 지역 유통망 같은 기본적인 네트웍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17세기에 종교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른 지역 소속에 대한 수요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1620년 최초의 영문 코란토가 네덜란드로부터 북해로 건너 배달되었을 당시, 코란토는 이런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보헤미아 접경 지역의 소식이라고 하면서 누렘베르크에서 전해온 서한들에 의하면 프라하 근방에서 왕과 바이어렌 공작이 이끄는 군대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 양측 모두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바이어렌 공작에게 포로로 잡힌 프라하 사람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와같은 내용은 유럽의 광대한 지역 간에 날마다 소식이 교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렇든 17세기 유럽전역에서는 세상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소식지 형태의 신문들이 상당수 발행되고 있었습니다.

비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소식지가 정기적인 출판으로 전환된 것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불과 몇 년 동안에 매우 급속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로 인쇄업자들이나 서적판매상들이 발행의 주역이었습니다.

초창기 신문들은 다른 유사한 신문으로부터 그 내용을 발췌하는 경향이 있어서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도시의 인쇄업자들은 보급되는 신문이 많을수록 더욱 쉽게 신문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문 발행의 물결이 계속되어 오다가 1650년 라이프치히에서는 서적상인 티모토스 리치가 세계 최초의 일간 신문인 <아인코멘데 차이퉁>을 발행했습니다. 라이프치거 차이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초의 신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게 많습니다. 신문의 개념과 요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기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로마시대에 최초의 신문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기원전 5세기 로마공화국 시대에 <악타 푸블리카>라는 관보적 성격의 필사신문이 최초의 신문이라는 겁니다. 동양에서도 중국의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부터 중앙과 지방의 군신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저보>라는 신문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보의 성격을 띤 필사 신문 <조보>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신문은 1883년 10월 31일에 창간한 한성순보가 최초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의 악타 푸브리카나 중국의 저보, 조선의 조보는 모두 관보였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오늘날 신문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흔히 역사가들은 1605년 벨기에의 안트워프에서 발행된 신문을 세계 최초의 신문이라고합니다. 영국 최초의 신문은 1622년 나다니엘 버터에 의해 발행된 <위클리 뉴스>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날 신문의 요건을 갖춘 다시 말해서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빠르고 광범위한 소식을 담고 있는 신문의 모습을 갖춘 최초의 일간 신문은 라이프치거 차이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럽 지역과 새로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신문이 등장했던 17세기와 18세기에 그러한 정기간행물은 대체로 4가지 기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종교적 교리의 전파 기능이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문자를 이용한 의사소통에 정통해 있던 교회 성직자들은 대중이 좋아하는 새로운 간행물이 교리의 전파를 위해 유용하다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두 번째는 상업적인 기능입니다. 무역과 상업 활동을 하던 성직자들이나 권력자들은 신문이라는 간행물이 시장 정보를 보다 빨리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정치적 설득의 기능입니다. 수구 정치세력들은 물론이고 이에 도전하려는 세력들도 정치적 설득의 수단으로서 인쇄물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네 번째는 대중 교욱의 기능입니다. 신문은 점차 사람들은 고양시키는 잠재적 수단으로 인식되어 갔습니다. 성직자가 이익 집단, 그리고 정치 세력들은 모두 신문을 교육용으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궈력층이 지배 수단으로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처음으로 중요시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의 정기간행물들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신문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신문이라고 할 말한 최초의 간행물은 19세기의 3분이 1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 뉴욕에서 비로소 등장하게 됩니다. 영어로 신문을 뉴스페이퍼라고 하는데요. 이 뉴스페이라라는 말의 기원은 저널의 어원인 듀르나(diurna)입니다. 저널리스트라는 단어는 17세기 영국에서 집필자(writer) 또는 보도자(mercurist)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등장했습니다. 그리스 신들의 사자 messenger라는 말은 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띤 도구적 존재, 즉 자기 주인을 위해 일하는 대행자로서 곧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저널리스트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오늘날의 의미로 본다면 대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여론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바로 언론인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우리의 언론인들, 저널리스트들이 대중의 뜻과 의견을, 다시 말해서 여론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 되집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들이 살고 계신 북한 땅에 여러분들의 생각과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저널리스트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근대 시대 신문이 어떻게 태동했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정리하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모아서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는 소식지가 교육과 계몽 등의 목적으로 발행되다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만나면서 비판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근대 신문이 18세기 민주주의 혁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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