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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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네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1-27 17:48


내레이션: 김일성이 죽자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심화조 사건을 일으켰다. 1997년 말부터 3년간 진행된 이 사건으로 2만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숙청당했다. 권력의 전환기에는 늘 피바람이 몰아치게 마련이다. 김정일의 통치 방식을 계승한 김정은도 앞으로 심화조 같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 김정일의 권력 장악 비화를 통해 김정은의 선택을 전망한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지난이야기> 서관히를 처형시킨 김정일은 이 사건을 더욱 확대시켜 김일성의 측근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이에 따라 사회안전성은 룡성간첩 사건을 조작하는데.....



6·25전쟁 당시 남조선 특수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최고사령부 타격대가 평양 룡성에 침투했다는 옛날 이야기가 간첩사건으로 둔갑했다. 텔레비죤에서 련일 룡성간첩 사건에 대해서 보도했다. 그런데 간첩 사건의 대상이 대부분 당 간부였다. 이미 죽었거나 나이가 들어 집에서 쉬고 있는 로인들이 잇달아 끌려갔다. 또다시 온 나라가 세차게 술렁거렸다. 그 도가니 속에서 로인들에 대한 총살이 련이어 집행됐다.





1984년에 죽어 혁명렬사릉에 묻혀 있던 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김만금의 무덤까지 파헤쳐 공개재판을 한 후 유골에 사격을 가했다. 먼 옛날에나 있었을 법한 부관참시였다. 중앙당 고위간부로 오래 일하며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피창협은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고, 그 가족들은 3대까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간첩을 잡은 룡성구역 안전부 부장과 담당수사관은 영웅칭호를 받아, 순식간에 룡성구역 안전부는 ‘영웅 안전부’로 명성을 얻게 됐다. 그런데 룡성간첩 사건은 피바람의 시작에 불과했다. 김정일의 추가 지시가 떨어졌다.



김정일: (표독) 지금부터 사회안전성은 전체 주민의 주민등록 문건을 료해해 남아 있는 간첩들을 모조리 뿌리 뽑아야 한다. 이 사업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사회안전성은 내 주민등록 문건부터 료해를 시작하라!



김정일은 사회안전성에 공화국 최고의 특권을 줬고, 사회안전성은 열흘 만에 각 도·시·군에 이르기까지 수사과 감찰과의 유능한 안전원을 총망라해 조직을 결성했다. 이것이 바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 동안 북조선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심화조’다.



평양 각 구역을 비롯한 전국 수백개 지방단위에 각각 수십명의 고급인력으로 구성된 심화조를 총지휘하기 위해 사회안전성에는 심화조 총지휘본부가 설치됐다. 책임자는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 대장, 지휘부 참모장은 사회안전성 참모장 황진택 상장이었다. 사상 최대규모로 조직된 심화조의 총인원은 무려 8000명. 김정일의 특권을 하달받은 그 8000명이 가뜩이나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북조선의 전 주민을 상대로 감행한 온갖 정신적·육체적 악행을 가하게 된다.



심화조가 조직된 첫날 가장 먼저 잡아들인 사람이 바로 본부당 책임비서 문성술이다. 흡사 자신들의 권력을 시위하기라도 하려는 기세였다. 국가안전보위부나 무력부 보위사령부 앞에서도 그 권세가 당당하던 당 중앙위원회 성원들은 순간 아연해졌다.



남1: (은밀, 심각) 비서 동지 이거 사회안전성 심화조의 권위가 생각보다 엄청나군요.

남2: 그러게 말입니다.

남1: 본부당 책임비서를 잡아갈 정도면 이제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겁니다.

남2: (깊게 숨을 내쉬며, 근심) 아무래도 엄청난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군요.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라면 당 총비서인 김정일도 원칙상 조직적으로 구속받게 되어 있는 당 세포의 책임자다. 때문에 중앙당 내 각 부서의 당위원회를 종합적으로 관리, 감시하는 본부당 책임비서라면 당 주도의 북조선에선 당연히 김정일 다음가는 권력이었다. 본부당 책임비서를 체포하려면 반드시 김정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중앙당 간부들은 김정일의 권력으로 움직이는 심화조의 실체를 피부로 느끼게 됐고, 그 권력이 전국 곳곳에 거미줄처럼 퍼진 북조선은 위 아래가 따로 없이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사실 문성술 체포를 직접 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장성택이었다. 장성택에게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 문성술은 원쑤 같은 존재였다. 문성술은 본부당 책임비서로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와 김정일 계승문제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친인척들 중에서 권력지향 가능성이 가장 높은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을 ‘곁가지’로 철저히 감시, 견제했다. 그는 장성택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포착되면 그들을 분렬시켰고, 당사자인 장성택에게 직접 주의를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여자와 돈을 좋아하는 그의 비행을 참다못해 김일성에게 보고하여 김정일은 물론 김경희로부터도 온갖 욕설과 모욕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장성택은 심화조가 꾸려지자 곧바로 책임자인 채문덕을 불렀다.



장성택: 지난 서관히 사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적은 가까운데 있다는 걸 누구보다 채국장이 잘 알거야.

채문덕: 네. 맞습니다. 주민등록 문건을 료해하면 할수록 간부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성택: 장군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이번 사업은 누구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 돼.

채문덕: 물론입니다.

장성택: (은근하게) 그래서 말인데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 문성술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해야 겠어. 아무래도 그자의 경력이 의심스럽단 말이야.



장성택의 지시로 채문덕이 직접 작성한 문성술 체포와 관련한 제의서가 김정일에게 올라갔다. 김정일은 김일성 측근 인물들과 연관된 문성술의 사업성을 중시하여 엄하게 따져보라는 자필까지 더해 문건을 내려보냈다. 장성택과 채문덕, 김정일의 공모로 문성술은 간첩이 되었다.



문성술 간첩사건에 이어 북조선 전역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것은 평안남도 당 책임비서 서윤석이 체포된 일이다. 그의 체포도 순전히 개인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화조 총지휘부의 책임자 채문덕은 사회안전성으로 옮겨가기 전 평양시 안전국 국장을 지냈다. 서윤석은 이 시기 평양시 당책임비서였다. 질투와 욕심이 많은 채문덕을 밉게 보던 서윤석은 채문덕의 비리가 제기됐을 때 당적 권한으로 그를 혁명화 교육에 보낸 적이 있었다.



서윤석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더 빨리, 더 높이 출세했을 거라며 항상 불만과 증오를 품고 있던 채문덕은 역시 장성택, 김정일의 순서로 사인을 받아 서윤석을 체포했다. 의심이 간다는 몇 장의 보고서만으로 도당 책임비서가 간첩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였다.



추적, 사건과 진실 “6. 25전쟁의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의 실체, 네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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