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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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65

황장엽 회고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지난 이야기: 황장엽의 마음은 북조선 통치자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김정일을 계속 추종하는 것은 역사와 민족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죄라고 생각한 황장엽은 그들을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립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했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도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공연하게 반김정일 기치를 내거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 방법은 용감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결국 개죽음을 당하는 무모한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최선의 길일까. 황장엽의 고민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 무렵의 재단사업(외화벌이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거액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확고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중앙당 부서로서 직접 외화벌이를 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체사상 대외선전을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하다 보니 국가보위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한번은 덕천탄광에서 화물차들이 타이어가 없어 운행을 못하고 있다고 해서 5만 불이 넘는 돈을 들여 타이어 200짝을 사다 주었다. 그리고 곤란을 겪고 있는 중앙당 일꾼들과 국가보위부 일꾼들의 생활을 적극 도와 주었다. 그러다 보니 당과 국가의 중요기관들이 우리와 긴밀한 연계를 맺으려고 경쟁적으로 달라붙었다. 나는 당의 지도사상을 담당한 비서로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비서로서 대외활동에 유리한 위치에 있고, 또 재단사업을 통해 귀중한 외화까지 적지 않게 벌게 되면서 내쪽의 영향력은 간단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나로서는 그토록 유리한 지위는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김정일을 반대하여 싸울 의향을 내비치면, 나의 모든 벗들은 김정일에게 계속 머리를 숙이면서 나의 유리한 지위를 활용하여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가면서 때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충고했다.



제3의 길로는 조금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양심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내 가족과 내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이 세 가지 길은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유리한지를 확정짓기 어려웠다. 내 성격으로는 제3의 길, 즉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김덕홍을 만나 정세를 설명해주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독약을 구해오도록 했다. 얼마 후 김덕홍은 독약을 구해다주며 죽는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형님은 주체철학을 창시하여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김일성 부자의 이름으로 된 많은 글을 써준 비밀의 체현자인데다 국제비서라는 가장 중요한 요직을 오랫동안 유지한 핵심 간부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만일 형님이 자살을 할 경우에 가족들이 정말 무사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공연히 반역자라는 누명이나 쓰기 쉽습니다. 앞으로 남한을 주체로 하여 우리 민족이 통일될 것은 틀림없는데, 이제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는 오히려 남쪽과 손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나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김덕홍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더 굳어지는 것 같았다. 이왕 목숨을 버릴 바에는 남쪽 사람들과 연계를 맺고 싸우다가 죽는 것이 북한동포들을 구원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김덕홍은 남쪽과 연계를 갖는 문제는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다.



남으로 간다는 결심은 섰으나 고민은 계속되었다. 평생의 발자취와 가족을 남겨둔 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괴로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내가 남으로 가버리면 그동안 영예와 행복을 누리며 살던 내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반역자 가족으로 몰리게 될 뿐만 아니라 별로 도움도 주지 못한 친척들에까지 막대한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주게 될 게 뻔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양심이 자꾸 나를 남쪽으로 떠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1996년 8월 말, 나는 「조선문제」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남북관계에 관한 내 입장을 밝히고, 그에 근거해서 김덕홍이 우리의 망명을 남측과 교섭하도록 하기 위해 쓴 것이다. 글의 핵심은 전쟁을 막고 김정일 체제를 최단기간 내에 붕괴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을 밝히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제대로 투쟁하기만 한다면 5년 이내에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고 조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결정적 우월성은 경제적 우월성과 국제적 연대의 우월성이다. 그런 만큼 남한은 미국과 긴밀한 협조하에 북한의 남침도발 책동을 저지 무마시키는 한편, 경제가 파괴되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방법을 통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개인독재를 버리려고 하지 않는 만큼 개혁 개방으로 나설 수 없으며, 따라서 개인독재를 유지한다는 조건하에 부분적으로 경제개혁을 실시하는 것은 오히려 김정일 정권의 명맥을 연장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체제를 하루빨리 붕괴시키는 데 대북전략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에 식량과 의약품 등을 적극 원조하여 북한주민들의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한편, 북한의 경제적 자립성이 강화되도록 해서는 안 되며, 특히 빈사상태에 있는 군수공업이 끝내 파탄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어쨌든 남한의 실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또 당국의 눈을 피해가면서 서둘러 쓴 글인 만큼 표현상의 한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글에서 밝힌 우리의 통일전략의 기본사상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65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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