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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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60

황장엽 회고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지난 이야기: 황장엽은 중병이 든 북조선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강산관광사업을 해야 한다고 김정일에게 제의하고 시안까지 올렸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장엽은 김정일의 측근자를 통해 ‘김정일이 관광사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그는 조선의 경제가 마비상태이긴 하지만, 관광을 허용하는 것은 곧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황장엽은 크게 실망하여 앞으로 더 이상 김정일에게 충고나 의견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평양에 돌아오자 기분 나쁜 일이 하나 터졌다. 국제토론회에서 통역을 맡았던 김모란(1966년생)은 러시아 까잔종합대학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하고 주체과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토론회에 참석한 러시아 학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와 박사원 동창생인 모스크바종합대학의 꼬와료보 교수는 내가 1995년 모스크바에 들렀을 때, 모스크바 국제토론회에 김모란을 데려오지 않으면 조선대표단이 모스크바종합대학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으므로 우리 대표단에게 이익이 되었으면 되었지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나는 김모란을 대표단에 넣었다. 그랬더니 간부부에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러시아 유학생들이 김정일을 반대한 조직에 가담한 혐의가 있어, 1980년 이후 졸업생은 해외출장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런 소문을 듣고는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 유학 중이던 군사계통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반김정일 조직을 결성했는데, 그 가운데는 간부 자녀들도 꽤 있다고 했다.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서는 이 조직에 참가한 사람들을 예외 없이 모두 총살하고 있고, 거기에 일반 대학생들도 상당수 연루되었기 때문에 계속 조사 중이라는 소문이었다.



나는 인민무력부장 최광에게 과학원에도 그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과학원에 있는 사람은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간부담당비서에게 했더니, 도망갈 우려만 없다면 그녀를 데리고 가도 좋다고 했다.



나는 김모란을 만났다.



“군인들의 반김정일 조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관계가 있으면 솔직히 말해 봐. 그럼 대책을 세워줄 테니.”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까잔종합대학에서는 문제된 학생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내가 지도하던 국제문제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책임지고 이번 모스크바 토론회에 통역으로 데려가겠어. 모스크바에 가서는 절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된다. 나와 약속하는 거지?”



“네, 약속드립니다.”



그래서 결국 김모란을 통역원으로 참가시켰던 것이다. 그녀는 통역을 잘했다. 말수가 적고 미학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 장차 훌륭한 여성철학자가 될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런데 평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나 그녀의 남편이 나를 찾아왔다.



“비서동지, 도와주십시오. 아내를 무력부 보위사령부 사람들이 데려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좀 구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시오.”



“일주일 전에 무력부 보위사령부 지도원이라는 사람이 직장으로 찾아왔었습니다. 그 지도원은 아내의 졸업논문 지도교수의 이름을 대면서 이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그 분이 자신의 졸업논문 지도교수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지도원은 그 사실을 쓰고 수표(서명)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 지도원의 요구대로 수표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하는 말이 진술서를 쓰고 서명한 것이 기분 나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틀 후에 보위사령부에서 아내를 체포해간 뒤로 아직껏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알았어요. 내가 자세히 알아볼 테니 가서 기다리시오.”



나는 다음날 잘 아는 계통을 통해 김모란에 대해 알아봤는데 그 혐의내용이라는 것이 참으로 한심했다. 김모란의 졸업논문 지도교수가 외국인 유학생 사업을 책임지고 있어 반드시 러시아 정보당국과 연계가 있을 테고, 따라서 이 교수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김모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게 그녀가 받는 혐의내용이었다.



그걸 알려주는 그들의 말투는 사뭇 협박조였다. 김정일의 명령으로 반김정일 조직과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총살하기로 결정됐으니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김모란은 사랑하는 남편 곁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도 지방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학생들은 김정일의 추악한 행적에 대해 국내에서는 몰랐어도 러시아에 가서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수백만 인민이 왜 굶주리며 죽어가야 했는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히 김정일을 반대하는 조직을 결성했던 모양인데, 결국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무자비한 탄압과 죽음뿐이었다.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아무리 옳은 말일지라도 누구한테나 쉽게 하지 못한다. 나 역시 가슴에만 이런저런 분노와 원통함을 담고 있을 뿐,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겉으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했다.



어쨌든 김정일은 그 토론회에 대해 매우 흡족해하며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황 비서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조국인 러시아에서 주체사상을 가지고 러시아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오.”



그리고 나에게 여러모로 호의를 표시했다.



김정일은 “앞으로 주석제를 폐지하고 인민위원장제를 만들며, 중앙인민위원장직에는 말깨나 하는 실무 일꾼을 배치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래도 무방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수령독재하에서 주석은 사실상 아무런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60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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