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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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광주, 북한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5-23 16:36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에게 5.18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95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책과 노래, 영상 등을 통해 5.18의 실상을 처음 접했습니다. 15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분노가 일었습니다. 더구나 책임자들이 그때까지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른 친구들과 함께 선배들을 따라 ‘5.18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 투쟁활동에 뛰어들게 됩니다.


 


제가 처음 전투경찰을 만나게 된 것도 5.18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름도 비장했는데, 대학 1학년들로만 구성된 새내기 결사단의 일원이 돼 검찰청을 항의방문 갔습니다. 방패와 곤봉을 든 전투경찰이 두려웠지만 나는 정당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온몸을 부딪쳐 싸웠습니다. 싸움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와서 선배들 앞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해 여름 무렵에는 서울 연희동에 살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항의 방문하기 위해 각 지역 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했는데, 여기에 뽑혀서 이른바 상경(上京)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95년 내내 각종 집회에 참석했고, 단식도 했으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기 위해 강의실과 거리를 누비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을까요? 199512월에 마침내 5.18특별법이 제정됐고, 관련 인사들이 법적인 책임을 받게 됐습니다. 가물거리긴 하지만 이 소식을 들었던 곳도 시내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환호하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대학 1학년 시절은 그렇게 5.18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후 5.181997년 국가기념일로 승격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공식적인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희생자들의 아픔은 남아 있었지만 5.1817년 만에 명예회복을 한 것입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에도 5.18은 제가 학생운동 과정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정신적 버팀목이었습니다. 5월만 되면 최소한 그 한달간은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려고 했고,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매년 5월이 되면 다른 동료들과 함께 광주로 가서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마음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힘들어하는 하는 후배와 함께 밤기차를 타고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온 적도 있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묘역을 보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에 일어난 5.18, 나는 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당시의 광주를 가슴속에 품었던 것일까요? 15년이나 지난 일에 분노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이유는 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몰랐고, 10여 년간 아픔이 계속돼 왔다는 것도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몰랐으면 모르돼 알게 된 이상 가만있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당시 운동권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반미, 반정부 투쟁의 소재로 활용한 측면이 있었지만, 적어도 밑바탕에는 약자에 대한 애정, 부당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외면해서든 안 된다는 연대감이 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운동으로 대학시절을 보내고 사회로 나온 저는 서울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에 탈북자들을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광주가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기를 읽으면서 한편으론 믿기 어려웠고, 한편으론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보다 몇 십 배나 폭압적인 김정일 독재에 치가 떨렸습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북한은 1980년 고립됐던 광주처럼 한국에서 고립돼 있었습니다. 그 실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실상을 듣고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이 아무리 독재를 했어도 김정일과 같은 독재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북한의 교화소와 정치범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참상은 한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탈북자를 처음 만난 이후 벌써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고, 수령의 폭압 통치는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제2의 광주가 된 북한, 5.18 33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북한 인민들에게 연대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수령 독재를 끝장내고 자유롭고 민주화된 세상에서 만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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