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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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부 꿈 많던 어린 시절, 네 번째

평양 25시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5




지난이야기> 1967년 5.25교시가 나온 이후, 고영환이 다니던 평양외국어혁명학원에서 동료 학생들이 줄줄이 사라져 갔다. 또한 그해 8월경에는 운동장에 책과 록음테이를 산더미처럼 싸놓고 불을 지르는데......



이미 휘발유를 뿌려놓았던 모양으로 커다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숙연히 서있던 학생들은 불기둥이 높아지자 술렁대면서, 불에 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하였다. 불타는 책들은 모두 외국에서 출판한 사전류들과 회화책, 소설책들이었다. 평소에 한번 가져보았으면 하던 프랑스의 유명한 라루스(Larousse) 같은 사전과, 아시밀(ASSIMIL)과 같은 록음테이프, 귀한 소설책에 시퍼런 불이 확확 달라붙자 모두 아까워하고 아쉬워하는 표정들이 역력하였다. 그때 우리 몇 명은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선생님, 저 아까운 것들을 왜 태웁니까? 저희가 낙서만 하고 조금만 찢어져도 야단을 치시던 저 책들을 왜 태웁니까?』



몇몇 여학생들은 울음까지 터뜨렸다.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방울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우리를 안아 주시었고 말씀 한마디 없이 우리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시었다.



수만 권이나 되는 영어∙프랑스어∙에스빠냐어∙아랍어 등의 교과서, 소설책, 록음테이프는 다음날 아침까지도 불길을 뿜어냈다. 그때 그 어마어마하던 불기둥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불길에 날려 책이 공중에 솟았다가 떨어지면 그 책을 가슴에 안고 울던 여학생들, 그러면 학생들의 품에서 책을 빼앗아 다시 불속에 던져 넣던 당 중앙위원회 사람들….. 그날의 그 장면들은 죽을 때까지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후 대학에 다닐 때 2차세계대전을 그린 쏘련 영화 속에서 히틀러의 돌격대들이 쉴러와 하이네의 책들을 불사르는 장면을 보면서, 그날의 불기둥을 떠올렸다.



<나치스식> 불사르기가 있은 후 우리의 외국어 어학 교재는 전부 <혁명적>인 내용으로 바뀌졌다. 김일성의 소위 <로작(勞作)>들을 외국어로 번역한 것을 인쇄하여 교재로 삼았고 청취 시험 같은 과목은 아예 없어져 버렸다. 록음테이프 또한 다 불살랐으니 들을 테이프 자체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강의 내용이 재미가 없어지자 불타 오르던 공부 의욕은 시들해져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방학에 개성집으로 내려간 나는 아들을 훌륭한 외교관으로 키우실 꿈을 가지신 아버지에게는 무서워서 말도 못꺼내고 만만한 어머니에게만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계속 떼를 썼다.



그러던 어느날 밤 아버님은 잠자던 나를 깨우더니 서슬이 퍼런 얼굴로 <왜 학원을 그만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님께서 말씀을 드린 모양이었다. 나는 학원에서 교재도 다 불태우고 외국어도 잘 배워주지 않으면서 일반 과목만 가르치니 개성으로 학교를 옮기겠다고 말씀드렸다. 그까짓 일반 과목을 배우는 것쯤이야 개성에 있는 어떤 학교에서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버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북조선 권력층의 실상과 비화를 밝힌, 고영환의 평양25시, 지금까지 랑독에 리광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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