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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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장마당

부치지 못한 편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2




샘, 새해 복 많이 받게. 이렇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로나마 자네에게 신년 인사를 해야겠군. 성탄절은 잘 보냈나? 북조선에선 기독교가 금지되어 있어 성탄절 인사 한 번 해보지도 못했네. 아마 북조선은 지구상에서 성탄절 노래가 울려 퍼지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하나일거야. 성탄절은 그렇다쳐도 연말연시 분위기도 거의 나지 않았다네. 아무리 삶이 고단하다지만,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기분이 거의 느껴지질 않다니, 나도 그만 침울해지고 말았네. 그때 마침 김복식이 찾아왔다네.



김복식 : 어, 춥다.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추운거야.



한 스 : 김선생 왔습니까?



김복식 : 네. 한스 선생.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한 스 : 김 선생도 새해 복 많이 받으 십시오.



김복식 : 그런데 무릎 굻고 혼자서 중얼거리던데 뭐하고 있었습니까?



한 스 : 아, 예, 새해가 되니까 가족이랑 친구들 생각이 나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김복식 : 기도요? 한스 선생도 예수쟁이 입니까?



한 스 : 독일에 있을 땐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긴 했는데 독실한 신자는 아닙니다. 김선생도 기독교에 대해서 뭐 좀 알고 있습니까?



김복식 : 아,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한스 선생 같은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 같은 사람이 예수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큰 일 납니다.



한 스 : 종교가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살다보면 약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땐 절대적인 존재에게 기대면 의지가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수도 있구요. 아까 김선생 가정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성희를 위해서도요.



김복식 : 뭔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가정을 생각해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이러고 있지 말고 우리 집에 같이 갑시다.



한 스 : 김선생 집에요?



김복식 : 집사람한테도 다 말해놨습니다. 어서 가십시다. 한스 선생이 좋아하는 고기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하



한 스 : 안 그래도 기분이 울적했는데, 날 챙겨주는 건 역시 김선생밖에 없습니다. 잠깐만요..... 성희한테 줄 선물 좀 챙기구요.



한스 : 분명히 여기에 넣어뒀는데.....



김복식 : 아휴, 선물은 무슨,.... 그런 거 안 주셔도 됩니다. 그냥 가십시다.



한 스 : 그래도 어떻게 빈손으로 갑니까... 옳지 여기 있네요.



내가 가져간 선물은 과자와 쵸콜fp트였네. 성희가 내가 미안할 정도로 좋아했다네. 그런데 웬 일인지 성희는 하나씩만 먹고 손을 대지 않더군.



한 스 : 왜 성희야 더 먹지 그래? 맛이 없니?



성 희 : 아니야요. 너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서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오시면 같이 먹으려구요.



한 스 : 성희 정말 착하구나. 김선생은 좋겠습니다. 이렇게 착한 딸을 둬서.



김복식 : 제 가시집이라서가 아니라 두 분의 성품이 정말 훌륭합니다. 우리 성희가 얼마나 그 분들을 잘 따르는지, 나보다도 더 좋아한다니까요. 하하하



복식처 : 당신도 참.. 선생님한테 별 말씀을 다하시네요. 그만하고 어서 식사하세요.



김복식 :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자..한스 선생, 식사하러 갑시다.



한 스 : 야, 너무 맛있어 보입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요. 정말 잘 먹겠습니다.



복식처 : 아닙니다. 우리 성희가 선생님한테 입은 은혜도 있는데, 이정도 가지고는 부족하지요. 맛있게 드십시오.



김복식 : 자. 성희야 아버지랑 밥 먹께 이리 오라



복식처 : 당신도 참. 선생님도 계시는데.. 저 사람이 늘 저렇다니까요. 다 큰 애를 꼭 저렇게 옆에 끼고 밥을 먹어요.



한 스 : 이거 딸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야, 부럽습니다. 하하하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 이런 거겠지?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가족의 따뜻함이었는지 모르겠네. 식사를 맛있게 하고, 이제 해주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김복식이 신년 선물로 나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하더군. 김복식이 데려간 곳은 시장이었네.



한 스 : 야, 조선에 와서 이렇게 활기찬 곳은 처음 봅니다.



김복식 : 한스 선생이 가셨던 국영상점하고는 분위기가 다르지요? 이래 보여도 없는 물건이 없습니다.



한 스 : 이거 조선에서는 불법 아닙니까?



김복식 : 불법이지요. 하지만 식량난 이후로 장마당이 없으면 못 삽니다. 배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데 장마당까지 못하게 하면,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랑 같거든요.



한 스 : 어! 저 포대 자루에 미국 표시가 찍혀 있네요. 혹시 원조해준 쌀 아닙니까?



김복식 : 맞습니다.



한 스 : 어떻게 저 쌀이 장마당에서 류통되고 있습니까?



김복식 : 어디 미국쌀 뿐이겠습니까. 남조선에서 원조해 준 쌀들도 장마당에서 다 팔립니다. 다 중간에서 빼돌려서 팔아먹지요.



한 스 : 정말 사진으로 찍어서 원조기관들한테 보여주고 싶군요.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준 쌀이 저렇게 중간에서 빼돌려져서 팔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김복식 : 지난 식량난 때 외국에서 원조 받은 식량만 인민들한테 풀었어도 많은 사람을 살렸을 겁니다... 한스 선생 재미있는 이야기 하는 해드릴까요?



한 스 : 좋지요. 무슨 얘깁니까?



김복식 : 나도 어디서 들은 얘긴데, 어느 지방에서 강연시간에 우스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강사가 사람들 앞에서 ‘식량난이 미제 그 앞잡이들 때문이다. 식량 원조를 해주기로 해놓고 약속을 안 지킨다, 미제국주의자들이 인민들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한다는 등의 온갖 욕을 다 했답니다.



한 스 : 그래서요?



김복식 : 듣고 있는 한 녀성이 ‘아니 왜, 우리가 미제를 원조를 받아야만 먹고 삽니까?’ 라고 반문했답니다. 아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겠지요.



한 스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김복식 : 당황한 강사가 아무 말도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는 군요.



한 스 : 뭐든지 미국 탓으로 돌리는 게 먹히지 않을 때도 있는가 봅니다. 하하



김복식 : 사람들이 대놓고 말을 않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마당에서 제일 인기 있는 물건들이 남조선이나, 미국, 일본겁니다. 질이 좋거든요. 재밌지 않습니까?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갑시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장마당에서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먹을 것을 찾아 질척이는 시장바닥을 헤매는 헐벗은 아이들, 살아남기 위해 주민들은 저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네.



몇 달간 자유롭게 다니면서 북조선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고 있네. 북조선의 렬악한 의료현실이 나를 움직이게 했듯이, 새로 알게된 진실이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갈지 모르겠네.



샘, 그것이 무엇이 됐든 나를 응원해 주게나.



2000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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