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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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51

황장엽 회고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지난 이야기: 김일성의 80회 생일이 든 1992년 4월,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 주체사상 국제토론회가 도쿄에서 열렸습니다. 북조선의 학자들은 평양에서 나고야까지 전세기를 타고 토론회에 대거 참가했고, 토론회가 끝나자 외국학자들을 초청하여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외국학자들을 초청한 리유는 오로지 인민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민들에게 닥쳐오던 고난의 행군을 막는 것보다, 자기 위신을 높이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토론회 성과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총련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는지, 김정일은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는 도쿄 토론회에 참가했던 대표단을 목란관(김정일 전용의 연회장)에 불러 성대한 연회를 베풀기까지 했다. 대표단은 김정일 전용의 예술단 공연도 보면서 그야말로 질펀한 대접을 받았다.



김정일 전용 예술단의 공연은 견실한 사상을 가진 눈으로 보면 실로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내가 자꾸 박수를 치자, 내 옆에 앉아 있던 고지식한 이노우에 슈우하찌 교수가 물었다.



“황 선생은 정말 재미나서 박수를 칩니까?”



“어쨌든 무조건 박수 치시오. 명령이오.(그는 나와 형제처럼 친한 사이였다.)”



그도 내 말을 듣고는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김정일은 자신의 전용 예술단이 공연을 할 때 박수를 잘 치지 않으면 몹시 화를 냈다. 나는 그가 카메라를 통해 우리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공연을 보면서도 힘껏 박수를 쳤던 것이다.





떠들썩한 생일잔치가 끝난 뒤로, 나는 차츰 주체사상을 종교와 결부시키는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 반영론 등과 함께 그의 종교에 대한 그릇된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상과 문화의 계급성을 주장하는 이론에 따라 지난날의 일을 적대계급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 적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종교의 비과학성과 계급성을 강조하면서 종교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을 과소평가했다.



그에 비해 나는 새로운 것은 반드시 낡은 것을 계승한다는 데 기초하여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낡은 시대를 대표했던 사상 중에서 결국 종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따라서 새 사상으로서는 종교를 옳게 계승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어떻게 성과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옳게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와의 관계를 옳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부분에서 내가 중요한 진전을 본 데는 중국에 장기간 체류한 바 있는 미국의 시튼홀대학교 명예총장인 머피 교수와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주체과학원에서 그와 오전, 오후 여섯 시간 동안 담화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종교의 본질을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찾는다는 것, 주체사상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생명으로 여긴다는 것, 인간이 서로 배척하고 증오하며 싸우기보다는 서로 믿고 사랑하며 협조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결론이라는 것, 따라서 주체사상과 종교는 서로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머피 교수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여 동양의 예절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되겠습니다.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일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의식한 즉흥적인 발언이라 할지라도, 나로서는 중요한 힌트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종교와 주체사상을 결부시켜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초점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실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돼었다.



그러면서 나는 종교인들과의 교류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으며, 모든 종교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각 종교가 내세보다는 현실세계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이바지하는 방향에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종교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비록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시작만이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계가 그야말로 급변하던 1992~93년 무렵에 나는 많은 글을 썼다. 그중에 1993년 10월에 초고를 끝낸 「주체철학의 기본문제」는 내 사상의 기본을 요약해보려고 시도한 글이었다.



이 글은 1장 우주관, 2장 사회역사관, 3장 인생관(가치관), 4장 변증법, 5장 이상사회 건설의 방법론의 다섯 장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시간이 안 되면 하다못해 이 글만이라도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망명할 때도 가지고 왔다.



의암초대소에서 나는 6년 동안 좋은 조건에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 수 있었다. 이는 학자로서는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특별한 혜택이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늘 감사해왔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51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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