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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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연최지우, 이분희, 박지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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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 번째 편지-육아

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10-03 18:35

 

언니, 잘지냈어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죠? 가을은 가을인가봐요. 근데 요즘 가을 너무 짧지 않아요? 여름은 길고 가을날씨는 잠깐 맛만 보고는 바로 겨울로 넘어가는 것 같다니까요.
그나저나 올해 겨울은 특히 춥고 길다는데 저는 벌써부터 겨울 오는 게 무서워요. 아침저녁으로 애들 데리고 왔다갔다 할 일도 걱정이고, 감기라도 걸리면 또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니 그것도 걱정이고. 아가씨 땐 겨울이 싫지 않았는데, 애엄마가 된 다음부터는 겨울이 제일 싫어졌다니까요. 내참.

어제는 회사를 조퇴하고 소아과에 갔어요. 작은애가 밤새 기침도 심하고 열도 나고 그랬거든요. 여전히 열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애를 아침에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오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애도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떼쓰고 이런 날은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친정엄마도 멀리 살고...

그래서 그런지 요새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친정엄마한테 애기 맡기고 일하는 친구들이에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가 지쳐서 들어가는데 또 집에서는 애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런 일상이 너무 싫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니까요.
그래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몇시간이라도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그게 제일 부럽더라구요.

북한에서는 아이들을 주로 탁아소에 맡긴다면서요? 몇 살부터 탁아소에 가요?
요즘 엄마들은 너무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면 감기도 자주 걸리고, 엄마하고 친밀감도 떨어져서 정서적으로 안좋다고 하던데... 육아 전문가들도 단체생활을 하려면 3살부터가 적당하다고 그러고...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저는 둘 다 돌이 지나기도 전에 어린이집에 맡겼어요. 어쩌겠어요. 회사에선 더 쉬었다가는 짤릴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쉬면 경력 단절되는 것도 걱정이고, 1년 이상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도 회사에 부담이거든요. 어떤 친구는 눈치보여서 3개월만 쉬고 복직하는 애들도 있어요. 그것보다 내사정이 낫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애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요즘 회사들은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보장해주는 곳이 많거든요, 국가공무원들도 다 보장해주는데, 우리 신랑은 그런 소리하면 펄쩍 뛴다니까요.

사실, 제 동생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6개월이나 쉬면서 애 봤거든요. 동생은 일하고... 그리고 시누이 부부는 둘 다 공무원인데, 시누이 남편도 시누이가 한참 일하랴 애키우랴 고생 많이 하니까 잠깐 육아휴직 내서 번갈아가며 애를 키우더라구요.

남자들 육아휴직이 흔한 건 아니지만 그런 일들을 옆에서 보니까 왜 나만 이렇게 애키우는데 허덕여야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어요. 육아도 직장일도 다 잘하고 싶은...내 욕심이겠죠?

‘일 때려치우고 애나 키울까? 아니지, 그래도 같이 버는 게 낫지... 하면서 하루에도 열 두번씩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니까요. 언니가 보기엔 엄살이죠? 하하.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하루를 보내네요. 언니 쌀쌀해졌는데 감기조심하구요, 답장 기다릴께요.

지우가


지우에게
지우야. 잘 지내고 있지? 선기 나기 시작하네...
어제 밤은 내가 감기 걸렸는지 이불을 썻는데도 추워서 혼났어. 북한에 있을 때 감기 같은 건 그냥 면역으로 넘기던 습관으로 내가 약을 잘 안 먹어… 내가 아프니까 우리 딸이 생각난다.

네 편지에 육아휴직이라는 말을 보고는 생각이 깊어졌어. 그것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사회시스템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아… 본능적인 심술인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육아휴직을 바라는 건 북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같은 어머니지만 행복의 기준이 너무 다르네.

북한에도 80년대까지만해도 ‘젖 먹이반’, ‘걸음떼기반’으로 구성된 탁아소가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석탄이 없어 보일라가 돌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어 운영을 하지 못해. 결혼 한 여성들이 자동적으로 사직 당하는게 바로 애기들 때문이야… 내가 아는 떡장사 여인이 있었는데 해산한지 사흘만에 피덩이를 업고 떡을 파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그랬어…

어느 추운 겨울날, 상품구입 때문에 난 애기를 집에 두고 갈수가 없었거든. 몇 겹으로 된 비닐주머니에 애기를 넣고 자전거 앞 바구니에 앉힌 다음 길을 떠났는데 길바닥이 반질반질한 얼음판이 된 거 있지… 조심조심해서 가느라고 했는데도 앗 차~ 자전거가 얼음판에 미끄러지면서 나도넘어졌고 애기도 머리를 찧으면서 바구니에서 떨어졌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애기를 얼른 안고 보니 이마가 찢어져 피가 나오는거 있지. 피를 보는 순간 내 맘의 전율이 일어나더라.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무슨 맘인지 모르게 한참 울었어.
난 급히 둘렀던 목테로 아이를 앞으로 내 몸에 둘둘 매고 한 손으로는 애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날 밤부터 애기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급히 페니실린 한대를 가지고 병원에 갔어. 주사실에 들어갔는데 의사가 들고 있는 큼직한 주사바늘이 무서워 우리 딸이 울기 시작하였지. 페니반응주사를 먼저하고 30분 기다리는데 우리 딸이 태를 치며 우는거야. 의사가 울어대는 우리 딸에게 큰소리로 엄포 놓는 바람에 뚝 그치긴 하였지만 공포로 애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
난 의사에게 좀 작은 바늘로 주사 놓아달라고 사정하였어. 그랬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큰 바늘도 저게 전부이라면서 여린 우리 딸의 엉치에 쿡 하고 박아넣드라. 아프다고 요동치는 딸을 힘껏 잡고 있었지만 주사바늘을 뽑고 나니 약물과 피물이 스르르 흘러내리더라…

주사를 맞고난 후 아픔으로 울어대는 애기를 달래느라고 젖을 물려주었는데도 계속 우는거야. 의사를 욕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어. 의사라고 방법이 없잖아. 그 다음부터 우리 딸이 병원 앞만 지나가면 까무러치게 울어대는거 있지…
난 한국어린이들이 다니는 ‘어린이 집’을 볼 때마다 우리 딸이 생각난다. 운명이라는건 진짜 타고 나는 것 일까?...
지우야. 오늘은 이만할께…
언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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