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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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부 꿈 많던 어린 시절, 여덟 번째

평양 25시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5




시그널: “평양 25시”



내레이션 : 꽁고 주재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북조선 외교관 고영환. 보장된 출세와 사랑스런 가족을 등진 채 목숨을 걸고 망명을 선택한 그의 비망록. 그가 밝히는 북조선 국제외교의 실상과 최고 권력층의 숨겨진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음악: UP/DOWN



제176부 꿈 많던 어린 시절, 여덟 번째



지난 이야기> 1970년대 중반 고영환이 평성과학원에 통역으로 파견되여 갔을 때, 평성시 송배전소 부장이 전기를 많이 쓴다며 과학원의 전기 스위치를 봉인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이 김일성에게 보고되고, 송배전소 부장은 탄광으로 추방되는데....



과학원 실습 기간 중 또 하나의 사건은, 북조선의 전기가 너무나도 불규칙적이여서 생긴 일이였다. 220V 정격 전압을 요구하는 콤퓨타에 150~280V까지의 불균형 전압이 입력되여 콤퓨타 IC회로가 자주 합선되여 못쓰게 되는 것이다. 북조선 과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프랑스제 IC가 너무 약하여 그렇다면서 프랑스 회사의 비용으로 부품 교체를 요구하였고, 프랑스인들은 회사에 전신회선망으로 련락해 수십만 프랑어치의 회로판과 까벨을 교체해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프랑스인들이 갑자기 남포에 가보자는 것이였다. 그들은 1주일에 하루는 남포 와우도호텔에 설치한 중소형 콤퓨타실에 가서 일을 하곤 하였는데, 지난주에 가보았을 때 기계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나는 대외경제사업부 제2설비 수입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아 대외경제사업부 의례국에 우리 행처(行處)를 알리고 바로 남포 와우도호텔에 있는 콤퓨타실로 갔다. 콤퓨타실에 들어선 나는 물론 프랑스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방안에는 륙군복을 입은 소장 1명, 해군 소장 1명 등 상좌, 대좌급 이상이 10여 명이나 있었고 위급 군관들까지 군인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이였다. 대공산권 수출통제 조정위원회 물자인데다가 호텔 영업용이라고 하여 들여온 콤퓨타가 로골적인 군사용으로 쓰이는 것을 목격한 프랑스인들은 격분을 참지 못하면서 문을 꽝 닫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후에 인민무력부 외사국 군관들에게서 들어 안 소식이지만, 이 콤퓨타는 해군사령부 남포함대사령부가 해양 측정과 해도 작성 및 작전용으로 들여왔다는 것이였다.



어쨌든 이날 사고는 큰 범위로 파급되였다. 나 자신이 눈이 쏙 빠지게 욕을 얻어먹은 것은 두말할 것이 없었고 대외경제사업부 업무부장, 인민무력부 외사국장 같은 사람들이 보통강호텔에 나와 프랑스 사람들을 달래느라 저녁에 옥류관에서 커다란 연회를 열었다. 이 연회에서 프랑스제 나폴레옹 꼬냐크와 헨네스 꼬냐크가 물처럼 흘렀다. 이리저리 속이 상하였던 프랑스인들은 만취하였으며 다음날 다행히도 아무 말이 없었다. 사건을 확대해 보았자 국제적으로 소란해지기만 할 것이고 회사 명예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1년 동안 프랑스 콤퓨타 전문가들과 일하면서 나의 프랑스어 실력도 늘었고 서방식 사고 방법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몇 달 전 대학 당 위원회에서 <졸업 후 외국어대학 프랑스어 교원이 되는 것이 어떠냐>고 내 의향을 물어왔다. 나는 교원 능력도 없으니 대학 교원이 되기는 싫다고 한마디로 대답하였다. 선생님들과 동료들은 내가 외교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들을 하고 있었고 나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당비서는 화를 냈다.



북조선 권력층의 실상과 비화를 밝힌, 고영환의 평양25시, 지금까지 랑독에 리광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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